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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촌 주변 실레마을 전경
문학 촌 주변 실레마을 전경 ⓒ 서강훈
넓은 사발이 보다 많은 물을 담아내듯 문학 촌과 그 주변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햇발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으려 인위적으로 그러는 듯 햇살이 충만하고 또 머무는 곳이었다. 문학 촌, 그리고 주변 동네.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 이 모든 풍경들은 산과 인접한 소 농촌의 모습이었다. 10여분 떨어진 춘천에서는 30만 인구가 도시를 이루고 살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도 시골이었다. 풍경을 차분히 감상하고 있는데 어디서 주변머리 없이 퇴비 냄새가 풍기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얼굴을 찌푸렸으나 택시에 동승했던 친구들은 이내 웃고 말았다. 실레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마치 떡 시루 같다 해서 실레마을이라 한다고 예전에 들었다. 지형도 지형이지만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상쇄할 수 있는 여유가 그곳엔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슬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일행이 모두 나타나자 교수님께서는 우리 일행을 김유정의 친가 안채로 이끄셨다. 전통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나 ‘ㅁ자’ 형태로 되어 기와집 뼈대에 초가를 얹은 독특한 형태의 집이었다. 다들 의아할 이 집 구조에 대해서 교수님은 교실에서 보다 더 맛깔나고 생생한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이 집은 김유정의 생가라기 보단, 그리 여겨지는 집입니다. 김유정이 어디서 태어났는가에 대해선 춘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확실히 알 수는 없어요. 또한 6·25전란 당시에 이 집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이 터에 김유정 친가를 다시 세우고 문학촌을 만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집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어요. 바로 ‘ㅁ’자죠. 그리고 기둥이나 뼈대는 기와를 얹은 만큼 아주 튼튼한데 지금은 초가를 얹어놓았죠. 그 이유는 한 때 아주 부자 집이었던 김유정 집에서 당시 치안이 아주 불안하니까 도적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 일종의 계책이에요. 집이 ‘ㅁ’자로 되어있으니까 도적이 오면 그만큼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는 견고한 구조잖아요. 튼튼한 뼈대에 초가로 지붕을 얹은 것은 도적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함이지요.”

김유정문학촌 내에 있는 그의 고향집을 재현한 건물
김유정문학촌 내에 있는 그의 고향집을 재현한 건물 ⓒ 서강훈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 유 교수님은 우리 과 전공 교수님이시면서 김유정 연구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이번 학술회도 교수님의 노력이 적극 반영된 행사였다. 그런 분에게 매우 세밀한 안내를 받으며 돌아다니는 일정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 친가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김유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김유정은 우리가 방문하고 있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위치한 실레마을에서 겪은 실제 일들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한다. 그의 대표작 <봄·봄>이며 <동백꽃>은 물론이요 <만무방>도 춘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또한 실제 인물을 염두 해 두고 썼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발표와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실재를 온건히 작품 속에 반영한 사실에 미루어 김유정은 실로 이곳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정이 그의 짧지만 농도 짙은 문학사를 <김유정문학촌>이란 산실로 옮겨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김유정문학촌>자체는 그의 친필원고와 사용하던 물품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한계라 한다면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곳에 모여 그를 기릴 수 있고 그의 작품을 현장 그자체로 좇을 수 있는 것이다.

2시간여 사람들의 발표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12시 무렵부터 우리는 발로 그의 문학적 자취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김유정문학촌>에서 100미터 정도를 걸었을까 첫 번째 지점에 도착했다. 첫 방문지는 소설 <안해>의 배경 장소. 여기서‘안해’란 아내의 사투리라 한다. 소설 <안해>속에서 주인공 남자는 자기 아내를 들병이(매춘부)로 내보낸다. 슬픈 현실과 해학이 혼재되어 있는 소설의 배경은 이제 평평한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소설 <안해>의 배경지. 유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소설 <안해>의 배경지. 유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서강훈
그 곳을 지나 우리는 물레방앗간을 목표로 하고 걷고 또 걸었다. <안해>터에서 약 20분을 걸었을까? 주민들이 주거지 일견에 일궈놓은 텃밭이 나왔다. 그 텃밭주변에 실레마을 주막 터가 있었다. 그곳은 주막 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표지판 이외에 아무 흔적 없이 변질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30미터 전방으로는 다세대 주택이 있어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김유정이 이곳에서 즐겨 코다리찌개(반쯤 말린 동태로 만든 찌개)를 안주 삼아 술을 먹었다는 주막은 그렇게 온데간데없었다.

