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은 춘란의 개화에서 시작된다. 지각한 봄꽃 소식이 북쪽 하늘을 수놓을 때, 남쪽은 지금 거리마다 봄꽃 떨어지는 소리로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다.
춘란의 매력은 한 송이 꽃봉오리를 맺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느다란 꽃대가 숙성되어야만이 비로소 꽃망울을 맺는 것은 춘란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잘 보여 준다.
봄에 피는 난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요즈음에는 새우란이 장관이다.
4월 26일 제주도 학생문화원 전시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각양각색의 새우란이 봄을 초대한다.
새우란은 청초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은 준다. 꽃잎을 따라 발자국을 옮겨 보니 어느새 가슴에는 알록달록 꽃봉오리로 수를 놓았다.
새우란의 꽃대는 모가지가 긴 사슴처럼 가녀린 목을 드러내고 그리움에 젖어 있다. 가느다란 꽃대 속에서 주렁주렁 피어나는 꽃잎들을 바라보노라면 마음까지 한결 순수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느린 걸음으로 새우란의 자태에 빠져 본다. 가지는 꽃잎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서도 그 고통을 잘 참아낸다. 금방이라도 가지가 꺾어질 듯 하다가도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수를 놓는 정교로움. 이것이 바로 난의 운치가 아닌가 싶다.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꽃잎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은 구경나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듯하다.
이번 제주학생문화원 전시실에서 창립전을 가진 '제주새우란회'는 새우란을 전문적으로 연구, 배양, 육성, 보급하는 순수 새우란 동호회다.
춘란으로 익어가는 제주의 봄, 난의 향취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어느새 봄은 한가운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