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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늙은 목수집의 전경
ⓒ 장승현
오봉산 산자락에 독막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예전에 내가 지금의 아홉 살짜리 큰아들 만할 때 자주 가재를 잡으러 다니던 계곡이었다. 계곡이라야 산이 깊지 않아 겨우 물이 흐를 정도라 그때는 우리처럼 어린애들이 가재 잡기 십상이었다.

그곳에 목수가 살았는데 아직도 나이 늙어 혼자 외딴집에서 살고 있었다. 앉은뱅이처럼 납작하게 자리잡은 목수네 집, 그 집은 오랜 사람의 체취를 간직한 채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늙은 목수는 군불을 때는지 부엌에 앉아 장작을 디밀고 있었고, 아궁이는 하나인데 솥단지는 두 개 달린 해괴망측한 모습의 아궁이를 끼고 있었다. 아궁이 옆에는 막걸리 통이 놓여 있고, 방금 따라 마셨는지 막걸리 얼룩이 덕지덕지한 양은 막걸리 잔이 목수의 곁에 놓여 있었다.

"일루 와, 막걸리 한잔 혀…."

늙은 목수는 나를 알아보는지 막걸리를 권했다. 생각 같아서는 한잔 받아 마시고 늙은 목수를 한잔 따라주고 싶었지만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운전해야 해요."

90이 넘은 늙은 목수는 겨우 사람을 알아보는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장작을 패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겨우 숨 쉴 정도로 남아있는 힘으로 늙은 목수는 도끼를 내려 쳤다. 도끼는 나무에 정확히 꽂혔으나 힘이 약한지 나무에 그냥 박힌 채였다.

▲ 장작을 패는 늙은 목수
ⓒ 장승현
늙은 목수는 90이 넘어 혼자 살고 있었다. 젊어서 유명한 목수였는데 이 주변에서 잘 지은 집은 그가 다 지었다고 했다. 현재 서울에 가 있는 아들딸들이 있지만 늙은 목수는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 나 혼자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내 친한 친구 아버지이기도 한 이 목수는 끝내 자식들 집에 살 수가 없어 이렇게 혼자 외딴집 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 늙은 목수의 우물가
ⓒ 장승현
지난번에 내가 시골로 이사와 이곳에 찾아왔을 때 늙은 목수는 나를 보고는 아는 체를 했다. 어디서 내가 목수 일을 하고 다니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너 집 잘 지었다며? …좋은 기술 배웠구나. 요즘 목수들은 우리 때와 달라."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대목수한테 집 잘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과, 요즘은 기술이 아니라 첨단 기계를 사용하는 게 기술이지 손기술이란 사라진 지 오래기 때문이었다. 사실 같이 다니는 인테리어 목수들은 대패날 하나 조절할 줄 모르는 목수들이 허다했다.

▲ 늙은 목수의 발명품
ⓒ 장승현
어렸을 때 늙은 목수에 대한 기억은 몇 가지에 대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우리 어렸을 때 늙은 목수의 막내아들이며 내 제일 친한 친구의 썰매와 스키를 볼 때는 부러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각목에다 철사를 대충 깔아만든 썰매이지만 내 친구 것은 아버지가 소나무로 대패질을 해 홈을 파고 좀더 굵은 철사로 레일을 만들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기와집인 우리 집 마루 보가 힘을 받아 아래로 휘고, 터졌을 때 목수인 이 늙은 목수 양반을 불러 수리하는 모습이었다. 늙은 목수는 자끼로 보를 들어올리고 기둥을 깎고 보강을 해 수리를 했다.

▲ 젊었을 적 솜씨
ⓒ 장승현
"미치겠다야, 노인네가 말을 안 들어. 곧 죽어두 시골에서 혼자 살겄대."

지난번에 만난 친구가 아버지를 걱정하며 말했다. 멀리 떠나 있다 보니까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 멈춘 시계
ⓒ 장승현
늙은 목수는 시간가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도 멈추어 있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혼자 사니까 배고플 때 밥 끓여 먹고 밥 끓여먹을 힘 없으면 그냥 버티고, 하루의 계획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이 혼자 도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 가지런이 놓여 있는 생활도구들
ⓒ 장승현
살아가야지, 인생의 삶은 이렇게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여. 나도 한 때는 이렇게 솜씨를 자랑하고 살았단 말이야. 지금은 늙어서 장작 팰 힘도 없지만 난 평생 솜씨를 자랑하고 살았단 말이야.

▲ 젊었을 적 쟁기를 만든 솜씨
ⓒ 장승현
늙은 목수의 정자는 밑에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항상 외딴집에 살면서 아랫동네에서 사람이라도 올라오는지 아니면 언제쯤 아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는지 사람이 그리워 아랫동네를 바라보고 살아왔던 것 같았다.

나도 40년이 지나 50년이 지나면 늙은 목수처럼 혼자 살아가겠지. 손수 장작도 패고, 아궁이에 불을 때가며 남은 연장을 들고 나무를 깎으며 하루를 지내겠지. 시원한 땅 속에 술단지를 담아 막걸리 한잔씩 하며, 뭇 친구들을 기다리며,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겠지.

나도 망치와 못 주머니를 내팽개칠 날이 얼마 안 남았고, 늙은 목수가 되어 소리 없이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사라져 갈 날이 머지 않았다.

▲ 늙은 목수가 쉬는 정자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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