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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 지난 1월 19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개최한 '국회 속 서민의 목소리 제1회 민생포럼'에서 한 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임대아파트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부도난 임대아파트인 장백아파트. 최근 이 아파트는 건설업체의 부도로 경매에 넘겨졌다.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도 못하고 졸지에 길거리로 내쫓길 나락에 처한 최해길(50)씨는 자신의 아파트 경매현장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경락자에 손찌검을 가했다가 법정구속됐다.

"임대사업자들끼리의 담합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며 폭행사실을 시인한 최씨는 14일 현재 8일째 울산구치소에서 "내 집을 돌려달라"며 단식을 진행중이다.

국민은행 등 국민주택기금 위탁운용업체의 '과거'의 대출관리 부실로 '현재'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건교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건설업체(임대사업자)의 부도로 길바닥으로 내쫓길 처지에 있는 임대아파트 입주민만 지난해말 현재 12만 가구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경매에 부쳐진 '내집'을 찾기 위해 법원을 들락날락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처럼 건설업체의 부도로 피해가 속출하게 된 원인은 기금 위탁업체의 부실한 기금 대출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IMF 직후인 98년과 99년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민간건설업체 임대주택의 의무임대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던 탓이 크다고 한다.

부도임대아파트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는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당시 영세한 군소 건설업체들은 부동산 경기부양 흐름에 발맞춰 한몫을 챙기기 위해 너도나도 임대주택 건설에 대거 뛰어들었다"며 "정부와 당시 주택은행은 이들 업체에 국민주택기금을 무분별하게 대출하면서 이러한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국민주택기금은 '눈먼 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를 노리는 부실한 중소건설업체에게 국민주택기금 수탁 금융기관의 부실한 대출관행은 그야말로 건설판 '아리랑치기'의 표적이 됐다는 것이다.

현재 언론을 통해 터져나오고 있는 임대아파트 부도사태는 바로 이 시기에 이뤄진 부실한 국민주택기금 대출의 부산물인 셈이다. 당시 5년 임대아파트 유형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지금 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 경남 양산시의 부도난 임대아파트인 장백아파트. 이 아파트는 최근 단지째로 경매에 부쳐져 입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 장백아파트 비대위
98년 민간업체 임대사업 활성화 정책이 화근...2004년부터 피해자 속출

이는 순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가 국민주택기금을 대출받은 비중이 40%를 넘어서고 있다는 KDI의 통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KDI가 지난해 12월 31일 펴낸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승인받은 건설업체 가운데 순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한국신용정보(주) 데이터베이스에 재무자료가 수록된 117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한 결과다.

또 임대주택사업자의 특성을 고려해 임대 후 분양을 승인받은 업체만을 살펴본 경우에도 순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업체가 62∼7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임대주택보급 활성화라는 정부정책에 부응한다는 명분만 있으면 재무구조에 상관없이 국민주택기금을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논문은 "상당수 임대 사업자의 재무구조가 우량하지 못한 점은 서민층의 주거환경 보장측면에서도 시급히 시정돼야 할 부분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대출 집행도 이같은 부도사태를 키웠다. 부실 대출 논란이 일고 있는 지난 2000년 국민주택기금의 대출승인건수를 보면, 주택보급률이 높고 미분양 주택이 상당히 존재하는 지방에 대출을 많이 해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분양으로 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대출에 나섰다는 의미다.

주택보급률 100% 넘는데도 국민주택기금 대출

각 도별 주택보급률 현황

 

지역

2000년 주택보급률

2004년 주택보급률

경기

92.4%

95.8

강원

117.8

120.1

충북

112.5

114.7

충남

122.3

125.4

전북

115.8

118.0

전남

122.6

126.8

경북

115.9

120.2

경남

105.7

111.8

제주

98.7

108.8

 

ⓒ 건설교통부 제공
지난 2000년 지역별 주택공급자 대출 승인건수 및 승인금액 분포도에 따르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는 지역에 대출된 승인 금액의 비중이 공공임대 64%, 중형임대 56%로 나타났다.

이는 곧바로 부도업체의 지방집중화 현상으로 나타났다. 당시 임대주택 부도업체수는 서울, 인천의 경우 각각 1개 업체에 불과한 반면, 충남 104개 업체, 충북 74개 업체, 전북 64개 업체, 경북 61개 업체로 지방의 비중이 현저히 높았다.

때문인지 부도임대아파트의 세대수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있는 지방이 그렇지 못한 서울·수도권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부도임대아파트 관리 현황을 보면, 충남이 1만5771세대(21.74%)로 부도난 임대아파트 세대가 가장 많았고, 이어 경북 1만920세대(15.05%), 충북 1만460세대(14.42%), 전북 9817세대(13.53%) 순이었다.

