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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와트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위치, 5개의 탑당이 뚜렷하게 보인다.
ⓒ 김정은

힌두설화의 백미, 1층 갤러리

활 쏘는 자, 칼을 휘두르는 자, 서로 뒤엉켜 백병전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은 한치의 빈 공간도 찾아볼 수 없이 빼곡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잘 찾아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전장 속에서 허공을 가르는 마차바퀴조차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각도로 배열되어 있는 전투장면들….

분명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조각인데도 참혹함보다는 일체의 군무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선 하나 하나의 묘사가 딱딱하고 차가운 돌 사이를 우아하게 흐르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1층 복도 전체에는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종류의 부조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 힌두설화 <마하바라타> 중 쿠륵세트라 전투를 묘사한 부조, 인물 하나 하나가 생생한 정교한 조각기법이다.
ⓒ 김정은
동서남북 합쳐서 약 804m 정도 된다는 갤러리 벽면의 부조 중 맨 처음 나를 맞이한 전투 장면은 '마하바라타'라는 힌두설화의 쿠륵세트라 전투를 나타낸 부조이다. 설화 속에는 이 사원의 설립자 수르야바르만 2세가 경배하는 힌두교의 비쉬누 신이 나온다.

대략 내용은 인간들이 왕의 사후 왕위를 놓고 사촌끼리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 지리한 싸움의 결판을 내기 위해 결국 쿠륵세트라라는 지방에서 18일 동안 처절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그 틈에서 주인공인 아르주나는 죄없는 병사들의 끔찍한 살육 현장을 목격하고 과연 사촌과 백성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왕위를 빼앗아야 하는가에 회의하게 되었는데 그 때 목동인 크리슈나(비쉬누 신의 8번째 화신)가 나타나 질서 유지를 위한 살육의 정당성에 관한 설교를 하게 되었고 이에 감명받은 아르주나는 망설임 없이 사촌들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신이 살육의 정당성에 대해 설득을 하다니 비쉬누라는 신은 매우 특색 있는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수르야바르만 2세는 왜 하필이면 복도 벽면에 이런 왕위 쟁탈과 관련된 힌두설화를 새겨 놓았을까? 혹 삼촌의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된 이력을 비쉬누 신에 빌려 정당화시키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전투장면에 이어 곧바로 신을 우습게 여기는 교만방자한 인간을 징벌하는 내용의 힌두설화 '라마나야'를 조각한 부조가 나온다.

낯선 곳에서 느낀 내 나라의 흔적

▲ 칼을 뽑아 어깨에 두르고 늠름하게 코끼리 위에 서있는 수르야바르만 2세
ⓒ 김정은
이를 지나 남쪽 갤러리에 이르면 앙코르 제국의 번영을 증명하는 내용의 부조가 빼곡하게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주변 국가를 정벌한 뒤 코끼리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의 수르야바르만 2세와 높은 곳에 앉아 각국의 사신과 신하들로부터 충성맹세를 받는 왕을 볼 수 있다.

칼을 뽑아 어깨에 두르고 늠름하게 코끼리 위에 서 있는 왕, 그 주위에는 고결한 사람임을 나타내주는 의전양산들이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호종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호령소리가 들릴 것 같은 위풍당당한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이곳이야말로 앙코르와트의 존재감이자 그들의 찬란한 역사에 대한 자존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많은 사신이 방문할 정도라면 외국과 교류가 많았을 텐데 혹시 우리나라와는 별 관련이 없었을까?

▲ 우리나라 연화문 와당과 비슷한 모습의 꽃 조각. 혹 고려시대 우리나라와 교역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 김정은
분명 힌두교 설화와 관련된 조각들이 많지만 복도를 지난 사이사이에 수많은 압살라 조각과 함께 새겨진 조각들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나라의 연화문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뿐인가? 천장에는 우리나라 백제의 연화문 와당과 비슷한 모양의 꽃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더구나 이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 중기 정도였으니 혹 벽란도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증거는 없다보니 나만의 어이없는 상상만으로 끝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 관련된 아무런 기록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아니, 이들의 정교한 조각에서 어딘지 모르게 우리와 비슷한 점을 우연히 느낀 것은 혹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낯선 조각들 속에서 우연히 내 나라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니 역사 속에 묻혀질 뻔했던, 잊혀졌던 600년 왕국의 영화가 그 후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그네들의 불행한 식민지 역사 속에서 더욱 애잔해 보인다.

더구나 최근까지도 걸핏하면 태국 쪽에서 태국 왕가가 이 앙코르제국의 혈통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앙코르와트에 대한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심기를 살살 긁어놓는다고 하니 심심하면 한 번씩 뭐라 그러는 이웃나라를 둔 우리와 닮아 보였다. 위대한 조상의 역사를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벌(?)치고는 그래도 약한 것일까?

그래도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미흡하다 할지라도 조상의 역사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점일텐데 그마저도 요즘 이웃나라들의 역사왜곡으로 그나마 미약했던 역사조차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가운 연화문 조각 하나에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보니 매우 특이한 모습의 부조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천국과 지옥을 형상화한 부조였다.

