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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쯤되자 권기범이 직접 입을 열었다.
"실은 집행부의 결정이 내려지면 발설하려 하였네만......어차피 자네들이 직임을 맡아주어야할 상황이네."
".......?"
"임 대장님 현재 흑호대 군액(軍額)이 얼마나 되지요?"
권기범이 갑자기 임치수에게 흑호대 인원을 물어왔다.
"예, 영수님과 다른 분들 호위에 내보낸 인원에다 저까지 포함하면 163명입니다. 5개 초(哨)에다 약간의 여유 인원이 있으니까요."
"병무영장과 논의는 했네만 흑호대를 10개 초까지 증원할 생각이네."
"예? 10개 초나요?"
권기범의 말에 점백이와 조금산이가 동시에 반문했다. 개화군 전체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하급 군관 축에도 끼지 못할 그들이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별동대를 300여명씩이나 둘 처지가 아님은 짐작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이제부터는 세상에 대동계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네. 백성들의 지지 기반을 얻고 동조자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도 언제까지나 숨어 있을 수만은 없지. 그렇다고 섣불리 계의 모습을 노출했다간 피어 보기도 전에 화를 부를 수가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단 말일세. 그러니 결국 모든 활동은 흑호대가 맡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지. 해서 흑호대의 증편이 부득이한 상황이고, 증편에 따른 군관급 이상 지휘자들도 수급이 절실한 처지이네. 마땅한 수순을 밟아 승급하는 것이니 불편해 하지 말게."
"그......그렇다면야 뭐, 딱히 죄스러울 것도 없지만서도......"
권기범의 말을 듣고 난 조금산이의 얼굴이 확 폈다.
"그럼 저격병 조련관이란 직임도 그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까요?"
역시 얼굴이 풀린 점백이가 물었다.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지. 총포 위주의 싸움에는 종래의 삼수병(三手兵) 체계에 맞춘 습진(習陣)이 적합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이미 미리견(미국)과 구라파(유럽)식의 신식 조련을 한 것이 아니겠나.
그때부터 미리견의 남북 내전 때 활약했다던 저격병 부대를 우리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마두산에서 그 가능성을 여실히 입증하였던 고로 확신을 갖게 되었네. 그래서 이번 개편을 계기로 흑호대뿐 아니라 본영과 해도에서도 방포에 재주가 있는 인재를 모아 조련할 생각이야. 어차피 적은 수로 큰일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선 이것도 꽤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네만......"
"실효성 정도가 아닙니다요. 저희도 이번에 동이 건으로 총포를 보는 눈이 확 달라졌습니다. 흑호대 방포 조련 때에 한번 봐 보십시오. 눈빛들이 매섭다 못해 무섭다니까요."
"다행이군. 동이가 큰 일을 해냈어. 자네들도 잘 해주리라 믿네."
세 사람이 권기범과 몇 마디 사담을 더 나누다가 돌아가자 흑호대장 임치수가 권기범에게 물었다.
"영수님, 의중이야 백 번 알겠습니만 다른 이들이 흑호대의 비중이 커지는 것에 반감이 없겠습니까? 당장 기존 흑호대의 4할 가까운 인원을 어디에서 충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염려 놓으세요. 원로들이야 논외로 치고, 다른 이들은 별동대 역할의 강화에 십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본영의 장졸 중에서 기량이 우수한 자를 가려 급한대로 흑호대부터 충원할 생각입니다. 본영의 인원은 해도에서 빼오도록 하고요."
"해도인들 군액(軍額)에 여력이 있겠습니까?"
"실은, 해도(海島)의 군사들을 어디로든 돌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해도는 외딴 고도(孤島)여서 관의 기찰을 의식하지 않고 조련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화군의 조련 장소 겸 수군의 영(營)으로 쓰고는 있지만, 항상 고립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 단점입니다. 자칫 내륙에 들어앉은 본영이 노출되어 타격이라도 받는 날이면 내응해 줄 아군이 없는 해도(海島)는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입니다. 해도에 1년을 견딜 물자가 비축되어 있다하나 뭍에 오를 길이 막힌 이들에게 1년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미 섬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넘어선 지가 오래인데 장정들이 조련을 마쳐도 배속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여전히 섬에 묶어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쪽 사람들이 있는 상점(商店)에 함부로 붙여 놓기도 위험하고 외딴 섬을 또 찾아볼래도 전력이 분산되는 우려가 있으니 어느 선택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고요.
앞으로 작황 상태에 따라 광산으로 몰려드는 유민(流民)의 무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며 지금으로 봐선 천주교인들에 대한 핍박도 사그라들 기세가 보이지 않으니 그들도 대거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를 대비하여서라도 해도의 군사를 이곳 본영으로 대거 이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하시면 이곳의 인원 또한 수용한계를 넘게 될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이곳 운산이 첩첩산중에 있고 주변 관아가 우리 쪽 사람에게 있다하나 늘어난 흑호대까지 합하여 이 생떼 같은 장정들이 움집한다면 필경 냄새를 피우게 될 터인데요?"
"그래서 임 대장님을 찾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라니요?"
"아까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말을 아꼈습니다만은 제가 임 대장께 당부하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흑호대의 증편이 완료되는 대로 이 곳엔 3개 초만 남고 나머진 떠나야 합니다."
"떠난다면...... 어디로?"
"삼남입니다."
"삼남?"
"예, 공충도(충청도)와 경상, 전라에 골고루 뿌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벌써 동학도들과의 합의를 성사시키신 것입니까 영수님? 정말 빠르십니다 그려."
"아직 성사된 건 아닙니다. 천주교든 동학이든 무엇하나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수록 삼남에 기반을 굳혀야 합니다. 동학과 천주교인을 아울러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선 힘의 우위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우리 품안으로 규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조정 군문에 몸을 담았던 처지라 잘 압니다만, 지금 조정의 군이라는 게 기실 왕권 유지를 위한 사병집단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대원군이 집권한 후론 그나마 외적 세력에 대항하는 체제로 변환을 꾀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앙군영에만 힘이 집중되어 반란 진압을 위한 도성 방어대 구실에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다면 차라리 이 군세를 몰아 도성을 점령하는 것이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헛. 임 대장께서도 원로들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지금으로선 도성을 점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점령한 후가 문제입니다. 우린 역성 혁명(易姓革命)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왕을 바꾸자는 게 아니지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을 이루어 이 나라의 정체(政體)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아직도 원로들께서는 이 대의를 이해하지 못하여 왕위 찬탈을 통해 선정을 베풀자는 의도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임 대장께서도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압니다. 영수님께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법국(프랑스)에서도 이미 그런 사례가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70년도 넘는 과거에 법국에서 있었다던 그 대혁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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