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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지금 공장에서 막 출고되는 새 차보다 중고차 값이 오히려 더 비싼 차가 있어 화제다. 바로 도요다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가 그것.

도요다 자동차가 홈페이지에 공지한 프리우스의 소비자권장가격은 기본형 모델이 2만1939달러지만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인 이베이에서는 이보다 최소 2천달러, 심지어 6천달러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동차 수집가들이 찾는 희귀차량도 아닌 양산차가 중고차 시장에서 새 차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는 경제학의 기초원리 때문이다. 사고 싶어도 차가 없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USA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도요다 매장마다 3개월은 보통이고 심지어 6개월 이상 기다리는 대기고객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성미 급한 고객들이 아예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새 차보다 더 비싼 중고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 미국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있는 도요다의 인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
ⓒ Toyota
실제로 중고차를 사려는 미국인들이 꼭 참고하는 <켈리 블루 북-KBB>에 따르면 1만8천마일을 주행한 2004년 형 프리우스의 중고가격이 2만2470달러로 신차보다 500달러 이상 비싼 가격에 공시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심지어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프리우스를 사두었다가 되파는 것을 일 삼아 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는 것이 'USA 투데이'의 지적이다.

오프라의 홍보공세로도 못 띄운 'G6'

없어서 못 파는 차가 있는가 하면 수천 달러를 깎아 주어도 팔리지 않는 차도 있다. GM의 계열 브랜드인 폰티악의 G6가 바로 그것. G6는 지난 해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스튜디오를 찾은 방청객에게 276대를 공짜로 나누어 주는 통 큰 인심을 과시해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차다.

한국에는 마치 오프라가 사재를 털어 선심을 쓴 것처럼 잘 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은 독특한 홍보거리를 기획하던 GM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전 차량을 후원해 이루어진 프로모션 행사다.

하지만 자동차 마케팅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거액의 홍보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지금 G6는 딜러들이 3600달러가 넘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데도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저조한 판매실적으로 GM을 괴롭히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업계 전문가 로날드 타드로스는 "G6는 당초 연 20만대 생산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공장가동률은 당초 목표치보다 30% 이상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정크본드' 수준으로 전락한 GM주가

천양지차로 갈린 프리우스와 G6의 운명은 지난 100여 년간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명성을 날린 GM의 주식이 왜 '정크본드' 수준으로 전락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마디로 GM의 차들이 미국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것이다.

지금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GM의 시가총액은 일개 모터사이클 회사에 불과한 할리 데이비슨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나 다름 없던 GM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한 것일까?

GM의 릭 왜고너 회장은 회사를 짓누르는 과도한 의료복지비용을 원흉으로 꼽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퇴직 및 재직중인 GM의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의료복지비용은 GM이 파는 차량 한 대당 평균 1500달러의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GM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과도한 비용을 감안해 설계단계부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재를 채택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부실한 품질의 차가 탄생하면서 시장의 악순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폰티악의 신형세단 'G6'
ⓒ GM
하지만 이런 악조건을 감안한다 해도 GM의 실적은 형편 없을 정도로 저조하다.

도요다의 캠리나 혼다의 어코드와 경쟁할 모델로 개발된 시보레의 신형 세단 '말리부'는 연간 최고 30만대 판매를 목표로 출시됐지만 올 해 1사분기 중 겨우 3만6천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도요다와 혼다는 각각 캠리 9만8천대와 어코드 7만7천대를 팔아치웠다.

GM이 무슨 변명을 해도 소비자들이 사지 않는 차를 만드는 자동차 회사는 아무리 세계 최대를 자랑해도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시장의 교훈이다.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이 "휘발유를 고래처럼 마시는(gas guzzler)" 4륜 구동차(SUV) 장사로 한 몫을 보던 지난 90년대에, 도요다와 혼다는 당시 아무도 시장성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발에 전력했다.

이윽고 최근 몇 년 새 석유값이 기록적인 폭등세를 보이면서 더 이상 휘발유 폭식증에 걸린 4륜 구동차를 감당할 수 없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고연비 차량을 대안으로 찾기 시작하면서 프리우스같은 하이브리드 차들이 품귀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

캠리, 어코드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GM이 이런 비참한 지경에 처했는데도 지난 80년대처럼 "바이 아메리카"를 외치는 애국주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노동자들은 일제 차를 길거리에 세워두고 말 그대로 해머로 때려부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이런 애국주의 역풍에 힘 입어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아코카 회장은 저렴한 신형 세단과 미니밴 차량을 대거 출시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모은 바 있다.

1980년대와 2005년의 결정적인 차이는 도요다나 혼다 모두 미국 자동차회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미 미국화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도요다만 해도 북미지역에 총 12개의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다.

북미지역에서 팔리는 캠리나 어코드는 이제 더 이상 일제가 아닌 당당한 미제차인 셈. 차가 팔리지 않는다고 GM이 미국인의 애국주의 정서에 기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갈 수록 노쇠해지는 브랜드에다 어려운 재무상황, 게다가 팔리지도 않는 차라는 삼각파도를 맞은 GM이 곤경을 헤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해 전세역전 시도

▲ 뉴욕타임스의 자동차 전문기자 미셀린 메이나드 기자가 쓴 <디트로이트의 종말>. 저자는 활발한 현지화와 소비자연구로 성공한 일본차나 한국차와 대조적으로 혁신경쟁에서 뒤쳐진 것이 디트로이트가 몰락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 Currency
최근의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GM은 연료전지 자동차의 개발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와이어드> 등의 보도에 따르면 GM은 연료전지의 핵심기술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GM은 주차 중에는 소형자가발전기로, 운행 중에는 수증기만을 내뿜는 꿈의 자동차 개발에 비교적 근접한 상태라고 한다.

GM은 또 이런 환경친화형 연료전지자동차를 개발해 13억 인구가 휘발유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도요다나 혼다가 수년간의 집요한 개선과정을 통해 하이브리드라는 '과도기 절충안'을 내세워 성공했다면, 이런 일본 차의 공세를 일거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혁신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인 연료전지차를 내세워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겠다는 것이 GM의 야심이다.

하지만 업계전문가들은 경제성 있는 연료전지자동차의 개발에는 최소 10년의 개발기간이 필요하고 현재 석유에 기반한 미국의 에너지 공급 망을 모두 뜯어고치는 대수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재원을 조달해 줄 신차의 판매가 절실한데 출시할 때마다 팔리지 않고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바로 이 '차'들이 지구촌 최대의 자동차 회사 GM의 목을 죄는 딜레마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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