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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 500회째 기사

공교롭게도 이번 기사가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00회째 글이요, 큰 이변이 없는 한 <박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에 500회째로 올려질 것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그동안 네티즌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좀 더 의미 있거나 색다른 얘기를 쓰고자 며칠 전부터 고심했다. 이런저런 글감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모두 무시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 생활을 쓰기로 하였다.

글에 괜히 힘이 들어가거나 더 잘 쓰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그르치는 일도 많거니와, 글이란 내가 의도한 대로 잘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홈런을 치고자 배트를 힘껏 휘두른 야구선수가 홈런은커녕 삼진 아웃을 더 많이 당하는 꼴과 같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깁스만 풀면 곧 다리가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간 불편치 않다. 치료를 맡았던 의사가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안심은 시켰지만 3주가 지나는 데도 별다른 차도가 없다. 그래서 아직도 안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요즘은 한방병원에서 계속 침을 맞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내가 책을 낸 것은 10여 차례로 그동안 숱한 단련으로 마음을 비우다시피 했지만 이번 책에 대한 기대는 조금 컸다. 그전까지는 현직교사 신분으로, 아마추어 글이라면 이번 글은 직장까지 스스로 퇴직하고 전업 작가로 쓴, 프로에 입문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지 열흘이 지났는데 방송국에 있는 제자로부터 책이 여태 우송되지 않았다는 메일을 받고, 병원에 가는 길에 절룩이면서 출판사에 갔더니, 그동안 바빠서 미처 발송치 못하였다면서 나에게 대신 발송을 부탁했다.

언론사 홍보용 책을 받아 집으로 와서 포장하여 이튿날 동네 우체국에 부치려고 갔더니 토요일로 문을 열지 않았다. 다시 절름거리며 차를 타고 광화문 우체국에 가자 마침 문을 열고 있어서 모두 발송을 하고 우체국을 벗어났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다가 마침 전화번호부 수첩을 새로 사고자 길 건너편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매장 18번 비소설 '새로 나온 책' 코너로 가서 신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찾았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깜빡 안경을 두고 갔기에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서 직원에게 부탁하자 그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평대 밑 서가에서 책을 뽑아 가져다 주었다.

당신은 돈을 좇지 마세요

순간 울컥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감정을 삭인 뒤 벌써 평대 밑 서가로 내려간 영문을 물었더니 판매원은 책이 지난 4월 1일 들어왔으나 판매가 부진하여 평대에서 밀려났다고 했다. 나는 그를 심부름 시킨 게 미안하여 책을 사고는 문방구 코너로 가서 수첩을 산 뒤 교보문고를 벗어났다. 황사로 흐린 데다가 잔뜩 찌푸린 날씨가 그새 비를 쏟았다. 날씨가 내 마음과 같았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다가 조금 떨어진 영풍문고로 갔다. 다행히 거기서는 신간 평대에 깔려 있었다. 그냥 오려다가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한 권 샀다. 내 책을 내가 두 권 사고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면서 착잡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잤다. 다시 잠에서 깨자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는 다음달에 나올 신간 교정지를 꺼내 밥 때도 잊은 채 원고 보는 일에 몰두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돈복이 없는 사람이니까 절대로 돈을 좇지 마세요."

아내가 늘 나에게 들려주는 충고다. 그랬다.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적금을 타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냥 달아났다. 다른 이들은 이사도 잘 다니면서 재산을 잘도 늘리는데, 자동차도 닿지 않는 산동네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이번에 팔고 보니 전셋값밖에 되지 않으니 아내에게 대꾸할 말이 없다.

마지막 근무지인 이대부고에서 28년간을 근무하고 떠나올 때 계산해 보니 그동안 내 재산은 한 푼도 불어나지 않았다. 동료 직원들이 믿지를 않았다.