그런데 소설 <산골나그네>의 배경이 되었다는 물레방앗간을 찾아가는데 그만 여로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지쳐 이래저래 불만인 얼굴이 되었다. 그 쯤 되자 교수님께서는 팔미리와 물레방앗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는 큰 갈래 길 정도에서 선회하기로 결정하셨다.

허기지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다독이시는 교수님 당신도 힘드었을 터이지만 교수님은 마치 여장군처럼 뚝심있게 다음 목적지로 일행을 이끌었다. 다음 목적지는 금병의숙. 물레방앗간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그 곳 까지는 30여 분 거리였다.

다음 목적지에 가서는 꼭 밥을 먹을 터이니 힘 내자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마치 삼국지의 조조가 병사들이 갈증으로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해 꾀를 내었던 ‘망매해갈’처럼 말이다. (다만 우리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금병의숙에 가서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사실 회관처럼 되어 있는 금병의숙 앞은 밥을 먹기에 부적절했고, 황토를 섞은 바람이 수없이 불어와 그리 할 수도 없었다.)

금병 의숙은 유정이 원래 살던 춘천 고향집에 내려와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만든 작은 학교다. 이곳에서 그는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유정은 불행한 가정사와, 당대 명창인 박록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실패한 것, 서울에서 깊어진 병으로 하여금 심신이 크게 지친 상태였다. 힘겨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후대를 위한 교육에 매진한 점은 후대 사람들이 높게 평가해야 할 항목 중 하나가 아닐까. 금병의숙 옆에는 낡고 지친,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에 어두운 색을 띈 나무 하나가 자신이 당대의 증목임을 입증하듯 나란하고 또 조용하게 존재해 있었다.

금병의숙 자리. 김유정이 농촌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곳이다. 이 곳에서 그는 마을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금병의숙 자리. 김유정이 농촌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곳이다. 이 곳에서 그는 마을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 서강훈
우리 일행은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산국농장으로 향했다. 금병의숙에서 30여분 거리, 야트막한 산을 올라야만 당도할 수 있는 산국농장은 원래 이 시기가 동백꽃이 만연한 시기라고 했으나 기후의 변이로 안타깝게도 동백꽃을 볼 수 없다고 했다(작품 속에 등장한 동백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쪽지방의 동백꽃이 아닌 노란 색채를 띤 동백꽃 생강나무라고 한다). 산을 오르며 손가락 마디만한 잡초 따위도 아직은 윤기를 띄지 않고 있음에 약간의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느꼈더랬다. 봄의 기색을 보는 일은 일상사에 지친 내겐 희망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 <동백꽃>의 배경이 되었다는 산국농장. 작은 규모에 아직은 겨울의 때가 다 벗겨지지 않아 정갈하고 생동하는 맛이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오늘만이 날일 것인가, 겨울의 장막이 벗겨질 그날을 기약하게 하는 요인인 셈이다.

그곳에서 잠시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채우며 상투적이지만 시장함이 반찬임을 입증했다. 또한 식상하다 식상해 하는 동기들과의 우애를 작은 삽이지만 한 삽을 더 얹어놓게 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다소 황량한 풍경 속에서 활기차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치기어린 유년인생들을 그려낸 <동백꽃>을 연상하기는 힘들었지만 밥을 먹고 여유롭게 듣는 교수님의 설명은 그분이 걸어오신 김유정 연구의 깊이만큼 살아있었다. 비로소 동화같이 여겨졌던 점순이와 ‘나’라는 소년의 일들이 자연스레 스쳤다.

