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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뀔수록 이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점점 더 높아져 이른 아침이건 한밤중이건 담장을 넘기 일쑤다.

한 해가 지나 또 한 살을 잡수신 아흔넷의 치매할머니 증세는 나이만큼 더 심해진다. 모처럼 여고 친구들과 반가운 모임을 가진 엄마가 휴가 중인 나를 믿고 나들이를 간 어제 하루 동안 나는 새삼 더 심각해진 할머니의 치매기를 실감, 또 실감했다.

수시로 조르고, 보채고…. 세상에 어느 아이가 우리 할머니보다 더 할까. 밥 달라, 과자 달라, 화장실 물 받아 달라 보채던 할머니는 어느새 드린 대로 모두 잡숫고는 “볼일을 보겠다”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장실 문을 열라고 호통을 쳐댔다.

"절대로 화장실 문을 열어주지 말라"던 엄마의 말을 어긴 순간, 나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던 약속을 잊고 뒤를 돌아본 순간 몸이 굳어버린 바로 그 신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고 말았다.

아무리 말려도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오려 들지 않았다. 물은 한없이 틀어 놓은 채 화장실 바닥에 흘러넘치고 변기에 속옷을 벗어 담근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당신 옷을 손수 빨겠다 고집을 피웠다.

우,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이렇게 씨름하며 보냈던 것일까. 오후 무렵 돌아온 엄마는 한순간에 그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받아들였다.

"휴, 옆집 노할머니는 한달에 300만원인가 하는 양로원으로 간다더라. 니 할머니가 그 소릴 듣고는 어찌나 당신도 가겠다고 졸라대던지…."

당신 뜻대로 안 해드린 게 노엽고 싫었던 것일까. 할머니는 오전 내내 화장실과 씨름하더니 오후부터는 죽은 듯 잠만 주무셨다.

그리고 다시 이튿날 새벽 3시 무렵. 온 식구가 잠들어 있는 사이 할머니는 또 엄마의 방문을 두드렸나 보다. "밥 줘, 왜 몇 년째 밥을 안주는 거야 이 XX야…."

충혈되고 피로에 지친 눈동자,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엄마 손가락 사이로 셀 수조차 없을 만큼 하얀 머리카락이 우수수 눈처럼 쏟아진다.

남은 휴가 마지막 하루. 깔깔한 아침식사에 지친 엄마를 위해 '지지직 툭툭' 커피 내리는 소리에 잠시 망연한데 어느새 할머니가 내게 한마디 툭 건넨다.

"넌 친정 와서 좋지. 나처럼 잔소리도 안 듣고. 좋을 거야…." 순간 나도 웃고, 엄마도 피식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와, 나는 우리 할머니 때문에 혼사길 다 막혀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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