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억원대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국시멘트 법정관리 비리 사건이, 검찰의 전면 재수사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최근 한국시멘트 전 대표이사 이모(50)씨 등 3명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이씨 등으로부터 이 회사 주식을 매입한 N산업과 계열사 등 5곳에 대해서도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N산업 등은 이씨가 구속 수감 중인 지난 2월 이씨로부터 190여억원에 주식 82만여주를 인수한 바 있다.
검찰 추가수사가 이씨 등의 불법자금 조성내역에 이어 이씨로부터 이 회사 주식을 인수한 N산업 측의 주식 취득 경위로 옮겨지면서, 검찰의 수사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한국시멘트 경영권 향방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시멘트 경영권 향방에 관심 고조
검찰은 이 회사 노조와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이씨 등 6명을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해 옴에 따라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
노조와 비상대책위원회는 아울러 모 구조조정 전문회사 대표 등 3명을 회사정리법 위반 혐의로, 이씨로부터 주식을 사들인 N산업 등 4개회사 대표들에 대해서는 ‘범죄수익 은닉 및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0월 초부터 한국시멘트 본사 및 하청업체, 구조조정 전문회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벌여 관련장부를 확보한 뒤, 이씨의 불법자금 조성 내역 및 이씨가 주식을 매집해 회사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기까지의 자금흐름 등을 추적 조사해 왔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이 과정에서 지난달 29일 공사비를 과다 계상해 회사에 수십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전 대표 이씨를 다시 구속한 데 이어, 이씨에게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모 운송업체 대표 민모(52)씨와 공사 하도급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신모(44)씨를 구속했다.
검찰의 수사가 전 대표 이씨로부터 주식을 인수한 N산업으로 확대되면서, 한국시멘트의 법정관리 비리 사건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N산업은 지난 7월 임시 주총을 통해 경영권 인수를 마무리지었다는 판단이지만,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주식 몰수 조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얻은 수익 등에 대해서는 국가가 수익의 전부를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은 범죄자뿐 아니라 그 점을 알면서도 범죄수익 등을 수수한 자에 대해서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찰은 N산업이 주식을 인수한 배경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한국시멘트 법정관리 비리 사건이란? | | | 법정관리 기업 대표, 회사 돈 이용 경영권 탈취 | | | | 한국시멘트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공적자금 비리를 파헤쳐 온 검찰이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한국시멘트 전 대표이사 이모(50)씨를 구속하면서부터다. 광주에 본사를 둔 한국시멘트는 지난 2002년 5월 법정관리를 종결하는 과정에서 총 1941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바 있다.
검찰에 조사결과 전 대표 이씨는 법정관리라는 느슨한 틈을 타 회사 경영권에 욕심을 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회사 양도성 예금(CD)을 담보로 47억원을 대출 받는 한편 각종 공사와 관련한 리베이트 등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100억원대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으로 곧바로 회사 경영권 탈취에 나섰다. 법정관리 종결과정에서 이뤄진 총 80억원(160만주)의 유상 증자과정에서, 이씨는 한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의 명의를 빌어 주식 매집에 나선 것. 마치 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가장해 주식을 인수하게 한 뒤 나중에 이 주식을 되찾아 오는 방식이었다.
190억원에 경영권까지 넘겨
이씨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친인척 측근 등의 명의로 분산된 주식까지 합쳐 이 회사주식 60%에 달하는 132만여주의 주식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공적자금 수사로 지난해 구속되자 이 주식을 189억여원에 B사에 매도했다. 그러나 법원의 가처분 인용결정으로 매도가 어려워지자, 지난 2월 이를 다시 N산업 등에 매매했다.
