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한 이야긴 이 사건이 수습된 후에 설명해 드리오리다. 그 보다도 시신에서 나온 이 총환을 살펴보시오.”
완전히 문드러져 언뜻 보아 원형을 알기 어려울 지경이나 구슬 모양의 동그란 알 형태가 원래의 모양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 의원이 이야기를 계속 했다.
“총환은 인체에 적중하는 순간 보기 좋게 찌그러지거나 부숴지오. 보통의 원형 납 총환은 앞과 뒤를 눌러 버린 것처럼 찌그러지려는 경향이 크고 그러다 보면 이런 팽창이 크고 넓은 구멍을 만들며 몸 속에 들어가게 되지요.
주석이나 다른 불순물이 많이 섞인 납탄을 쓰면 부숴짐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총환을 밀어내는 총구의 힘이 크거나 납이 매우 물렁하면 부숴지는 정도가 더 잘게 되고, 이 조각이 상처 주위로 퍼지며 더 큰 상처를 만드는데 이 총환의 성분이 아마 그런 것 같소. 총구에서 나오는 압력도 크고 회전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 더욱 이런 상처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을 것이고.
근래 산포수들 중 호랑이나 멧돼지를 한 번에 잡기 위해 납총환에 십자(十字)금을 칼로 그어 타격력을 크게 하여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것은 그것과는 부류가 다릅니다.
더 특이한 건 총환의 모양이오. 제 생각에 원래 모양은 앞이 뭉툭한 원추형이 아니었을까 싶소. 그러면 총열 안에서 회전하는 힘을 가하기가 쉽지요. 멀리 날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터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고 말이오.”
“의원님은 마치 양이의 총포를 소상히 공부하신 분 같습니다. 어찌 그리 양이의 문물에 밝으신지요?”
설명은 들은 윤 군관이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순간, 정 의원의 얼굴 빛이 굳어졌으나 이내 풀리며 말했다.
“산림에 묻혀 사는 어리숙한 일개 의원이라 하나 어찌 백성된 자로 종묘사직과 이 나라 백성의 안위를 걱정함이 없겠소. 평소 자강과 부국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바 아니었으니 특히 총포의 운용이 그 해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던 터에 지난 해 대동강 ‘서문’(西門)호 사건을 겪으며 느낀 바가 깊었기에 조예를 갖게 되었을 뿐이오. 의술을 펼치기에도 몸이 급하니 식견이란 게 그저 일천할 뿐이고 내세울 바는 되지 못한다오.”
윤 군관이 화제를 돌리 듯 접시 위에 꺼내 놓은 뼛조각들을 보며 물었다.
“총에 맞고 이 정도 상처로 예까지 왔다면 변을 당한 곳이 어디쯤 되겠습니까?”
“이 상처로 즉사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의문이오. 평안문 밖에서 맥을 놓는 걸 파수꾼이 보지 않았다면 아마 누군가 죽인 후 시신을 그 곳으로 옮겼다고 생각이 들 정도요. 이 사람 곽 포교라 했나요? 아직 죽지 않은 정신이 이 사람을 돌아오게 했겠지요. 그러나 육신의 한계는 있는 법이어서 변을 당한 곳은 평안문에서 동서남북으로 가장 가까운 산들 중 하나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북쪽은 청천강이 막고 있고 서쪽엔 근거리 산이 없으니 천상 남쪽과 동쪽이겠구료.”
“말씀 고맙습니다. 다만 사인은 초검대로 보통 화승총에 당한 것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막이 알려질 경우 민심의 동요가 클 것입니다.”
“그래서 검시를 파하고 윤 군관에게만 이르는 것 아니겠소.”
“그리고 의원님께선 며칠이라도 이곳에 머물러 주실 수 있는지요. 사안을 해결할 때까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 하리다. 윤 군관이 고생이 지심하시겠소.”
윤 군관은 정현우 의원과 사위 이경은을 뒤로 하고 병영을 향해 뛰었다. 곽 포교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잡아야 한다. 나루는 일찌감치 경수소(검문초소)를 세웠으니 서모산과 마두산 등지에 수색군을 보내야 한다.
4
안주 마두산
안주, 대니, 운곡의 경계에 있는 마두산(馬頭山). 군 내에서 제일 높으며 삼림이 울창하고 물이 깨끗하여 식수로도 좋다는 산. 봉화가 있는 동쪽 태조봉(太祖峯)을 마주하는 500길 높이의 산마루 숲목 사이에 일군의 무리들이 수런거리고 있다.
“점백이 성님. 정말 이 놈들을 살려서 데리고 갈 작정이시우?”
조금산이가 또 칭얼대었다.
