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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건은 아직 한글을 모릅니다

지난 5일 토요일로 아들(윤홍건)이 초등학생이 된 지 3일이 지났다. 지난 한주를 보내고 우리는 둘 다 문자 그대로 ‘파김치’가 됐다.

입학식은 3월 2일 오전 11시에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가 부랴부랴 입학식 시간에 맞춰 학교로 달려가는 통에 홍역예방주사 접종확인서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해 간 것이 없었다. 마치 대학합격자 발표장에서 이름을 찾듯이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두번이나 훑은 끝에 윤홍건 이름 석자를 찾아 이름표 목걸이를 걸어주고 1학년 4반 아이들 틈으로 들여보냈다.

그제서야 꽃다발을 들려서 디지털카메라로 아이를 찍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와 아빠들이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은 그렇다 치고, 기념사진 한장 남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럴 땐 핸드폰조차 카메라폰이 아닌지….

엄마가 서 있는 걸 확인하고자 내내 뒤를 보고 서있는 윤홍건을 지켜보고 있자니 걱정이 밀려왔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고 지난 2월 험난한 여정을 넘어온 탓에 아이가 더 소심해졌다. 교장 선생님이, 재학생 대표가 짜여진 행사 일정을 쫓아가고 있을 때 그 연단 옆에 서서 나는 주책스럽게도 ‘울었다!’

지난 2월은 정말 파란만장했다. 낯선 집, 새로운 교육 환경, 낯선 친구들, 그 공백을 하루라도 줄여보고자 2월 1일부터 윤홍건을 엄마 직장 근처의 방과후학교에 보냈다. 2월 하순에 방과후학교 근처로 이사를 올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32~33km 거리를 고속도로로 달려 출퇴근했다.

방학 중에 방과후학교는 9시30분에 시작했기 때문에 윤홍건은 매일 아침 방과후학교의 형아나 누나네 집에 맡겨졌다. 아침마다 모르는 길을 찾아 누구네 집 앞에 도착하면 시간은 이미 출근하기에 빠듯한 시각이 되어 있었고, 출근하기 바쁜 나는 낯선 집 앞에서 주저하는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일찍부터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아이의 처지를 생각하면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하기보다 조바심이 먼저 일었다. 아이의 등을 떠밀며 큰소리가 오가고, 윤홍건은 ‘한번만 데려다 달라’며 울고, 나는…….

그래서 그랬다. 이틀에 한번 꼴로 어디로 증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던 현실을 넘어 입학식 대열에 끼여있는 윤홍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절로 났다. 참 울 일도 없다.

어려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한달, 초등학교 1학년 적응프로그램은 일하는 엄마가 혼자 아이와의 일상을 꾸려나가기에 불가능하도록 짜여 있다. 윤홍건이 다니는 학교는 첫 주는 10시~11시 30분 2교시, 두번째 주는 9시 10분~11시 30분 3교시 수업을 한다. 그나마 두번째 주의 계획은 첫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공지가 됐다. 한달을 내내 휴가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아니고서야 친척을 동원하거나 베이비시터를 구하거나 누군가의 ‘개별적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정이 아닌가. 방과후학교나 학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정이 아닌가 말이다.

2월은 고달픈 한달이기도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노심초사가 더욱 심신을 지치게 한 시간들이었다. 학교마다 조금은 다른 일정으로 1학년 적응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 불규칙한 일정에 맞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걱정만 할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오빠네와 방과후학교의 엄마들과 몇 번의 ‘작전회의’를 거쳤지만 결국 지방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이 오셔서 홍건이와 조카를 각각 돌봐 주시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아무리 문이 닳도록 들어가도, 학교에 전화를 해서 상대가 짜증을 낼 만큼 집요하게 물어봐도, 입학식 당일까지 3월의 등하교 시간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입학식에 대한 안내조차 홈페이지에 올라오지 않았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일단은 매우 당황스러웠고, 교육 행정의 일방적인 횡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하는 엄마가 늘면서 보육이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은 지난 수년간 피부에 와닿게 확산되었다. 비록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지만 문제 의식의 공감대는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보육에서 교육으로 넘어가는 초등학교 1학년 3~4월에 대한 문제 의식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는 엄마로서, 모성을 담보로 엄마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격렬한 항의로 일관했던 나 자신조차도 현실로 닥쳐와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다.

현재의 적응프로그램은 제각각 자라왔던 아이들이 40분 수업 시간 동안 제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소 ‘경직된 환경’으로 적응하는 데는 ‘경직된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만을 점차로 늘여가는 지금과 같은 방식도 있지만, ‘자유로운 환경’과 ‘경직된 환경’을 적당히 섞어서 ‘경직된 환경’을 점차 늘여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학교가 즐거운 공간이라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데에도 후자의 방법이 더욱 유리하리라 생각한다.

이는 또한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아이를 맡겨야만 했던 일하는 엄마에게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적응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처럼 꼬박 10시간, 12시간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3월을 변칙적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등하교 시간을 일정하게 정해서 미리 공지함으로써 아이가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다.

그 일정한 시간 내에서 ‘경직된 환경’을 늘여가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새 친구, 새 학교, 새 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자는 말이다.

윤홍건은 초등학생이 된 지 3일이 지났지만 짝꿍 이름조차 물어볼 시간이 없었단다. 3일 밖에 가보지 않았으면서 벌써부터 ‘학교는 공부만 해야 되니 재미없을 것’이라는 윤홍건과 친정 조카의 말이 참 가슴에 와닿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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