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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이창래, 카즈오 이시구로. 이 세명의 정상급 작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각각 중국, 한국, 일본 출신으로 영미권 국가에서 소설을 쓰는 이들은 모두 초기에 자신의 민족적 뿌리에 탯줄을 댄 작품을 써서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차츰 무대를 넓혀갔다.

1968년 세살때 미국으로 이민간 이창래는 1995년 한국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내이티브 스피커>로 펜/헤밍웨이 상과 '아메리칸 북 어워드'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미국 문단에 데뷔했다. 4년 후 출간된 그의 두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 역시 한국계 일본인 병사를 주인공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작년에 나온 세번째 소설 < Aloft >에 이르러서야 이창래는 드디어 한국의 그림자를 벗어나 미국을 무대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의 원작으로 유명한 카즈오 이시구로 역시 이창래와 비슷한 궤적을 보였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는 196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후 영국에서 성장해 영어로 집필하는 작가다. 그럼에도 1989년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한 <남아있는 나날> 전까지는 일본을 무대로 소설을 두권 썼다.

지난 25일 발표된 2005년도 펜/포크너 상 수상자는 중국 출신의 하진이다. 그의 경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1985년 거의 30세가 다 된 나이에 미국에 유학을 와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톤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꾸준히 영어로 집필을 하는데 이번 펜/포크너 상이 벌써 2000년에 이어 두번째 수상이다. 1981년부터 시작된 펜/포크너 상을 두번 탄 작가는 필립 로스와 존 에드가 와이드맨뿐으로 하진이 세번째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미국의 일급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하진에게 이번 펜/포크너 상의 영예를 선사한 장편소설은 <전쟁 쓰레기>(War Trash)로 그의 소설 중 처음으로 중국을 벗어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 서점에 진열된 하진의 <전쟁 쓰레기>
ⓒ 윤새라
작년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이 한창 시끄러울 때 <전쟁 쓰레기>란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와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내 배꼽 밑으로 'FUCK… U…S…'란 문신이 길다랗게 뻗어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1951년 인민군으로 한국전에 투입됐다가 미군 포로가 된 중국인 유유안의 이야기를 회고록의 형식을 빌어 그의 시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전까지 발표한 소설들과는 달리 작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진은 이 소설을 한국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소설 서두에 밝히고 있다.

허구이긴 하지만 한국전에 인해전술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거제도 포로 수용소와 제주도를 오간 중국 병사의 이야기는 최인훈의 <광장>이라는 문학 자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새롭고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한국 전쟁은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도 새삼 일깨운다.

한편 이 소설을 들면 한국인으로서 떨치기 어려운 착잡함도 생긴다. 하진은 소설의 대단원 후 자신이 참고한 서지 목록을 덧붙였다. 소설이 허구고 허구의 인물을 다루기는 했어도 한국 전쟁이 사실인만큼 한국 전쟁에 관한 조사를 했고 그에 참고한 책 목록을 소개한 것이다.

모두 스물세권의 책이 올라 있는데 그 중 한국인이 쓴 책은 단 한권도 없다. 하진이 중국인이고 미국에서 활동하니 중국 책과 영어권 책을 읽은 것은 그렇다 쳐도 한국 전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혹은 그가 참고할 만한 서적이 없었다는 점은 미국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얼마나 미미한가를 보여주는 한 예 같아 씁쓸하다.

전쟁 쓰레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시공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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