정리하면, 국민주택기금 수탁 금융기관의 부실대출→임대사업자(건설업체)의 부도→금융기관의 근저당 설정 담보권 행사를 위한 경매절차→금융기관의 국민주택기금 회수→임차인(입주민)의 보증금 결손 등의 과정을 거쳐 피해자가 양산된 것이다.

"부실 대출은 불가능" 건교부·국민은행 부실대출 가능성 일축

[국민은행과 건교부의 반응] 국민은행과 건교부는 당시의 부실대출 가능성에 동의하지 않았다. 부도 대출금이 높아진 것은 IMF라는 특수한 상황을 거치면서 발생한 특이한 경우라는 것이다. 부도업체가 늘어난 것도 건설경기의 부침에 따른 경기사이클에 의한 결과이지, 부실한 대출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건교부 주거복지과의 한 관계자는 "은행과 관련기관의 의견을 반영해 계량화된 대출심사평가표라는 것이 있다"며 "평가결과에 따라서 40점 이상이 나오는 업체에 한해서 대출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대출심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부실대출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쪽도 부실대출 가능성 자체를 일축했다. 국민은행 국민주택기금팀의 한 관계자는 "IMF 직전 부도 대출금은 3000억대 수준이었지만, IMF를 거치면서 3조원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라며 "이는 대출심사에서 발생한 문제라기 보다는 IMF라는 아주 특수한 상황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금을 대출할 때 대출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선급금 시스템이 아니다"라면서 "공사의 진척도에 따라 대출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고의부도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부도대책위 "땅 감정가 높여 대출 규모 늘리고 진척도도 허위로 꾸몄다" 주장

하지만 바닥 흐름은 전혀 달랐다고 임대아파트 부도대책위쪽은 전한다. 윤세범 부도대책위원장은 임대아파트 부지의 감정가를 임의로 높여 국민주택기금을 과다대출 받거나, 공사 진척도를 허위로 꾸며 미리 대출금을 타내는 방식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은 "이러한 부실한 대출관행은 임대사업자와 해당 금융기관, 지방자치단체가 끈끈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윤 위원장은 "국민은행에서 임대사업자에게 제대로 된 보증이나 담보없이 대출 해놓고, 부도만 났다하면 임차인에게 다 받아낸다"며 "만약 이조차 이뤄지지 않으면 높은 금액에 분양을 받게끔 뒤에서 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의 진술도 윤 위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본부장은 "실제 실적은 따지지 않고 임대사업만 하겠다는 의사만 내비친 뒤 땅 주인과 일정 정도 동의만 하면 바로 임대아파트 건설사업 승인이 떨어진다"며 "그러다 보니까 적격업체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떴다방' 수준의 건설업체에 주택기금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이러한 부실대출의 원인에 대해 "민간아파트에 기대어 임대아파트를 확보하겠다는 식의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며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민간임대사업자 중에는 정부의 부실한 임대아파트 공급정책에 편승하여 고수익을 노리기 위해 고의부도를 내는 사업자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과 내통하여 불법적인 대출을 받고 경매를 하더라도 주민들에게 배당금 한 푼 남지 않도록 만드는 사업자들도 부지기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선매수제 도입뒤 국민주택기금 지원 확대 절실
부실대출로 인한 피해자 구제 방안

민주노동당은 당시 민간에게 임대사업을 맡긴 정책 자체가 화를 부른 불씨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정부의 부도임대아파트에 대한 매입 확대와 더불어 세입자 우선매수제 도입을 통해 임대아파트를 공공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부도임대아파트 입주민들도 이러한 제안에 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다. 특히 세입자의 우선매수제를 위해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정부쪽에 건의했다.

정부도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국민주택기금의 회수로 인해 부도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분양전환' 쪽에 비중을 두고 대책을 설계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주택기금을 100% 회수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을 우선적으로 했을 경우 임차인 보증금 피해가 우려된다"며 "영세민 전세자금을 3%로 지원해 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주택사업을 공공부문에 전적으로 맡기자는 민주노동당의 제안은 선뜻 수용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주공이 임대주택사업을 100% 떠맡는다고 했을 때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국민은행도 피해자 구제를 위해 다양한 협의시스템을 갖춰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매로 넘어가기 전 분양전환 동의절차를 의무적으로 밟도록 하고, 경매에 넘겨진 경우에도 경락금액을 협의하는 등의 방식으로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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