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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이 활짝 핀 원경고등학교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도 두근거리듯 4월이 왔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 땅이 풀려 가려운 듯 3월이 지나면서 꽃샘추위를 겪은 꽃들이 4월 들어 일제히 피어나 천지를 장엄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히 '꽃 피는 봄 사월'입니다.

사실 3월은 날씨가 변덕스러워 여간 까다롭지 않았고, 선뜻 봄의 기운을 주지 않음으로써 약간은 성가시고 불안하기까지 하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봄과 꽃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를 시험하는 듯하였죠.

그러나 그 불안과 성가심은 비단 3월의 날씨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새로 입학한 새내기들이 3월 한 달간 학교에 적응해 가는 과정, 100여명의 학생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 3월의 날씨 같았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아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를 쓰며 조심조심 기도했던 하루하루는 봄기운이 올 듯 말 듯한 성가신 꽃샘 추위였습니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정일관
이 조심스럽지만 소중한 3월을 잘 보내기 위해 새내기 환영회를 비롯하여 2박 3일간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과 2박 3일 학년별 현장학습을 다녀오며 학년간, 선후배간 친해질 수 있는 소통거리를 만들기도 하였고, 수많은 상담과 대화, 그리고 사제동숙(師弟同宿)으로 올바른 관계맺음을 위한 만남들을 계속하였죠. 또한 매일 새벽에는 백일기도를 봉행하여 진리의 음조와 음덕을 얻어 대안학교의 대안교육이 살뜰히 꽃피기를 염원하였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있어서였는지, 3월 한 달이 비교적 평화로웠습니다. 그러나 3월 말에 이르러 숨어있던 선후배간 갈등이 표출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치 꽃이 활짝 피기 전 몹시 추웠던 마지막 통과의례와 같았습니다. 이 즈음에 목련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 목련 꽃자리에 올라오는 작약 새순
ⓒ 정일관
선후배간 갈등이 드러나는 일이 생기자 학교 선생님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당황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부딪침을 통하여 학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토론회를 제안하였습니다. 단순히 일의 결과를 처리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보았으며, 문화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모았습니다.

우선 선후배간 존칭 문제, 비교적 경직된 인사 문화, 심부름 문제, 남의 사물 빌리는 문제, 이성교제 문제, 폭력 문제 등 부정적이고 왜곡된 공동체 문화를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로 변화시키고 각자의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날마다 이어졌습니다.

4월 1일부터 시작하여 식목일 징검다리 연휴를 지나고 다시 4월 6일부터 4월 8일까지 수업을 완전히 놓고 온전히 토론만 하였습니다. 주제를 나누어 반별로, 또는 학년별로, 또는 남녀별로 나누어 토론하고 그 토론한 내용을 가지고 전체가 모여 또 다시 토론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토론회를 했습니다.

▲ 박태기나무
ⓒ 정일관
처음엔 학생들이 토론 그 자체를 답답해하고 꺼리기도 하였습니다만 선생님들의 집요한 설득과 정성으로 점차 참여하기 시작하여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았고, 선배들은 선배들의 입장을, 후배들은 후배들의 입장을 말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그 동안 같이 살면서 지켜보았던 여러 가지 선후배와 청소년 문화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통렬하게 드러내고 나누면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서 새로운 문화, 건강한 문화가 자리잡는 학교를 만들자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대안학교 내부에 남아있는 두려움의 문화, 획일성의 문화, 타율의 문화 등 공동체를 왜곡시킬 수 있는 문화를 평화의 문화, 다양성의 문화, 자율의 문화로 전환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인사는 가벼운 목례만으로 하고, '-님'자를 붙이지 않고 부르는 편안한 호칭을 쓰며, 심부름 등의 부탁은 같은 학년 내에서만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하고, 밝고 자연스러운 이성교제를 위해 바르지 못한 남녀 청소년들의 문화를 청산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인권이 존중되는 공동체를 만들며, 물리적인 폭력과 폭력적인 장난, 언어폭력 등 일체의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행사하지 않기로 학생 모두는 적극적인 결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정연수 교장 선생님
ⓒ 정일관
마침내 4월 9일 토요일, 원경고등학교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 토론하고 결정한 내용을 마음에 새기는 결의 대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결의 내용에 서약 서명을 하고 학생회장단의 선창에 따라 제창하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대안학교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결의에 차 있었으며, 이런 결의를 공감하고 이끌어낼 수 있었음에 모두 자긍심을 가지는 것 같았습니다.

결의 대회에서 정연수 교장은 "그 동안 학생들의 위대한 미래를 향하여 학생들에게 깍듯이 인사했다"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대안학교를 만들자"고 하였으며, "이번 대토론회와 결의 대회는 원경고등학교와 대안학교의 역사에 조용하지만 힘찬 한 획을 그은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 서약합니다
ⓒ 정일관
정현석 학생회장도 호소문에서 "우리는 지금 건강하고 아름답게 바뀌어 가는 원경고에 서 있는 것"이라며, "우리 원경 학생들이 하나하나 진실한 마음의 힘을 모아서, 더욱 새롭게 달라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도록 하고, 놀 땐 놀고, 할 땐 하고, 지킬 땐 지키는 원경인이 되자"고 호소하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가요? 겨울추위와 꽃샘추위 모두를 이겨낸 목련이 활짝 피어 만발하고, 작약 새순이 땅을 밀고 올라왔으며, 모란이 터질 준비를 하고, 박태기나무의 꽃망울이 맺혔으며, 현관의 노란 데이지도 한껏 자랑하는 원경고등학교 교정이 더욱 아름다운데, 그것은 또 한 번 기다림의 교육을 실천한 대안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훈훈한 마음과 웃음이 활짝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 원경고 학생회 회장단의 결의문 낭독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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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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