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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어제 오후, 공부방 아이들이랑 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고구마를 캐러 갔다 온 뒤로 오랜만에 밭에 가는 거라 그런지 다들 신바람이 났습니다.

동혁이는 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같이 데려간다며 줄달음을 쳤을 정도입니다. 가을도 이미 다 지난 터라, 밭에 갔어도 늦자라고 있는 배추밖에 보여줄 것은 없습니다. 그것도 가을배추로 심은 건데, 땅에 거름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인지 여태 포기가 차지도 않아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배추에 물을 길어다 주고 나서 애들이랑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에 밭을 조금 일궈보았습니다. 그래봐야 잠깐 동안이었지만, 괭이나 호미로 흙을 파 보는 것만도 즐거운지 다들 열심입니다.

일하면서 누구 입에서 지렁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공부방 선생님이 "니네들 지렁이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아?"라고 묻는 걸 들었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혁이와 경남이가 앞 다투어 "알아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기름지게 해줘요"라는 대답을 내놓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고래가 그랬어>에서 지렁이가 하는 일을 읽었답니다.

어린이 학습교양지인 <고래가 그랬어>가 주는 위력을 아이들의 입을 통해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애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고래가 그랬어>를 왜 그리 재밌어 하는지를 말이에요. 일단 만화여서 재미있고, 과학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서 좋다고들 합니다.

얼마 전 정기구독을 신청하면서도 학습교양지라서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조금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애들에게 <고래가 그랬어>에 대한 찬사를 듣고 나니 그동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듭니다.

솔샘 농장에서 밭을 일구는 아이들
솔샘 농장에서 밭을 일구는 아이들 ⓒ 정병진
어린이 도서관을 하면서 계속 하는 고민거리 중 하나는 애들이 생각만큼 책을 그다지 열심히 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들을 많이 갖춰놓고 있어도 책 읽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에게는 그게 다 무용지물이지요.

그러나 <고래가 그랬어>같은 교양지라면, 책 읽기에 거의 흥미 없는 아이에게도 썩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화일지라도 어린이 눈높이를 잘 맞춘 유익한 교양과 재미를 제공해 준다면 누가 그걸 마다할까요?

<고래가 그랬어> 창간 1주년 기념으로 나온 13호를 처음부터 쭉 읽어 보았습니다. 지난 10월에 나온 거라 그런지 맨 첫 부분에 "가을 운동회"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나 하는 운동회를 가지고 어린이 인권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요모조모 썼더군요. 예컨대 운동회만 열렸다면 "청군(靑軍), 백군(白軍)"으로 나눠 마치 전쟁이나 치르듯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또 운동회 때만 되면 걱정이 많고 소외되기 쉬운 결손 가정 아이나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들 이야기도 널리 공감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잘 그리고 있었습니다.

계속 연재되고 있는 '전태일 만화'나 '너 텔레비전 끌 줄 알아'와 같은 만화를 보면서도, '어린이들에게 진보적인 시야에서 세상을 보게 하겠다'는 처음 야심에 찬 공언이 그냥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소금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과학만화 '알콩이와 달콩이의 요리연구실'이나, 한자를 재미있는 만화로 익힐 수 있게 한 '고래가 천자문을 삼켜버렸대'는 우리 공부방 아이들에서부터 유익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을 만한 내용들입니다.

그렇다고 <고래가 그랬어>가 무거운 교양을 내세운 만화로만 채운 건 아니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들어 있더라도 흥미가 없으면 아이들이 먼저 보지 않습니다. 이제 한 살이 된 이 잡지가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으면 합니다.

고래가 그랬어 184호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지음, 고래가그랬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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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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