“아, 글쎄 그런다고 치수 성님, 아니 임 대장님이 그러시잖어. 몇 번을 말해야 알어!”
오른쪽 콧등에 콩만한 점이 선명한 점백이가 대답했다. 나이는 서른 가량 되어 보이고 생긴 건 시골 무지렁이 형상이로되 눈빛 만큼은 예사롭지가 않은 이였다.
비단 점백이 뿐 아니라 아이처럼 칭얼대는 이십 대 중반의 조금산이도 눈매가 매서웠고 아무 말 없이 빙글거리며 둘이 하는 양을 지켜보는 이제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얼굴 빛이 하얀 젊은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대장님 안 계실 때 성님하고 나하고 이것들을 그냥 확 묻어버리잔 말 아니우.”
장난기 섞인 조금산이의 말에 포승에 묶여 재갈까지 물린 영중과 영일 형제는 흠칫 놀랐다. 바로 윤 군관이 보냈던 기찰 포졸들이었다.
올 해 40이 다 된 영중은 기가 막혔다. 자신이 이런 처지에 놓이다니…. 평양 유기전 주인의 식솔들이 안주 근교에 있다는 첩보를 갖고 윤 군관과 함께 일행이 안주 관아로 스며든 것이 이레 전이었다. 영중은 자신이 당하던 날을 떠올렸다.
안주 관아에 들어앉아 수소문한지 이틀만에 운곡 쪽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나흘간의 기일을 작정하고 곽 포교, 아우 영일, 그리고 자신이 흩어져 운곡 일대를 탐문했었다.
그러다 유기전 식솔들이 운곡에서 안주로 넘어들어 묵현(墨峴) 산자락 주막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하고 행인인척 봉놋방에 스며들었는데 이미 동생 영일도 와 있었다. 자신이 쫓고 있는 식솔과 인솔한 패거리들이 방 두 개를 모두 차지하니 그 좁은 시골 주막이 사람으로 넘쳐났다.
덕분에 봉놋방도 북적거려 영일과 남남인척 돌아앉아 한 패인 표를 내지 않고 은근히 건너 방 쪽을 살피는데 그 쪽 방문 앞 툇마루에 한 놈이 지켜 앉아 있으니 도무지 다가갈 틈이 나지 않았다.
내일 정오까지는 안주 관아로 돌아가 기찰 내용을 보고해야 하는데 갈등이었다. 여기서 돌아서야 하는가 하루를 더 지켜보아 길 챙기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여기서 돌아서서는 이들을 찾아 낸 보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의 근원을 알 때까지 따라 붙어야 할 것 같았다. 날이 밝고 이들이 떠나는 방향을 목도하면 영일을 윤 군관에게 보내고 자신이 은밀히 따라 붙으면 되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옆 자리에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누웠던 목자 험악한 위인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로 가는 뉘슈? 하룻밤 인연이지만 이렇게 동숙을 하게 되었으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그려. 난 영변 사는 임가요.”
영중은 이런 때에 누구와 잡담을 나누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무시하려 했지만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소홀히 대하는 것도 남의 이목을 끄는 일이겠다 싶어 어른 둘러댔다.
“평양 사는 김가요. 숙부님 댁에 기별할 내용이 있어 안주로 가는 길이외다.”
말을 건넸던 목자 험악한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영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두침침한 관솔불 너머로 잠깐 보였지만 영중은 그의 눈빛이 가슴보를 훑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예사롭지가 않다. 어쩌면 오늘 밤, 아니 지금 영일과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눈초리였다. 영중은 자기 봇짐과 나란히 얹어 대나무 지팡이처럼 위장한 창포검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왜, 불안하슈?”
이번엔 문을 사이에 두고 벽에 나란히 기대고 앉아 있던 오른쪽 콧등에 점이 있는 자가 쏘아보며 말을 던졌다. 영일도 사태를 심상치 않게 본 듯 만약을 준비하는 눈치였다.
“영일아 뛰엇!”
고함과 동시에 영중이 앉은 채로 튀어 오르며 두 발 낭성으로 점백이의 가슴팍을 차냈다. 점백이가 영중의 두 발을 가슴 앞에서 막았으나 발이 날아오던 힘에 떠밀려 봉놋방 흙벽에 금을 내는 사이 영중은 재빨리 방바닥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날았다.
영일도 뒤따라 누워 있던 이를 밟고 크게 뛰어 문 밖에서 낙법을 칠 자세로 날아올랐다.
순간, 목자 사나운 임가라는 이가 방바닥에 등을 붙인 채로 자신의 머리 위로 오른 발을 질러 영일의 명치에 박아 넣었다.
“꺽!”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