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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장은 그렇게 말해 놓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산성 입구로 들어서자 땅바닥에 쓰러진 낡은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그 표지판을 뒤로하고 돌층계를 밟으며 옛 성의 정상을 향했다. 산성의 정상에는 거대한 불탑이 보였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산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완연히 어두워져 먹물 같은 어둠이 가득 몰려와 있었다. 산 정상에 오른 둘은 내처 불탑위로 올라갔다. 불탑은 그 높이가 건물 10층은 족히 보였다. 둘은 불탑 옆에 난 계단을 이용했다. 원래 출입을 막아 놓았지만 지키는 사람이 없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계단은 탑의 중간까지만 이어져 있었다.

김 경장은 그 계단 중간에 서서 피라미드가 있는 대평원을 바라보았다. 옅은 어둠 속으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옅은 안개 사이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몇 안 되는 작은 집들이 말굽쇠 모양으로 서남 방향으로 모여 있고, 일망무제로 퍼져 있는 초원 사이로 일정한 크기의 피라미드가 작은 산봉우리 모양으로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 경장이 가방에 넣어둔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 카메라를 작동시켜 작은 액정 화면을 켜놓았다. 액정 화면에는 바둑판 사진이 담겨 있었다. 김 경장은 그 사진을 몇 번이나 옆으로 돌렸다, 뒤로 뒤집었다를 반복했다. 채유정은 옆에서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한참을 카메라를 들고 씨름을 하던 김 경장이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찾았다!"

그러면서 카메라를 채유정에게 내미는 것이다.

"여길 잘 보세요. 이 액정 화면과 저 피라미드들 말예요."

채유정은 액정 화면에 담긴 바둑판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게 어떻다 말예요?"

김 경장은 대답 대신 멀리 피라미드 쪽을 가리켜 보였다.

"저 피라미드들은 얼핏 보기엔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간격을 이루고 있어요."

채유정이 멀리 바라보았고, 김 경장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사진을 옆으로 조금만 기울여서 저기 피라미드들과 비교해 보세요."

채유정은 액정에 담긴 바둑판의 모습과 피라미드를 함께 비교해 보았다. 바둑판에는 스물 개 가량의 바둑알이 놓여 있었다. 바둑판 한가운데 놓여 있는데 검은 색과 흰색의 돌이 한쪽으로 모여 있었다. 바둑알 밑에 그어진 선을 자세히 살피며 피라미드 무리와 비교해보았다. 한참 동안 살피던 그녀의 눈이 커지고, 이내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럴 수가……."

그녀의 이마에 고여 있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바둑판에 놓인 바둑알의 위치와 피라미드의 위치가 똑같네요."

채유정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으나 김 경장은 비교적 침착했다.

"박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바둑알을 놓아서 피라미드의 모습을 표시해 놓은 겁니다."

채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가에 가는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의 표정이 복잡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마에 어두운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바둑알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해서 우리가 찾으려는 피라미드를 찾을 순 없잖아요."

김 경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사진을 다시 한번 잘 보세요."

사진을 잘 살폈으나 특별하게 보이는 바둑알은 없었다. 검은색과 흰색이 함께 모여 있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채유정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김 경장이 손가락을 가리켜 바둑알 하나를 짚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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