이씨는 온갖 비자금 등으로 회사 경영권까지 장악한 것도 모자라, 190여억원의 막대한 수익을 챙긴 뒤 제3자에 경영권까지 넘겨 버린 것. 이씨는 1심에서 31억여원의 추징금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수감 6개월여만인 지난 6월 광주고법 특별재판부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아울러 당시 배임중재 혐의로 구속된 S건설 이씨와 당시 법정관리인 정씨 등 관련자들도 집행유예 등으로 모두 석방됐다. 당시 법원의 무더기 석방을 두고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 이국언 | | | | |
노조·조선대 “불법주식, 국가가 몰수해야”
노조와 비대위 등은 N산업이 이씨로부터 사들인 주식은 범죄수익에 의한 불법주식이라며, 취득한 모든 주식을 국가가 몰수하는 한편 아울러 불법주식인줄 알면서도 사들인 관련자에 대해서도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13일 광주지검 특수부 한 관계자는“한국시멘트 법정관리 전반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라며 “고발인들이 불법주식 취득으로 고발해 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해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시멘트 창업주체인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이사회(이사장 강신석 목사)도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시멘트 비리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조선대 이사회는 “전 법정관리인 등을 포함한 관련자들의 주식 취득 경위와 자금출처 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부분을 추가 조사한 뒤, 관련자 전원을 처벌하고 불법취득한 모든 주식을 몰수하는 등 엄중 조치할 것을 사법부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 76년 창업주주였던 조선대학교는 법정관리 종결 직전까지 43%의 주식을 소유해 2대 주주의 지위를 유지했으나, 법정관리 종결과정에서의 감자조치로 소액주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대 측은 전 대표 이씨와 법정관리인 등이 부정한 방법으로 경영권을 탈취,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지난 9월 전 대표 이씨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 | 공사비 부풀려 리베이트...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 | | 구조조정전문회사·법정관리인도 가담 | | | |
| | ▲ 지난 6월 전 대표의 엄정한 사법처리를 요구하며 한국시멘트 한 종업원이 광주지법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 ⓒ이국언 | | 검찰의 추가 수사로 전 대표 이씨의 각종 비자금 조성 규모와 방법 등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이씨가 주식 매집을 통해 회사 경영권을 탈취하기까지의 과정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한 차례 사법처리를 받은 전 대표 이씨 등 비리 관련자 3명을 지난 10월 29일 추가 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이달 초 법정관리인 정모 변호사와 구조조정전문회사 I사 대표 송모(38)씨에 대해서도 회사정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2년 6월부터 2003년 9월까지 포항공장 사이로 증설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회사에 93억원(부가세 포함)의 손해를 끼친 혐의다.
경영권 장악 위해 막무가내 비자금 조성
이씨는 실 공사비가 338억여원에 불과한 이들 공사를, 시공 능력이 전혀 없는 S건설 이모(49)씨에게 423억원에 수의계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S건설 이모(54)씨로부터 31억 4000여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지난 6월 사법처리 시 이 금액을 전액 추징 당하기도 했다.
또 이씨는 2002년 1월 운송업체 K산업 대표 민씨로부터 한국시멘트 원재료를 전담 운송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대가로 4억원 리베이트를 수수하는 한편, 회사 운영과정에서 회계장부를 조작해 1억 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아울러 함께 구속된 민씨는 이씨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것 이외에 회사 돈 16억원을 횡령하고, 4억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신씨는 포항공장 증설공사 원청업체인 S건설이 시공능력이 없는 것을 기화로 이씨에게 하도급 업체 선정을 위임하자, 이 과정에서 3개 업체로부터 총 10억원의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아 마찬가지로 구속됐다.
법정관리인, 주식 취득으로 시세차익만 17억 챙겨
검찰은 이들 외에도 한국시멘트 법정관리인 정모(66)변호사에 대해 회사정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달 초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산업발전법’상 특수관계인의 위치여서 신규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없는 신분이면서도, 구조조정 전문회사 I사와 이면계약을 통해 회사 정리절차 종결 과정에서 10억원 상당의 주식을 취득한 혐의다.
검찰은 정 변호사가 1주당 1만4000여원으로 평가된 한국시멘트의 주식을 유상증자 시 주당 5640원씩에 인수받아 최하 17억 상당의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 전문회사 I사 대표 송씨는 자신의 회사 운영자금 대출을 위해, 정리법원의 허가도 받지 않고 한국시멘트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담보로 4억 6000만원을 대출해 사용한 혐의다.
1900억원대의 국민 혈세가 투입된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근본취지는, 느슨한 법망 앞에서 한낱 보잘 것이 없었다. 특히 이씨가 회사 경영권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된 데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I사와 법정관리인의 조직적 공모가 결정적이었다. 인간의 탐욕 앞에서는 법정관리 기업의 대표, 법정관리인,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 이국언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