그동안 저서를 열 권이나 내고도 그러냐고 거짓말로 여겼다. 한 예로 중국 대륙을 누비면 항일유적지를 답사하고서 펴낸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는 출판된 지 5년이 되었지만, 내가 출판사에서 받은 인세는 여비는커녕 여태 슬라이드 필름 값과 사진 현상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빤히 아는 아내는 요즘은 내가 책을 펴내도 아무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기 형제간이나 어머니에게도. 사위가 책을 낼 때마다 한 뭉치씩 돈을 버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곧이듣지도 않을 뿐더러 지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엄살 부리는 걸로 오해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폐업 선언

얼마 전에는 한 작가가 '작가 폐업 선언의 변'으로, 글을 쓰는 일보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하기에 대학로에다 카페를 낸다는, 작가 폐업 인사 겸 술집 개업 인사장을 보내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학교 교사로 매달 정확하게 월급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기에 원고료 수입이나 인세가 한 푼 들어오지 않아도 생활에 큰 애로가 없었고, 지금도 매달 연금이 꼬박꼬박 나와서 입에 풀칠은 하고 있지만, 다른 수업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의 전업 작가는 말씀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문학단체에서 작가들의 월수입을 조사한 바, 평균 70여만 원 수준이었다는 한 신문의 보도를 본 적이 있었다. 월 70여만 원이라면 4인 가족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물론 작가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라서 월 1천여만 원이 넘는 분도, 월 20~30만원으로 용돈도 안 되는 분도 있다. 월 1천만 원이 넘는 분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 최저생활 생계비 이하의 수입이니 대한민국의 전업 작가들은 대부분 가난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게다.

한 전직 출판인은 신문 기자 생활을 오래하다가 퇴직한 뒤 늘 품어 왔던 출판사를 창업하여 2년 동안 20여 권의 양서를 냈다. 그 사이 퇴직금, 저축한 돈, 심지어 부인 결혼 패물조차도 모두 훌렁 다 날리고 "대한민국은 빨리 망해야 할 나라"라고 극언을 했다고 한다.

그 전직 출판인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출판업에 뛰어든 것을 크게 후회하고서는 출판사 문을 닫고 아내와 함께 처갓집의 도움으로 분식점을 냈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다행

잠시 쉬면서 텔레비전을 켜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프리카 세링게티의 야생 동물> 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초원에는 누나 가젤, 얼룩말과 같은 초식동물들이 사자나 치타, 하이에나와 같은 맹수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 그런데 맹수들은 사냥하기 전에 먹이 감으로 찍는 조건은 어린 것 아니면 다친 초식동물들이었다.

누 떼가 이동 도중에 한 마리가 언덕에서 쓰러져 골절상을 입고 절룩거렸다. 그러자 용케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하이에나가 덮쳐서 목을 조른 뒤 제 식구를 불러다가 오찬을 즐겼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만일 내가 아프리카 초식 동물로 태어났다면, 지난 겨울 눈길에서 쓰러졌을 때 맹수들의 밥이 되어 벌써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표지
ⓒ 지식산업사
지난 금요일, 나는 한 출판사와 구두 계약을 맺었다. 올해 네 번째로 출판될 책이다.

"선생님, 부지런히 쓰시기만 하면 출판은 저희들이 도맡아서 하겠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이미 출판된 내 책도 계약 만료가 되면 자기들이 출판하고 싶다는 속내까지 비쳤다.

"꾸준히 내다 보면 팔리는 책도 있겠지요."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현실에도 끄떡하지 않고 저자에게 용기를 주는 심지 깊은 출판인을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글을 쓰고도 발표도, 출판도 못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면 즉각 올려 주는 <오마이뉴스>가 있고, 원고를 모아 주면 책으로 곧장 펴내줄 출판사가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이나마 얻은 행운을 놓치지 않도록 글 쓰는 일에 더욱 성심성의를 다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펴낸 곳 : 도서출판 지식산업사
- 쪽수 : 295 쪽 (일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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