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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에 런던을 출발한 버스는 페리에 실려 밤새 도버해협을 건너 정확히 아침 6시 파리의 유로라인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토해 놓은 산더미 같은 짐을 보자 다시 뒷골이 땡겼으나 그렇지 않아도 새벽의 으스스한, 꼭 우리나라의 우범지대같은 분위기의 터미널에서 다른 승객들은 모두 순식간에 흩어지고 우리 식구만 달랑 남아 모두들 불안한 기색인데 나까지 그러면 안 되겠다 싶어 명랑하게(?) 사태를 수습하려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그 많던 사람들이 단 1~2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게 아주 신기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런던 터미널같은 소란스러움(그래서 좋았던)도 없고 사람들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주는 짐들을 숫자를 세어가며 몇 번이나 확인해서 받아놓고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신개선문이라는 라테팡스를 어떻게 가는지 물어물어 해결하려 했는데 도대체 누가 있어야 물어볼 것이 아닌가.

▲ 독사진 하나 못 찍어준 우리의 자동차
ⓒ 유원진
한국에서 알아본 대로 터미널에서 차량인도장소까지 가려면 역시 짐을 가지고는 무리라는 생각에 런던에서와 마찬가지로 짐을 보관소에 맡겨놓고 먼저 차를 받아와서 짐을 찾아 싣기로 했다.

런던에서 보관소에 짐을 맡겨 본 경험이 있는지라 찾아 다녔으나 무인라커밖에 없었는데 그놈의 보관함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내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어떤 여행객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네 지하철 역에 있는 유료보관함과 똑같은 원리인데 낯설은 문자와 처음 보는 동전 그리고 당황스러움에 허둥지둥댄 꼴이다.

동전만 해도 영국에서 파운드를 쓰다가 갑자기 새벽에 유로동전을 구하려니 어려웠다. 매점에 찾아가서 판매원 아줌마에게 동전교환을 부탁하였으나 자기 쓸 것도 없다고 매정하게 거절을 해서 마시고 싶지도 않은 소태같이 쓴 커피를 아내와 함께 사먹은 다음에야 원하는 만큼의 동전을 구할 수 있었다.

커피 위드 프림 앤 슈가라고 얘기했더니 아무 말없이 아주 작은 잔에 농축액같이 찐한 커피를 주는데 그야말로 커피 엑기스였다. 우리네 다방식 커피를 영어로 몇 번 얘기하다가 내 영어가 맞는 것 같지도 않고 또 그 아줌마 역시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그냥 받아들고 나와버렸다. 한 모금 마신 아내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 런던 타워브릿지에서
ⓒ 유원진
네 식구가 큰 무리없이 들고갈 만큼만 남기고 두 군데 보관함에 짐을 넣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까르네라고 하여 10장 단위로 사면 싸다는 말을 듣고 20장을 산 뒤 지하철을 탔다.

런던에는 일일 무제한 이용권이 있어서 좋았는데 파리는 할인은 해주되 탈 때마다 한 장씩 내는 식이었다. 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으나 전세계인들이 많이 모이는 파리에서도 동양인 배낭 가족 보기는 흔치 않은 듯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유로라인 터미널에서 라테팡스 역까지는 지하철로 파리를 관통하며 끝에서 끝까지였으나 파리가 그리 넓지 않아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라테팡스 역에 내려서 차량인도장소까지 쉽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은 데 있었다. 가지고 간 약도는 설명을 부실하게 들은 탓에 무용지물이었고 프랑스인들은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영어로 몇마디 물을라치면 손사래부터 쳤다. 물론 웃으면서.

▲ 타보지는 않았지만 런던아이를 배경으로..
ⓒ 유원진
혹자는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안 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표정을 본 필자 생각에는 못하는 것 같았다. 관광지 아닌 프랑스 거리에서 영어는 언어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굴뚝없는 산업이라 하여 대통령까지 광고모델로 나설 정도로 관광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온 국민의 영어 말하기 수준을 가지고 말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되 관광 대국이라는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국민들의 영어 수준과 관광산업의 번창은 상관관계가 약한 것 같다.

▲ 지구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그리니치 천문대.
ⓒ 유원진
어쨌든 역에서 온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길을 묻기 시작했다. 온 식구래야 집사람은 영어가 된다 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거는 성격이 아니고 이제 중1인 태민이도 아직 실전이 안된 영어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래도 학교에서 한 학기나마 불어를 배웠고 오기 전에도 특별히 불어 회화를 부탁해놓은 터라 모두 예니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저기 부지런히 묻고 다니더니 그래도 방향은 잡았는지 버스를 타자며 앞장을 섰다. 필자는 뭔가를 알아내 오는 예니에게 다가가 슬쩍 물어 보았다.

"한 학기 공부 한 걸로 곧잘 하네. 근데 불어로 하긴 한 거야?"