교수님께서는 소설 이야기와 함께 저기 덤불 숲 넘어쯤에서 점순이가 남자아이를 덮쳤을 것이라 말씀하셔서 일행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산국농장에서
산국농장에서 ⓒ 서강훈
그곳에서 내가 해온 몫의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주제는 그의 문우(文友)에 관련된 것이었다. 날씨도 쌀쌀해 오고 긴장도 했던 탓인지 짧게 말한다 하여 박수를 받아놓고는 그만 주욱 읽어버려 길어진 꼴이 되었지만 감정상으로 조금 감회에 젖어있었다고 할까.

친구에 대한 논의는 연배가 오래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각별히 할 말이 많은 영역일 것이다. 내 경우엔 원만함을 전제하고 고작 셋 정도를 각별히 여기는데 김유정의 경우에도 그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학교 다닐 적부터 친히 여겨,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고 남산으로 어디로 술을 먹을 때도 붙어있었고 그가 글을 쓰게 된 것 자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안회남선생. 그 밖에 그가 힘겨울 때 물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으나 정신적으로 기여하려 했던 친구들. 동병상련일까 같은 병으로 앓았으며 그의 종극에서 멀지 않은 시점에 역시 세상을 떠난 이상까지…….

자료 조사를 하고 발표하는데 이르면서 나는 이들이 유정의 삶 속에서 진정 지우(知友)의 우정을 나누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그는 어찌 보면 짧았기에 불행하고 심신이 아팠기에 불행했던 일생을 종극엔 작은 행복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고…….

오늘 <김유정문학촌>에서, 김유정 문학속에 등장하는 배경장소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교수님을 통해 듣고, 서로 나누었다.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때요? 많이 힘들죠? 분명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교단에 나가게 되어 김유정 문학을 가르칠 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정이 사정이니 만큼 우리가 지향하는바 데로 사실상 우리가 예비교사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적어도 교사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더 노력해야만 오늘 있었던 일을 후배들에게 즐거이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 서강훈
살아있는 김유정과 대면한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일행에 섞여 문학 촌과 주변에 있는 실레 마을을 돌아보며 느낀 감회는 나는 진정 살아있는 김유정을 만나고 왔다는 ‘착각’이었을 것이다.

말인 즉 이 여행은 눈으로 훑은 귀로 훑은 작은 사건이라기 보단 테마가 있는 여행이었다는 소리다. 그의 유산을 단지 서면으로 접하는 것이 아닌 그의 숨결이 살아있는 생물로 접할 수 있었던 시간들. 그것은 고3 때 수능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자율학습 시간에 탐독했던 김유정 작품에 대한 감동을 연장해 놓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텍스트 풀이 위주로 돌아가는 현재의 문학교육에 현장성을 불어놓아야겠단 문제의식을 가져보았다.

또한 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집착에 가까운 열의를 보여주었던 그의 창작의지는 말로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고 동경한다면서 분명 버릇에 가까운 나태에 젖어있는 내게 충격이었다.

유정은 “한 번이라도 원고지를 마음대로 쌓아놓고 글을 써보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끊임없는 창작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을 통탄했다 한다. 그런 상황에서 글을 써왔던 만큼 절대로 길다 할 수 없는 그의 작품 활동 4년여의 문학적 성취가 이곳 춘천에서 후대에 높이 평가받고 흠모 받은 것은 아닐까.

그의 배경이야기는 손에 기름기가 붙어 작가 지망생인 주제에 글 쓰는 일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내게 지탄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내가 써나가는 글, 그리고 살아나가는 인생이 그처럼 주변인과 후대인들에게 애정 그 자체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만큼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김유정은 후대인에게 고이 존경받고 기림을 받는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그의 유산으로 정신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서 폭넓은 애정을 바칠 수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살아있는 유정은 내게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육성과 같은 가치로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김유정 문학촌 전경
김유정 문학촌 전경 ⓒ 서강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과제로도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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