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최대 800명, 고속철도 KTX 1편성에 육박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에어버스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이 프랑스의 뚤루즈 플랜트에서 지난 18일 첫선을 보였다.
개발비만 총 137억 유로에 대당 가격이 2억8천만 달러에 이르는 이 하늘 위의 호텔을 개발한 에어버스측은 총 260대의 비행기를 팔아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이를 수 있는 형편이다. 지금까지 들려오는 소식은 나쁘지는 않다.
에미레이트 항공이 45대를 주문한 것을 필두로 루프트한자, 콴타스, 싱가폴 항공, 에어프랑스, 대한항공 등 14개 항공사에서 총 149대의 확정주문을 이미 받아놓은 상태.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A380을 선보인 행사장에서 이미 주문한 15대 외에 추가 주문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보잉측이 A380에 맞설 경쟁 기종의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지난 35년간 지구상 최대의 민항여객기로 명성을 날린 747의 독주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 셈이다.
에어버스 A380 순항중... 보잉 747 독주시대 막 내리나
초대형 여객기 시장에서 747의 뒤를 이을 후속기종의 개발을 포기한 보잉은 대신 '7E7 드림라이너'로 불리는 고속 운항이 가능한 중형기 개발에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있다.
보잉은 무려 800명 가까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메가플레인의 시장규모가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회수할 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미래의 항공여행객은 여행객으로 붐비는 허브공항에서 몇시간씩 기다려 최종행선지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보다는 출발지와 최종 목적지를 직결하는 비행기를 타고 지금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여행을 마치기를 원할 것이라는 게 보잉의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륙간 여행을 기준으로 최대 3시간 정도를 절약할 수 있고 도시와 도시를 직결할 수 있는 고속의 중형기 시장이 더 전망이 밝다는 것. 에어버스 측도 보잉의 이런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듯 하다. A380 외에 보잉의 7E7과 겨룰 수 있는 A350의 개발에도 착수한 것이 그 증거다.
보잉은 ANA 등 주로 일본의 항공사로부터 7E7 기종의 확정주문을 다수 받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에어버스의 공세에 체면치레는 한 셈이지만, 현재까지 주문량으로만 보면 세계의 항공사들은 미래의 항공시장 예측전에서 보잉보다는 에어버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들이 초대형 여객기를 선호하는 것은 유가상승, 테러위협에 따른 보험료 부담 등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운항경비를 절감하는 것이 발등의 불인 상태에서 A380이 747점보기에 비해 약 15% 정도 운항경비가 더 저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장시간의 비행이 될 수 밖에 없다면 대륙간 비행의 경우 2~3시간 정도 비행시간을 줄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공간에서 편안한 여행을 하기를 원하는 승객들의 욕구도 항공사들이 A380을 선호하는 이유다.
중동의 부호들이 주 고객인 에미레이트 항공은 구입한 A380기 중 일부를 1등석 전용기로 꾸며 호화스러운 여행을 원하는 VIP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에 따르면 승객들에게 호텔처럼 화장실이 딸린 전용객실을 제공해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고, 비행 중 샤워까지 할 수 있게 하며, 전용 바와 수영장까지 달린, 말 그대로 '하늘 위의 호텔'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메이저 항공사들이 초대형기를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간 항공협정에 따라 일일 이착륙 횟수가 제한될 수 밖에 없고 나리타 등 수용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른 주요 공항의 경우 더이상의 추가 비행기를 투입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 파리, 도쿄, 런던 등 세계적으로 항공기 체증이 심한 항로에 많은 비행기를 취항시키는 영국항공은 히스로 공항을 A380을 취항시킬 주력 허브공항으로 키우기 위해 터미널 개선 공사에만 8억4천만 달러가 넘는 막대한 돈을 투자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미래 항공시장, 에어버스 예측대로? 보잉 전망대로?
미래의 항공시장이 에어버스의 예측대로 가느냐 아니면 보잉의 전망대로 갈 것이냐는 허브공항을 지향하는 인천공항의 성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인천공항은 계획입안단계부터 이미 A380의 취항을 예상하고 설계되었다.
국내에서 출발하는 승객보다 미주나 대양주의 환승객 유치를 통해 동북아의 중심공항을 노리는 인천공항의 입장에서는 A380같은 초대형 여객기의 성공을 은근히 바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량의 승객이 A380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동북아 곳곳의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 중·소형기로 갈아타는 경향이 확연히 드러나야만 허브공항으로서의 발전이 가속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인천공항은 계획 단계에서 이미 A380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활주로를 설계했다"며 "탑승교 등 일부 시설만 복층으로 증축한다면 언제라도 A380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확인했다.
실제로 인천공항의 17번과 37번 게이트는 747보다 한단계 더 큰 규모인 F급 항공기의 계류가 이미 가능해 약 65억원 정도의 경비를 들여 탑승설비만 증축한다면 당장이라도 A380의 유치가 가능한 상태다. 인천공항 측은 A380같은 초대형 여객기의 유치전에서 전 세계 모든 공항 중 인천공항이 가장 앞서 있는 상태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만약 보잉의 예측대로 미래의 항공여행객이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고속의 직항편을 선호하게 된다면 허브공항을 지향하는 인천공항의 앞날은 당연히 암울할 수 밖에 없다. 이용객의 태반을 한국이 목적지인 승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환승객 유치를 통한 수익확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
A380은 1등석, 비즈니스 석, 이코노미의 3단계 좌석으로 편성할 경우 55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지만, 만약 전 석을 이코노미로만 꾸민다면 한 번에 최대 800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다. 이는 현재의 최대 여객기인 747의 적정 탑승인원에 비해 무려 2.5배가 넘는 막대한 규모.
항공사로서는 승객 1인당 운항경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팔 수 있다. 마케팅 전략에 따라서는 A380의 도입으로 항공여행의 파격적인 대중화가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A380 개발에 참여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에어버스가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투입된 기체의 개발에 성공한 반면, 보잉사는 당장 수익을 낼 것을 주문하는 주주들의 성화에 전전긍긍하다 미래 항공기 개발 전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A380 프로젝트의 성공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다시피 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과연 앞으로도 따라야 할 경영의 전범이 될 수 있을 지 다시 한 번 질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