▲ 양주 브랜드로 더 유명한 커티샥호-신임 여자 선장
ⓒ 유원진
그나마 예니의 몇마디 불어가 아니었으면 영어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고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최대한 차량인도장소를 숙지하고 머릿속에 달달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하며 잘 모르겠으면 골백번이라도 물어서, 찾아 가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그렇다. 제일 좋은 방법은 드골공항에서 차를 인수하는 것이겠지만….

▲ 람세스나 나나, 이방인이긴 마찬가지..
ⓒ 유원진
라테팡스의 푸조 소덱스사는 한가했다. 꼭 우리나라 정비업소같은 건물 분위기에 1층으로 들어가니 여직원이 맞이한다. 혹시 하고 겁을 먹고 영어를 하니 그래도 업무가 업무인지라 영어가 유창하다.

조금 서투른 영어가 알아듣는 데는 더 낫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기다리니 중년 남자가 나와 몇 권의 책자와 서류를 주며 이것 저것 설명을 하는데 아마 보험에 대한 내용과 반납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들은 내용이고 뭐 별반 중요한 것이 있을 성 싶지도 않아서 사고나면 어디로 전화하느냐만 여러 번 물어 확인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잘 들리지도 않아서 건성건성 들었다.

한국에서 계약할 때는 제네바에서 차량을 반납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취리히로 바꾸고 싶다니까 차량 반납 사흘 전에 취리히 쪽 사무실로 전화를 하라며 책자에 전화번호가 있다고 책장을 넘긴다.

나는 한국에서 올 때 여기다가 말하라고 들었고 유럽이 낯설어서 정확히 사흘 전에 전화하기도 어려울테니 지금 변경 처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무조건 '사흘 전 취리히'만 반복하였다.

영국에서도 몇 번 공중전화를 하려다 애를 먹은 경험이 있어서 반납건만은 확실하게 해놓고 출발하려던 것이 무산되어 마음이 조금 무거웠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 그리니치에서 내려다 본 해양박물관과 런던 시가지
ⓒ 유원진
한국에서 처음 일정을 짤 때 치밀하지 못했던 탓에 런던으로 들어가서 취리히로 나오는 항공권을 구입하고 차량은 탁송료를 물지 않는 제네바에서 반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는 제네바에서 취리히까지는 기차로 여행을 해보려는 낭만적인 계획을 세웠다. 전에 언급했듯이 언제 유럽에 다시 오랴는 생각에 기차여행도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면서 제네바에서 차를 반납하면 그때부터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등급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차요금이 탁송요금보다 더 비싸서 고심끝에 낭만보다는 실용과 안전을 선택한 것이다.

필요없는 탁송료 때문에 귀국 노선을 변경하려 했지만 할인 항공권이라 불가하였다. 결국 반납지를 변경해 달라고 한국에서 신청을 하였는데 담당이 현지에서 차량을 인수할 때 말하면 쉽게 해 줄 것같이 얘기하더니 일이 어렵게 되었다.

한국측의 잘못인지 푸조사측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처음 차를 인수하면서 유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같은 영어 말하기 듣기라도 전화로 하면 또 이상하게 더 어려워진다.

아마 얼굴을 안 보고하기 때문에 눈치 커뮤니케이션이 빠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외국에서는 공중전화 쓰기가 어려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 알리바바의 거대한 창고-대영박물관
ⓒ 유원진
파트너라는 차는 차량 이름답게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외관이 늘씬한 것도 아니고 오픈카도 아니어서 멋지지는 않았지만 새차인데다가 실내를 여행을 위해서 만든 것처럼 각종 수납공간과 편의성이 돋보이는 해치백 스타일의 야무진 차였다.

트렁크가 넓어서 우리 식구가 여유있게 타고도 그 많은 짐이 다 들어갔다. 색상도 내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하늘색 바탕에 반짝이는 펄을 뿌려놓은 듯 소박한 멋을 부린 것이 단아해보였다.

처음부터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계획했으면 사진이라도 잘 찍어 두었을 것이다. 안내를 받아 간 곳에 서 있는 차를 보는 순간 자동차여행이 실감 나면서 금방이라도 유럽을 한바퀴 돌 수 있을 것 같이 기뻤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그 매니전지 멤번지가 이것저것 대충대충 설명을 하더니 '헤브 어 나이스 트립'하며 내 손에 자동차키를 올려놓는 순간 자동차키의 황금색 금속이 햇빛을 받아 번쩍했다.

난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으며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싶어 겁이 나는데 그런 내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아이들보다 더 아이같이 좋아하며 생글생글하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운전석에 앉아 이것저것 점검을 해 보았다. 하여튼 딱지를 백장을 끊든 수많은 유럽 운전자들에게 욕을 먹든 우리 네식구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 뭐 하면서 오디오나 기타 몇 가지 작동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서 결국 한 달 내내 시디만 듣고 한 번도 라디오는 틀어보지도 못했다. 연료를 많이 주지 않으니 바로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게이지는 상당량을 표시하고 있었고 새차 특유의 냄새가 기분 좋았다. 언제 외제차를 타보랴, 앞뒤 전등과 경음기 깜빡이등을 점검한 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호기있게 말했다.

"자 타(야타?), 가자구 까짓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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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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