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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집회 홍보이미지. 한겨울 젊은이들은 서울과 부산 곳곳에서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밀양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집회 홍보이미지. 한겨울 젊은이들은 서울과 부산 곳곳에서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 밀양성폭력규탄
청춘은 어제를 뒤돌아보는 것보다 내일을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울린다. 젊은이는 인생의 봄날을 살아간다. 그러나 청춘이, 젊은이의 봄날이 꼭 포근하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봄날을 위해서는 어려움과 힘겨움에 맞서며 긴 겨울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어려움과 힘겨움은 젊음이 누려야 할 특권인지도 모른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어렵고 힘겨운 ‘길’에 나선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청춘의 열정과 패기를 간직한 채 토요일마다 서울과 부산의 ‘길’에서 촛불을 밝히기도 하고,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길’을 맨 몸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밀양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젊은이들과 학교 내 종교자유를 외치는 젊은이들이 그들이다.

성폭력은‘영혼에 대한 살해’

밀양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토요일 촛불집회는 새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새해 들어 촛불의 열기가 점점 더해지는 것 같다. 이들은 많게는 200여 명에서 적게는 30여 명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매주 촛불을 들며 시민들의 동참과 사건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비단 밀양사건만을 규탄하는 것은 아니다. ‘영혼에 대한 살해’인 성폭력에 대한 법 규정과 수사관행, 언론보도 등 사회 곳곳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가해자들을 비판하고, 경찰을 꾸짖고, 여성부와 언론을 질타하고, 정부를 성토했다. 지금은 밀양사건의 재수사를 종결한 울산지검을 비난하고 있고, 청와대 게시판과 신문고 사이트에서 지속적으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과 부산의 촛불집회도 계속하고 있다.

밀양사건 재수사를 종결한 울산지검을 비판하는 패러디. "구속이 안풀릴땐 울산지껌을 씹으세요!" 성폭력사건 처리에 대한 네티즌들의 강한 불만의 표현이다.
밀양사건 재수사를 종결한 울산지검을 비판하는 패러디. "구속이 안풀릴땐 울산지껌을 씹으세요!" 성폭력사건 처리에 대한 네티즌들의 강한 불만의 표현이다. ⓒ 밀양성폭력규탄
이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모임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기사가 거의 매일 오른다. 이들은 언론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 성폭력 범죄는 한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계획적으로 지속된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루도 성폭력범죄가 끊이질 않는다며 강력한 법개정과 진지하고 성실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커닝은 구속이고, 강간은 훈방이냐”고 성폭력 관련 법을 비판하는 이들의 구호에는 기성세대에게 쏟아내는 분노가 묻어난다. 이들이 커뮤니티에서 논의하고 있는 성폭력특별법은 다음과 같은 취지에서 제ㆍ개정됐다.

1994년에 처음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의 규제 범위와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것이 골자였다. 1997년 1차 개정은 근친간, 미성년자 등에 대한 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절차를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1998년의 2차 개정에는 카메라, 비디오 등을 이용한 몰래카메라 범죄 처벌에 관한 규정이 첨가됐다. 2003년 3차 개정은 피해자가 수사·재판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현행 제도의 미비점 개선을 위한 취지였다.

이들은 성폭력특별법의 개정 절차와 내용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 비디오 등의 중계장치에 의해 신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유명무실했다고 지적한다. 또 ‘성폭력 범죄에 대하여는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을 경과하면 고소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는 말이 안 된다고 비판한다.

밀양연합 카페의 네티즌 ‘인디언바바’는 “강간죄최소형량을 10년 이상으로, 특수강간의 최소형량을 15년 이상으로 조절해야 하며, 친고죄조항도 삭제하고 강간죄에 합의를 없애고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민형사상 소송을 모두 할 수 있게 합시다”고 주장하며 “범죄에서 14세 이상을 소년범이 아니라 일반범 취급을 해야 합니다. 성을 안 이상 어른 대접해줘야지요”라고 강력한 법 적용을 촉구했다.

울산지검의 밀양성폭력 사건종결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해서 토요일마다 젊음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도록 강력한 법개정을 하고 성폭력에 대해 수사 단체와 국민들의 대대적인 인식 전환을 꾀하자는 것이다.

학내종교자유는 청소년 인권문제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적인 사건을 이르는 말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종교는 정신적인 구원을 통해 함께 나누고 보듬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다.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배웠다.

