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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하우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하우스 ⓒ 성락

전업 농사꾼인 이화섭(43·안흥면 지구리)씨의 하우스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지난 7일 오후. 비닐과 보온덮개, 각종 플라스틱 파이프 등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찬 700평짜리 대형 하우스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선 과열로 추정된다.

타버린 전기선과 하우스 내부
타버린 전기선과 하우스 내부 ⓒ 성락

이 하우스는 이화섭씨가 지난해 정부 보조금 7천만원과 자부담 5천만원 등 총 1억2천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신축한 것이다. 보온 및 환기, 급수 등 모든 과정을 최첨단 자동화 시설로 갖춘 이 하우스에는 금년 농사용 파프리카 묘목 4백여만원 어치도 함께 있었다. 신축 하우스를 단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채 화마의 제물로 바친 셈이다.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화재 흔적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화재 흔적 ⓒ 성락

그 무너지는 절망감을 다잡아 준 것은 바로 지역민들과 횡성 농업기술센터. 주민들과 행정기관의 주선으로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동원돼 어제 하루 못쓰게 된 비닐을 모두 끌어내렸다. 농업기술센터는 곧바로 손실 내역을 조사, 신속히 복구해 금년 농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오늘 화재의 흔적을 말끔히 정리하는 작업에 안흥면 자율방범대원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불탄 하우스를 정리하는 대원들
불탄 하우스를 정리하는 대원들 ⓒ 성락

오전 9시. 대원들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지구리 이장님을 비롯해 지역민들도 동참했다. 비닐이 녹아내려 굳어버린 흔적을 제거하고 하우스 전체를 천장처럼 덮고 있는 차광막을 조심스럽게 끌어내렸다. 불에 탄 부분을 도려내고 새 것으로 이어서 다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는 대원들
자신의 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는 대원들 ⓒ 성락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화재 흔적들을 치우고 하우스를 덮었던 불에 탄 비닐을 모아 폐기물 처리차량에 싣는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모두 자신의 일로 여기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불에 그을린 물건들과 씨름하다 보니 금세 대원들의 얼굴도 거뭇거뭇 얼룩이 졌다. 서로 바라보며 그을린 얼굴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느라 힘든 것도 느낄 수 없다.

동네 부인회에서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은 얼큰한 김치찌개 안주를 냈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대원들의 기관지를 자극하지만 소주 한잔과 곁들여진 김치찌개 안주는 이를 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동네 부인회에서 푸짐한 점심상을 준비했다
동네 부인회에서 푸짐한 점심상을 준비했다 ⓒ 성락

부인회에서는 푸짐한 점심도 준비했다. 당초 자율방범대는 따로 식당에 점심예약을 하려 했지만 동네 부인회에서 기꺼이 재난 당한 이웃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화를 당한 이화섭씨의 상심이야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겠지만, 이러한 주변의 따스한 손길이 있음으로 다시 한번 재기의 희망을 살려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화재를 피한 파프리카 묘목
화재를 피한 파프리카 묘목 ⓒ 성락

4백여만원 어치 파프리카 묘목 중 피해를 입지 않은 일부는 오늘 긴급히 횡성 농업기술센터 온실로 옮겨졌다. 이화섭씨에 의하면 약 20%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나머지 필요한 묘목은 농업기술센터의 주선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됐다. 기술지도 기관의 여러 분야에 걸친 지원에 이화섭씨는 용기를 다시 찾은 모습이다.

이화섭씨.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랍니다.
이화섭씨.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랍니다. ⓒ 성락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이처럼 도움과 용기를 주시니 다시 한번 해 보자는 각오가 생깁니다. 올 농사 열심히 지어서 도와주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화섭씨는 화재 복구가 신속히 이루어져 빠르면 일주일 내에 비닐하우스를 원래대로 복구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렇게 되면 농사일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파프리카는 최근 안흥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농가가 크게 늘고 있는 유망 작목이다. 전량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정이 메말라가는 사회라고 누가 걱정했던가. 오늘 기꺼이 이웃의 어려움에 발벗고 나선 안흥 자율방범대원들에게는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말이다. 이보다 더한 재난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다 함께 나눠 가진 뜻 깊은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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