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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 역시 생각해 본 바도 없다. 또한 그런 일은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미혼분을 하독하고 나서 졸고 있는 자를 죽이면 간단한 일을 굳이 원차운만을 노리고 그 두 명에게 미혼분을 뿌릴 필요가 있을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육능풍은 빙그레 웃었다. 이들은 지금 표현하지 않아도 무리한 추측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다.
“허면 그 자들의 움직임에 변동이 있나?”
“이 안에 들어와 있는 인원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흑모전서 균달 역시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문제는 잠행술(潛行術)에 뛰어난 인물들이 신검산장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제부터 더욱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속하로서도 흔적을 발견하기 상당히 어려울 정도로 잠행술이 뛰어난 자들이라 인원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호오… 자네까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 그들의 외부 세력은?”
“분명 신검산장 외부 어딘가에 있는 듯한데 종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분명 우리 형제를 살해한 자들이 끼어 있겠지?”
“물론입니다. 지광계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었으니 만큼 분명 흉수가 분명할 겁니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지금이라도 지광계 부부를 접수하시는 편이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관은 처음부터 지광계 부부를 잡아들이자고 했다. 그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철혈보 형제들을 죽인, 더구나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철개장 곡첩 당주를 죽인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육능풍은 그 의견이 옳다고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감겨 있었던 냉혈도 반당의 눈이 떠졌다. 추관은 마치 섬광이 쏘아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본 보는 약속만큼은 철저히 지킨다. 이곳을 벗어난다면 자네 생각대로 해라. 하지만 이 신검산장 내에서는 먼저 손을 쓰는 일은 없도록…!”
말투는 마치 나무가 부러지듯 딱딱했다. 그와 만화지 진독수는 풍철영에게 이 신검산장 내에서는 손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추관은 가슴에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이미 눈을 감고 있는 반당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의 당황함을 가려 준 것은 계속되는 육능풍의 질문이었다.
“소림의 광지(廣知) 일행은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내일 오전이면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일까? 초산(草算). 그들의 외부 인원이 몇 명이라고 했지?”
육능풍의 시선이 추관에서 은영전의 사영 중 하나라는 해맑은 사내에게로 향했다.
“일곱 명입니다.”
“장난을 칠 수도 있을 텐데… 그들의 움직임은 계속 파악하고 있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파악은 어렵습니다. 그들 중에는 뇌음사의 삼존불 중 금존불이 끼어 있고, 내력을 알 수 없는 고수 세 명이 끼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육능풍은 그의 대답에 그 큰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리고는 일행을 쭉 둘러보다가 독고상천에게 가서 멎었다.
“상천. 자네는 왜 지광계 부부가 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나? 또한 구파일방에서는 왜 광지와 같은 인물들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하는가?”
철개장 곡첩 일행이 살해된 현장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연장이었다. 독고상천은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제부터 육능풍은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의도도 이었지만 이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지광계 부부를 구파일방에 넘기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들이 이곳에 왔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점에서?”
“장안 외곽에서 살해된 본 보 형제들의 시신을 살펴볼 때만 해도 그 흉수는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정지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흉수들의 무학이 훔쳐 배운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구파일방이 아니라면 그런 인물들을 키워낼 수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저 비급만을 훔치거나 베껴서 홀로 배우는 것은 어떤 무공이던지 그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 초식과 초식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 그에 따르는 독문심법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흉수들의 무공은 한결같이 구파일방의 대표적인 무공을 익히고 있었으며 또한 정통적인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구파일방에서 무공을 배웠으되 그곳을 떠난 자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로 여기 초산 형(兄)에게 이십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구파일방에 눈에 뛸만한 인재들이 사라졌는지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호오…! 그래서…?”
육능풍은 흐뭇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이 아이는 아마 장안 외곽에 있었을 당시 자신의 태도에서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 골머리를 싸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육능풍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익히고 사라진 자들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구파일방 인물이거나, 아니면 구파일방의 무공들이 완벽하게 누군가에로 흘러 들어간 지 적어도 삼십년은 넘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구할입니다.”
가능성이 구할이라면 이미 확증하고 있다는 말이다. 독고상천은 육능풍이 잠자코 있자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구파일방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본 보의 형제들을 살해한 것에는 단순히 지광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목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에게는 청마수와 흑마조, 오독공자와 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과거 천하제일검이었던 성하검 섭장천까지 있음에도 본 보를 상대한 자들은 구파일방의 무학을 익힌 자들이었습니다.”
독고상천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육능풍은 그의 생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흥미로웠다. 그가 자신이 바라는 그 마지막까지 추리해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본 보와 구파일방 간 싸움을 일으키려는 이간책(離間策)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피살된 원차운의 죽음이 그것을 더욱 확신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에 육능풍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초산이란 사내를 바라보았다.
“자네 생각도 그러한가?”
“소보주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초산은 그 정도까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지를 둔 것은 아마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은영전의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 그들이 이곳에 온 것과 광지 일행이 이곳에 오게 되는 것이 모두 구파일방과 본 보와의 싸움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독고상천은 미리 대답을 준비한 듯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 이유도 물론 있습니다. 이곳에 그들과 구파일방, 그리고 본 보가 함께 있게 된다면 분명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손을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개방의 인물들이 이곳 전역을 주시하고 있는 관계로 본 보의 움직임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만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초산이 독고상천의 말에 동조하듯 간간이 고개를 끄떡였다. 육능풍 역시 만족스런 미소를 물고 있었다. 점점 독고상천이 갈고 닦이고 있었다. 철혈보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독고상천이 현 보주의 직계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후계를 잇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능력이 우선이었다. 그에게는 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며 사촌들도 열명이 넘었다. 형제이지만 보주의 후계자는 오직 한명이었다. 그것은 직계이고 장자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 신검산장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언가 필사적으로 찾고 있습니다.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이나 그들의 능력이라면 조만간 찾지 못할 것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독고상천의 말이 끝나자 육능풍은 박수를 세 번 치며 웃었다.
짝-! 짝-! 짝-!
“잘했네. 바로 맞혔어. 많은 생각을 했구먼.”
육능풍은 기분이 좋은지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박수를 세 번 치는 저런 모습은 육능풍이 만족스러울 때 하는 행동이다. 독고상천이 여기까지 생각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문제는 더 남아있었지만 그것까지 알아내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신검산장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무얼까? 이곳은 신병이기를 모아 놓은 곳이니 그 중의 하나를 찾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노리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이 안에 없었다. 질문을 하는 육능풍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일종의 과제였다. 은영전의 초산과 이곳 수하들을 이끄는 추관이 알아내야 할 과제였다.
“하여튼 한 가지만 덧붙이지. 만약 저들이 도착하는 광지 일행에게 지광계 부부를 던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큰일이었다. 표면적으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왔다고 파악했지만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표면적인 이유는 언제나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록 그 이면을 파고들어 숨어있는 의미와 의도를 찾아내길 좋아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것이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기 쉬운 것이다. 이런 것은 특히 머리가 비상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오히려 더 지나치기 쉬운 일이었다. 목적을 뻔히 내보이고, 그 이면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뻔한 목적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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