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에게는 차(茶)를 좋아하는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다. 바로 김종환. 업무상 조언을 얻기 위해 오랜만에 그 친구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워낙 차(茶)에 대해 관심이 많고 좋은 차를 많이 갖다고 소문이 나 있는지라 앉자마자 나는 업무는 뒤로 하고 갖고 있는 차 중에서 가장 좋은 차를 내달라고 했다.

종환씨는 "그래, 제일 좋은 차 줄게"하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차(茶)들이 빽빽이 들어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회사 사무실보다는 마치 찻집(茶房)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와 잔들 또한 구비되어 있었다.

▲ 찻집을 방불케 하는 많은 찻잔들.
ⓒ 조선희
세심한 설명과 함께 5~6차례 차를 우려낼 때마다 달리 느껴지는 차의 향기와 맛에 나와 함께 간 사람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차의 향과 맛뿐이 아니었다. 그 차를 담아 주는 잔과 찻집을 연상시키는 사무실에서 우리는 보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일본을 방문했었다. 그때 오사카 대학의 이사장 집에 초대 받아 녹차를 마셨던 기억이 나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것이 '말차'라고 하면서 우리를 위해 말차를 정성스레 만들어 주었다. 말차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차로 어린 고품질의 잎을 아주 곱게 빻아서 만든 차를 말한다. 외관상으로는 마치 우유를 섞은 것 같아 우리는 '녹차 카푸치노'라고 이름 붙였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정말 양질의 말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해야 할 일마저 잊었다.

▲ 정성스런 말차 만드는 과정
ⓒ 조선희
차를 언제부터 어떻게 좋아했냐고 물었더니 종환씨는 '차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맑게 해 주고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원래 이 친구는 성질이 상당히 급했는데 20년 전 절에 갔다가 스님께서 타 준 차를 마시게 됐다. 그때 마음이 너무 느긋해져 그 때부터 차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로 차에 대한 공부도 하고 전세계의 차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그 친구는 약 80여종의 차를 가지고 있다.

차는 차나무에서 나온 잎을 가리키는데 그 종류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홍차, 우롱차, 녹차 등이 있다. 요즘 접할 수 있는 국화차, 장미차, 과일차들은 '퓨전차'라고 할 수 있다.

▲ 색상이 고운 국화차와 장미차.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 조선희
차에 대한 그의 설명은 신명난 듯 계속됐다. 한국의 차는 주로 지리산 쪽 야생과 차 밭에서 따서 가공한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절기 중 곡우(봄) 전에 어린 싹을 따서 가공한 것을 '우전'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 우전이 한국에서 나온 차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지리산에서 겨울내 움추리고 있다가 새싹이 맛과 향을 품고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찻잎을 생산하는 나라를 보면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 타이 등이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거의 아열대 기후이므로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난 차 맛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종환씨는 '자아' 차를 "해남 대흥사 일지암 여연 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최고의 차"라며 자랑했다. 이 자아차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들어진다.

▲ 해남 대흥사 일지암 여연 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최고의 차 '자아'
ⓒ 조선희
그는 자아차와 함께 그림을 보여 줬다. 우리 나라에서 다포(茶布: 차 보자기)를 가장 많이 그리신 수안 스님의 그림과 지난 겨울에 열반하신 서옹 종정 스님의 다포였다. 다포는 찻잔을 올려 놓는 천을 말한다.

▲ 우리 나라에서 다포(茶布: 차 보자기)를 가장 많이 그리신 수안 스님의 그림.
ⓒ 조선희

▲ 서옹 종정 스님의 다포.
ⓒ 조선희
말차를 마시면서 "녹차를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내가 머리가 묵직하다고 했더니 친구는 국화차를 마셔야 한다며 이번에는 국화차를 만들어 주었다. 국화차는 맛도 좋았지만 그 모양도 예뻤다. 따뜻한 물에 퍼져 천천히 원래 국화꽃의 모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입뿐만 아니라 혀도 즐거운 국화차는 그간의 나의 피로를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책상 밑에는 남은 찻잎을 모아 담은 차 찌꺼기 그릇이 있었다. 친구는 이 찌꺼기들을 물에 섞어서 화초에 주면 좋다고 했다.

차도 마시고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예정보다 긴 외출이었지만 모처럼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 국화차. 이름만큼, 모습만큼 향기로운 차였다.
ⓒ 조선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