▲ 힌두교에서의 염라대왕 야마의 모습. 여러 개의 팔과 물소를 탄 모습이 특이하다.
ⓒ 김정은
힌두교에서의 염라대왕인 야마를 축으로 하여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조각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곳은 바로 소를 탄 야마의 모습과 온몸이 못에 박힌 채 처벌받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었다. 4개의 눈과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야마는 물소를 타고 다니며 두 마리의 얼룩무늬 개를 호위병으로 부리면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을 관장하고 있다.

▲ 지옥도에서 온몸에 못이 박혀 벌 받는 모습. 실제 이러한 고문이 크메르루즈 시대 때 자행되었다고 한다.
ⓒ 김정은
자고로 착한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는 공통된 명제는 공기를 호흡하듯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텐데, 일설에는 이 벽에 새겨져 있는 참혹하게 못이 박힌 지옥 죄인의 모습 그대로가 실제 영화 <킬링필드>로 유명한 크메르루주 시기 때 숙청과 학살의 현장에서 그대로 자행되던 고문 방법이었다고 하니 갑자기 내 몸 안에 조각 속의 죄인처럼 못이 박히는 듯 따끔따끔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1층 갤러리의 부조들은 유해교반(필자 주: 앙코르 톰에서 다룰 예정임)을 비롯한 중요한 힌두교 설화와 관련된 이야기 등 기록문자들로 이 넓은 복도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크메르적 우주관을 구현한 앙코르와트 사원

▲ 제 3회랑으로 올라가는 계단. 백성들이 우러러 봐야할 만큼 까마득하게 보이는 시각적인 착시현상까지 고려한 그네들의 과학적인 설계수준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 김정은
이처럼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조는 자신들의 크메르적 우주관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다. 정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 힌두교에서 상징하는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이 있고 메루산 주위를 히말라야 영봉이 호위하며 그 아래 바다(해자)를 경계로 인간의 영역이 펼쳐진다.

이 우주관에 근거하여 사원의 구조를 살펴보면 3층으로 쌓은 흙 위에 제 1회랑이 세워져 있고 십자형 중회랑의 계단을 올라가면 약간 높아진 제 2회랑이 나타난다. 안뜰을 빠져나가면 급경사인 큰 계단이 나오는데 높이 솟은 5기의 탑당과 제 3회랑으로 연결된다.

▲ 제 3회랑에서 굽어본 사원의 모습
ⓒ 김정은
제 3회랑의 5기의 탑당은 바로 세계의 중심이자 힌두의 신들이 산다는 메루산을 상징하며, 주위의 벽은 히말라야의 영봉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제 3회랑은 비쉬누 신의 화신인 왕이나 힌두교 성직자 외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백성들에게 우러러 보일 만큼 까마득하게 보이는 시각적인 착시현상까지 고려한 그네들의 과학적인 설계 수준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힌두교의 신들


힌두교는 다신교로 여러 다양한 종류의 신들이 등장하나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을 꼽는다면 주로 우주를 창조하는 창조의 신 브라흐만과 파괴의 신 시바, 그리고 조정의 신 비쉬누 삼신을 꼽는다. 이 중에서 민중에게 친근한 신은 수르야바르만 2세가 숭배했던 비쉬누 신이라 할 수 있다.

독수리 가루다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비쉬누 신은 그 원 모습보다는 화신한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왜냐하면 비쉬누 신은 세상의 문제 해결을 위해 그에 적합한 대상으로 환생하기 때문인데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난쟁이 인간, 목동, 왕자 등등 다양한 종류로 환생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내용인 극적인 힌두 설화에 자주 등장하여 친근감을 갖게 만드는 신이다.

앙코르와트 사원 1층 갤러리 부조에 새겨진 힌두설화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또한 목동인 크리슈나로 화신한 비쉬누와 라마왕자로 화신한 비쉬누를 볼 수 있다.

특히 힌두교에 있어서 석가모니(싯다르타)는 아홉번째 비쉬누 신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다는데 이는 후에 앙코르제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이질감을 없애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앙코르와트 사원에는 불교를 믿게되면서 후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불상을 볼 수 있다. / 김정은
특히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신 앞에 한껏 낮추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만큼 신을 만나기 어렵다는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의 세계로 올라와 창문 너머로 저 까마득한 세상을 굽어보는 맛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아마 신과 조우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난간을 잡으며 지상에 내려옴으로써 신과의 만남은 끝났고 더불어 앙코르와트 사원과의 만남도 끝났다.

인간의 권력이 극에 달하면 그 인간들은 스스로의 권능에 도취되어 신이 되고 싶어한다. 중국의 진시황이 그토록 영생불사를 원했던 것이나 수르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비쉬누 신의 화신으로 자처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찰나의 권력에 기대어 신이 되고자 애를 쓴 인간들에 대해 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혹 신을 우습게 여기고 신의 권능을 넘보는 교만방자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무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까마득한 신의 영역을 넘보지 않고 같은 인간인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했다면 이처럼 엄청난 노역을 통해 백성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

결국 그 욕심 탓에 그 후손들이 관광수입으로 살고 있다고 본다면 그때 그 백성들의 노역의 대가가 돌고 돌아 몇 백년을 거쳐 그들 후손에게 지금 지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는지…. 그러고 보면 세상은 공짜가 없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인 앙코르 톰으로 가기 위해 망상을 애써 지우고 서둘러 일어섰다. 남겨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앙코르와트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네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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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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