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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분노한 양

"성안의 사정이 이토록 위급했단 말인가?"

전라감사 이시방과 병마절도사 김준룡은 장판수의 보고를 듣고 침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준룡은 당장이라도 군사를 휘몰아 나갈 기세로 소리쳤다.

"당장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해야 합니다. 여기서 어물거릴 수는 없습니다!"

흥분한 김준룡과는 달리 이시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차분함을 유지하려는 듯 허리를 곧추세웠다.

"적의 병력은 수십만이고 우리는 그 십분지 일밖에 안되네. 자네의 말처럼 성급히 움직였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이네."

이시방의 우려와는 달리 김준룡은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었다.

"단지 우리의 병력만 있습니까? 북으로는 도원수가 거느린 병력이 있으며 좌, 우, 남 병마절도사가 있는 경상도의 병력도 북상하고 있습니다. 오랑캐들에게 잠시 밀리기는 했지만 충청도의 병력도 아직 건재하니 성안의 병력과 호응해 동시에 밀어붙인다면 저들이 어찌하겠소이까?"

이시방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충청도 원병을 거느린 이의배와 좌병마절도사 허완에게 같이 공격에 나서자는 전갈을 띄웠다. 하지만 허완이 거느린 경상도 원병 만여 명은 이미 쌍령에서 요격을 나온 청군 기병2천명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습을 받은 허완의 1진이 먼저 무너져 허완은 실종되었고, 이에 임의로 총지휘관이 된 우병마절도사 민영의 부대는 대오를 정비한 채 다가오는 청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쏘아라!"

청군이 가까이 다가오자 민영의 신호에 맞춰 조선군의 조총은 일제히 불을 뿜었고 선두에 목방패를 들고 기병을 엄호하던 청나라 병사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뒤에서 돌격을 준비하던 청나라 기병은 우왕좌왕거리며 흩어지다가 사격에 맞아 죽어갔다. 청나라 군대의 제 1진이 완전히 와해된 후 민영은 멀리서 다가오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진영을 바꾸어 총수들을 배치한 후 화약을 나누어 줄 것을 지시했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이를 방관하던 누군가가 이런 군사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불쏘시개를 들고서는 화약이 쌓여있는 곳으로 몰래 다가갔다.

"네 놈은 무엇 하러 총도 없이 이리로 오느냐?"

화약더미를 지키던 군관 하나가 가로막자 그는 대뜸 품에서 편곤을 깨내어 군관을 때려 누이고서는 주저 없이 화약더미에 불쏘시개를 던졌다. 화약이 지급될 것을 기다리며 대오를 정비하던 조선군은 곧 무시무시한 폭발에 놀라 술렁거렸다.

"무슨 일이냐?"

민영이 놀라 소리침과 동시에 뒤에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에서 오랑캐들이 쳐들어왔다! 모두 흩어져라!"

화약은 연이어 크게 터지기 시작했고 완전히 기가 꺾인 조선군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민영은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의 대오를 바로 잡으려 했지만 이미 통제는 불가능해 보였다. 병사들을 잡아 놓는 것을 포기한 영장들과 갑사들은 민영을 에워싸고선 활과 칼을 빼어들고 청군의 돌격을 기다렸다.

"원통하나 우리가 여기서 병사들과 함께 도주할 수는 없소이다.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뼈를 묻겠소이다."

민영의 얼굴을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허완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졌으나 우리를 요격 나온 오랑캐들은 그 수가 적어 물리칠 수 있었다. 대체 누가 요망한 짓을 하였단 말인가!"

그 말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군관이 대답했다.

"제가 화약에 불을 지른 자를 봤사온데 산성에서 원군을 청하러 온 자였습니다."

민영은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가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어찌하여 그 자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대답을 들을 기회도 없이 청의 기병이 민영을 비롯한 수십 명을 에워싸고서는 활을 쏘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남은 조선군은 등을 맞대고 둥글게 둘러서 청군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 갔고 전투는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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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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