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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이동하셔야 되는데요. 택시를 부르시든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마중을 나온 민박집 사람은 우리 짐을 보면서 걱정어린 눈빛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열한 시간이 넘는 비행 끝이라 피곤도 했지만 지하철로 가야 된다는 말에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며 짜증이 났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꼭 그렇게 해야 제대로 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다.

잠시 가만 있는 사이에 그는 우리 옆에 있던 다른 한 팀에게 가더니 지하철을 타고 어떻게 가는지 설명을 해주었고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보다는 적지만 짐들을 메고 지고 공항과 바로 연결 되어 있는 지하철 입구로 걸어 갔다.

"이것 보세요. 한국에서 계약할 때부터 4인 가족이 이박이면 숙소까지 무료로 픽업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송금까지 마쳤는데 무슨 얘깁니까?"

뭐 그렇게까지 인상을 험악하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기선제압은 언제나 중요하다.

"차가 없어서 안되는데요..."

나를 힐끔 본 그 청년은 차가 없다고는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어떻게든 차를 구해야지 지하철로 갈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그런 순간순간의 눈치와 판단을 할 수 있는 연륜이 적금통장마냥 쌓여 있다는 것이고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는게 아닌가.

더 이상 대꾸는 필요없다. 그냥 험악한 얼굴 표정만 유지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 쪽을 보고 싱긋 웃으며 오버임을 표시했다. 팀원들이 불안해 하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화장실도 다녀오고 음료수도 사 마시는 등 소소한 일들을 보는 사이 그는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데 차가 꼭 필요하다는 사정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결국 아주 낡은 것이긴 했지만 자동차가 왔고 짐짝처럼 우리도 실린채 민박집에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때 최종 조건이 결정되고 송금을 하게 되면 그 계약 내용을 꼭 프린터를 해서 가지고 가야 한다. 계약하는 사람 따로 있고 픽업을 나오는 사람은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에구 피곤해라 -런던히드로 공항에서
ⓒ 유원진

생전 처음 유럽땅을 밟으면서, 또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에 언제 다시 밟을 것 같지 않은 여행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이왕 간 김에 조금 무리가 돼도 많은 곳을 돌아보겠다는, 어쩌면 맞는 생각들을 하게 되고 게다가 기차여행이면 이동문제라든가 예약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어렵지만 자동차로 이동이 쉬워지면 욕심이 커지게 된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에 계획을 짤 때는 잠을 못자는 한이 있어도 한 달 내에 아예 유럽 전체를 다 보고 오리라고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 출발하기 전에 푸조사 한국담당과의 미팅에서 계획을 조정하면서 꿈이 깨지기는 했지만 런던 히드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도 짜여진 일정을 어떻게 하든 절약하여 특별한 곳을 한두 군데 더 들러보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런던에서 헤매고 다니면서 정해진 일정이라도 제대로 소화하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파리에서 차를 받으면서는 드디어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고 말았다. 유럽에서의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물론 목표가 상향조정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런던에서 파리까지의 힘겨웠던 이동과 파리에서 처음 자동차 열쇠와 함께 '헤브 어 나이스 츄립' 소리를 듣던 때의 막막함이 되살아나 등줄기가 찌릿하다.

▲ 유로라인 런던터미널 - 뒤쪽에 버스가 보인다
ⓒ 유원진

2004년 당시 영국은 유럽연합이면서도 단일통화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아 여전히 유로화가 아닌 파운드가 공식통용 화폐였다. 환전과 잔돈 문제 등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자동차 여행의 경우 도버해협 때문에 차량이동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이용한 오픈유럽 프로그램은 프랑스의 자동차회사에서 자사 차량을 홍보하기 위해서 새차를 리스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차량을 인수하거나 반환하려면 따로 비용을 물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다른 나라에서 반환할 경우 해당 차량을 프랑스로 귀환시키기 위한 차량탁송비용인 셈이다.

필자는 파리에서 인수하여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반납하였는데 탁송비용으로 거의 삼십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추가로 물어야 했다. 단 스위스의 제네바는 프랑스 국경에 인접해 있어서인지 추가비용을 물지 않고도 반납할 수 있다.

이것은 처음 일정을 짤 때 할인 항공권의 노선이라든지 경유지 그리고 자동차여행의 합리적인 이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이야기보다 본인이 심사숙고하여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여행사의 권고가 대부분 옳기는 하지만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여행사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비용을 아껴보려고 아등바등했던 필자도 후에 계산을 해보니 항공권 구입 시기와 차량리턴 장소 등의 비합리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네 식구가 합하여 약 60만원에 가까운 돈을 더 절약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동차와 항공권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경험담을 쓸 예정이다.

▲ 런던지하철 N.Acton 역에서-객차가 작고 귀엽다
ⓒ 유원진

필자는 빨리 사면 살수록 싸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듣고 5월경에 서둘러 항공권을 구입하였는데 출발이 임박해서는 오히려 더 싼 항공권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해약시 적지 않은 위약금을 물기로 하고 구입한 할인항공권이라 해약도 노선 변경도 할 수 없었다.

