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2년 가까이 용산 등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집중적으로 추적해 온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의 미군문제팀장 유영재입니다.
6일 오후에는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이하 '용산협정') 및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이하 'LPP개정협정')의 국회비준동의안에 대한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가 열립니다.
공청회, 요식행위 돼서는 안 돼
이 공청회 진술인 중 한 명인 저는 7일로 예정된 상임위 안건처리를 하루 앞두고 열리는 공청회, 그것도 진술인 중 찬반이 6:2로 불균형인 공청회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각계의 문제제기가 빗발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 중 이 문제를 철저히 검증하자는 의원이 60여명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240여명의 의원들은 비준동의안에 아예 무관심하거나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포착하여 현실의 변화를 이뤄보자는 심정으로 요식행위가 될 지도 모르는 공청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으면서도, 그것이 또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이렇게 공개편지를 올립니다.
정부 내에서도 '위헌' 제기
현재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이하 통외통위)에 상정되어 있는 용산협정은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에 법제처에서도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고, 통외통위 수석전문위원도 사실상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용산협정에는 비용의 총액이나 상한선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고, 모호한 규정이 즐비하여 정부협상단 사이에서조차 협정문을 두고 상반되는 해석이 나오는 지경입니다. 또한 정작 비용 산정의 기초인 시설종합계획(MP)은 협정 체결절차가 완료된 뒤에나 작성됩니다.
더욱이 설계권 등 사업의 주도권마저 미국이 가지고 있는데다가 확실한 비용통제장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협정이 미국에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용산협정은 또한 시설수준의 향상을 명시하고 그에 따라 의료·행정시설, C4I 제공 등을 새로이 규정함으로써 군부독재시절에 맺어졌던 90년 합의서보다도 개악되었습니다. 또한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보더라도 기타비용, 이사비용까지 부담토록 함으로써 불평등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아가 용산 등 주한미군 재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전략을 적용하기 위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산협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각계각층, 심지어 정부 내에서조차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그리고 졸속으로 용산협정 절차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용산 등 주한미군기지 재배치를 세계 미군기지 재배치의 시범케이스로 삼으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이처럼 논란이 많은 문제를 쫓기듯 처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국회 권능, 시험대에 올라
정부는 이제 공을 국회로 떠넘겼습니다. 정부는 위헌적이고 굴욕적인 협정이 정당하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국회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국회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입니다. 이제 국회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부담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협정에 대한 비준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하여 철저히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동의를 해 준다면, 정부의 '묻지마 협정'에 국회는 '나도 몰라 동의'로 화답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국회가 스스로 자신의 권능을 포기하는 것이자 행정부의 들러리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를 통하여 정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미국 눈 밖에 나지 않아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의 안일과 영달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평택 주민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며, 최소 7조원이 넘는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 부담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국민들의 허리는 더욱 휘어질 수밖에 없고, 방어군에서 침략군으로 자신의 성격을 바꾼 주한미군이 불러오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에 우리 국민은 항상 몸과 마음을 졸여야 할 것입니다.
'사후 청문회', 버스 지난 뒤 손들기?
그런데 며칠 전에는 통외통위가 용산협정과 LPP개정협정에 대한 청문회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선 안건처리, 후 청문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당 방침이 그런 모양입니다. 용산협정·LPP개정협정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데 앞장섰던 한 여당의원은 저에게 "괴롭다, 어쩔 수 없다"고 고백하더군요.
도대체 안건처리 다 해놓고, 무엇을 '청문'하겠다는 것입니까? 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거야말로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드는 격' 아닙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미국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입니까? 민중의 고혈을 짜내고, 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 수 있는 이런 협정에 동의해 줘야만 여당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의 자주의식은 날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우리 국민은 굴욕적 용산협정 강행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오직 정부 협상단만 '최선의 협상'이었다고 강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몰랐다' 변명, 통할 수 없어
그리고 IMF 사태 때는 정부 관료 중에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갱제를 아나?"라고 말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백을 우리는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은 정책판단과 업무수행에 대한 공직자의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정부와 국회의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이 협정의 문제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상황 또한 IMF시절과 분명히 다릅니다. 요컨대 "몰랐다"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 등 협상 관계자들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사법적 심판대에 세웠습니다.
통외통위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여러분!
지금 국회 의사일정은 6일 공청회, 7일 상임위 안건처리, 8~9일 본회의 안건처리 순으로 잡혀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큰 변수가 없는 한 이 순서대로 절차가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원 여러분!
형식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진정한 시작은 이 때부터가 될 것입니다.
우선 토지수용대상인 평택주민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또 미군 이사비용 대준다고 용산 땅 팔자는 데 동의할 서울시민과 국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비용문제에서는 이미 한미간에 이견이 발생하고 있는데다가, 미국은 협정에 미국부담으로 명시되어 있는 주택임대료와 2사단 대체시설 비용도 우리가 부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방어군에서 침략군으로 전환되고, 그 역할이 대북 방어에서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으로 전환되면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해왔던 다수의 우리 국민들도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에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
시대변화·국민요구 직시해야
공교롭게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2008년까지 주한미군 재배치가 사실상 마무리된다고 하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이 문제는 다음 선거 때까지도 지속적인 국민의 관심사로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치열하게 전개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분의 재선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야겠지요.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