학교내종교자유를 위한 심벌마크. 학생들은 자유로운 비상을 꿈꾼다.
학교내종교자유를 위한 심벌마크. 학생들은 자유로운 비상을 꿈꾼다. ⓒ 미션스쿨 종교자유
그러나 교육의 현장에서 종교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에게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해 강의석군의 문제제기로 종교자유를 함께 고민하던 이들은 지금 부산에서 서울까지 482km에 이르는 거리를 도보로 행진하며 자신들의 뜻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학내종교자유의 문제는 청소년 인권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고통스런 도보행진을 감수하면서 인권에 대한 토론과 강의를 통해 종교자유와 인권문제에 대해 인식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또 제도적인 뒷받침을 위해 미션스쿨(종교재단사립학교)의 종교자유침해 사례를 취합해 손해배상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종교와 관련된 문제는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멀게는 조계종 분규와 가깝게는 광성교회 문제까지 삶을 성찰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의 문제는 심각하다.

조계종 분규는 1994년 총무원장의 3선을 둘러싸고 종단 개혁을 주장하는 승려들과 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승려들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었다. 분규는 결국 집단 난투극으로까지 번져 불교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불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광성교회 문제는 원로목사와 현 담임목사 간의 내부갈등에서 촉발된 것으로 현재까지 1년여 동안 지속되고 있다. 기독노조파업에 찬성하는 원로목사측과 반대하는 담임목사측으로 나뉜 갈등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든 피해는 고스란히 교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기독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실망 또한 커질 것은 자명하다.

몇 가지 종교문제를 돌이켜 볼 때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사랑과 자비를 가르쳐야 할 종교인들의 모습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학교 내 종교자유를 달라며 거리에 나선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는 이유다.

종교자유를 외치는 커뮤니티 모임 미션스쿨종교자유의 서명게시판에는 수많은 지지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권태중씨는 “강요는 구속하는 것. 종교는 본래 자유다”고 종교의 본래 뜻을 한 마디로 표현했고, 정도영씨는 “종교를 위한 종교인가? 인간을 위한 종교인가? 아니면 종교를 위한 인간인가?”라고 종교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김동현씨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습니다”고 종교문제를 상식과 정의에서 논했고, 김지희씨는 “특수목적고와 같이 본인의 의지로 선택해서 가도록 미션스쿨입학에 대한 법부터 고칩시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들 커뮤니티 메인 화면의 문구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문구다. 그러나 학교 내 현실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힘들게 추위와 싸우고 힘차게 ‘학내종교자유’를 외치며 국토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국토대장정 중 흰 눈위에 쓴 '국토대장정 아자!' 이들은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주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국토대장정 중 흰 눈위에 쓴 '국토대장정 아자!' 이들은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주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힘들어도 성폭력법개정, 종교자유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

성폭력근절과 종교자유를 향한 어렵고 힘든 싸움. 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전환과 정부, 사법부, 검찰, 경찰에 이르기까지 제도 전반을 뜯어고쳐야 하는 어려운 싸움. 종교재단을 향해 동자승의 해맑음으로 다윗의 돌팔매질로 학교 내 종교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싸움. 이들은 왜 이렇게 힘겹고 어려운 싸움을 자청하고 나선 것일까?

'밀양연합 사건 과제와 해법' 운영자인 아이디 ‘juddy0301’를 쓰는 네티즌은 “밀양사건은 용의자측 주변 친구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 등이 네티즌을 자극했던 거구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중,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에서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청소년층을 크게 자극한 것 같다”고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밀양사건은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까요. 성범죄 사건을 놓고 보여줄 수 있는 온갖 병폐를 모두 보여줬던 상징적인 사건이니까요. 특히 가해자측 가족들이나 주변인 반응은 가히 엽기적이었던 게 현실이잖아요”며 “분명한 목표는 미성년자, 장애여성, 어린이에 대한 성범죄에 대한 강한 법적 조치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대학졸업을 앞두고 힘든 입장이지만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미션스쿨 종교자유의 국토대장정 최연소 참가자인 김영준(17)군은 “연일 지속되는 도보행진이 힘겨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육체적인 한계는 별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정신적인 한계를 이겨내고 싶어요”라며 “국토대장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인권문제인 종교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자신의 몸이 힘든 것은 종교자유를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는 더불어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종교자유를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요. 함께 하는 형과 누나들의 모습을 보면 뜻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15일 부모님이 오셨는데 제가 한계를 느낄 때 훌훌 털어버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전 끝까지 제 한계를 이겨내며 대원들과 함께 할 거에요”라고 국토대장정의 완주와 종교자유를 동시에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내일을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봄날을 ‘길’에서 싹 틔우려는 젊은이들. 이들이 어려움과 힘겨움에 맞서며 긴 겨울을 참아내는 모습에서 희망이 보인다. 이들은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주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려움과 힘겨움이 젊음의 특권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누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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