여러 군데에서 듣자니 할인항공권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고 그 변동폭도 크다니까 부지런히 손가락품(?)을 팔고 적당한 타이밍을 맞춘다면 개인이 아니라 가족일 경우 꽤 많은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서두르되 잘 살필 것. 항공권을 싸게 사는 왕도는 부지런함과 침착함일 것이다. 출발 당해연도의 국내 경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런던그린파크에서 점심먹기-김밥이 흉기같다
ⓒ 유원진

유럽을 여행한다면서 어떻게 산업혁명의 원조이자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추앙받던 영국을 뺄 것인가 하다가 필자는 죽을 고생을 하였다. 아무리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나 이야기 하라면 밤을 새워 할 수 있으되 두 번 다시 그 고생은 하고 싶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필자는 런던으로 들어가서 쮜리히에서 나오는 할인항공권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런던 인, 쮜리히 아웃 하면 좀 멋있게 들릴라나?) 짐을 싸면서도 어떻게 이 많은 짐을 자동차 없이 런던에서 파리까지 옮길까를 무지하게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필자 특유의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대뽀와 안 되면 돈으로 때우지 하는 무사안일로 생각하다가 몸살이 나게 고생을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민박을 예약할 때 돈을 조금 추가하더라도 유로라인 터미널까지 배웅을 조건으로 넣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참고로 하는 것이 좋다. 사실 해외여행의 많은 짐이라도 그리 고생 안하고 옮길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절대로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공항의 수레에 싣고 다니다가 차에 옮겨싣고 하는 경우에는 그리 힘들지 않으나 그 짐들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지하철은 못 타는 것이다.

▲ 런던 민박집앞에서
ⓒ 유원진

우리가 묵었던 한인 민박집은 전철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런던 관광 내내 전철을 이용했는데 하루 이용권 전철 티켓을 끊으면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서 지리에 어둡고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녀야 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지금도 런던을 생각하면 작아서 앙증맞게 귀엽지만 에어컨도 없어서 찜통이었던 지하철과 그 많은 유물들을 어떻게 훔쳐왔을까 하며 그 규모와 몰염치에 혀를 내두르던 대영박물관밖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게 없다. 물론 그것은 필자 자신이 예술이나 문화가치에 대한 무지식과 여행전문가가 아닌 그냥 대한민국 보통 이하 중년남자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임을 밝혀둔다. 어떤 이는 한달 내내 영국만 여행하는 이도 있었으며 영국을 모르고는 유럽이 어쩌고 하는 젊은이도 있기는 했다.

하여튼 그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유로라인을 타기 위해 유로라인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택시로 옮기려고 알아보니 사람 인원수대로 또 짐은 짐대로 따로 받는 요금체계 때문에 50파운드(한화 10만원)는 주어야 할 거라는 민박집관리인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지하철과 도보로 30분 거리를 10만원이라니! 공연히 약이 올라 그냥 지하철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두 번에 걸쳐 나르다가 골백번은 더 후회를 하였다.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씩씩하게 힘든 기색도 없이 도저히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짐들도 번쩍 번쩍 들며 필자를 감동시켰으나 네 식구가 일부 짐을 민박집에 두고 유로라인 터미널까지 짐을 날라 짐보관소에 맡겨두고 두 번째 짐을 가지러 가서는 차라리 10만원 주고 편하게 나를 걸 하며 몇 번이나 후회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을 경유하여 영국에 있는 동안 아무리 테이프로 단속을 잘 했다 하나 아이스박스 속의 김치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어서 결국 아이스박스는 개봉하여 김치맛을 보고야 말았다.

▲ 오나가나 살림하기는 마찬가지-런던 민박집
ⓒ 유원진

런던에서 출발한 버스는 버스채 배에 실려 도버를 건너는데 버스가 배에 실리면 승객은 무조건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탈 때까지 기사가 버스문을 잠그기 때문에 혹시 가지고 내려야 할 소지품이 있으면 처음 내릴 때 챙기는 것이 좋다. 우리도 수시로 버스를 탈 수 있는 줄 알고 빈 손으로 내렸다가 필요한 물건을 배낭에 두고 내려 낭패를 보았다. 아마 도난 문제 때문에 그리 하는 것 같았다.

배 안에는 식당과 매점 그리고 면세점까지 시설은 잘 되어 있으나 잠을 잘 수 있는 시설은 안 되어 있으니 혹 잠을 자려면 배에 타자마자 잠자기 좋은 의자를 선점하는 것이 좋다. 하기야 몇 시간 자지도 못하지만...

▲ 유로라인 프랑스 터미널
ⓒ 유원진

어차피 남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을 포함한 유럽 전체를 다 보지 못할 바에야 영국에 대해서도 심사숙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드골공항에 내려서 수레에 싣고 밀고 다니다가 공항에서 차량을 받아 바로 짐을 실어버리면 필자가 지금 지나치리만큼 언급하고 있는 산더미같은 짐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픽업과 리턴 전체를 영국에 머무를 민박집에서 차량지원을 해 준다면 문제가 쉬워진다. 그리고 반납도 가급적이면 프랑스 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항공권 구입때 신경을 써야 한다. 런던이냐 파리냐로 대변되는, 들고 나는 유럽도시의 선택은 자동차여행에서 짐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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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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