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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 최후의 14일>의 표지
ⓒ 교양인
4월 30일은 히틀러가 죽은 지, 그리고 독일 제3제국이 패망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이 희대의 독재자는 여전히 수수께끼 속의 인물이다. 그는 죽어서도 해명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인간인 것처럼 보인다. 그토록 비밀에 쌓여 있으면서도, 그토록 생생하게 현존하는 인물이 인류사에 또 있을까.

종전 60주년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말, 독일은 히틀러와 제3제국의 최후를 다룬 한 편의 영화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했다. <히틀러 최후의 14일>은 바로 그 영화 <몰락(Der Untergang)>의 원작이 된 책이다.

<히틀러 평전>의 저자 요아힘 페스트가 되살려낸 히틀러와 제3제국 최후의 순간!

1945년 4월 30일 오후 3시 30분경, 베를린 시내에 있던 히틀러 총통의 지하 벙커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비서관 마르틴 보어만이 급히 히틀러를 찾아 방문을 열었을 때, 총통은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눈을 부릅뜬 채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동전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고, 바닥엔 권총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벙커 바로 위로 소련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부하들은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그와 아내 에바 브라운의 시체를 서둘러 소각했다.

독일이 패전한 직후부터 히틀러의 행방을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1945년 4월 베를린을 접수한 소련군은 다른 사람의 시체를 히틀러처럼 분장시켜 세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고, 히틀러가 도망쳐서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다는 그럴 듯한 소문들이 끊이질 않았다.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독일 역사가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 1926~)는 당시 히틀러와 함께 지하 벙커에 숨어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기존의 모든 자료를 새롭게 분석하고 정리해, 히틀러가 자살하기까지 제3제국 최후의 순간들을 되살려냈다.

페스트의 새 책 <히틀러 최후의 14일>(원제 : Der Untergang)은 1945년 4월 16일 20개 대군단 250만 소련 군대가 독일의 수도 베를린 공격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하 10미터 벙커 속의 히틀러가 권총 자살하는 4월 30일까지 14일 동안의 생생한 기록이다.

▲ 히틀러 생전의 마지막 사진. 1945년 4월 말, 무너진 총리 관저 출구에 서 있는 모습
ⓒ 교양인
다가오는 패배 앞에서 히틀러가 꿈꾼 것은 세계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시대, 나아가 한 세계가 다다른 철저한 몰락의 풍경을 배경으로, 선택의 매순간 히틀러와 측근들을 극단으로 몰고 간 힘의 원천을 밝힌다. 히틀러와 충복들을 마지막까지 이끈 강력한 에너지, 그것은 바로 '몰락과 파괴의 의지'였다. 히틀러가 전쟁을 통해 얻으려 한 것은 승리의 기쁨이라기보다 완벽하고 장엄한 몰락에서 맛보는 희열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패전을 눈앞에 두고 독일 전 국토를 완전히 파괴하라는 '네로 명령'을 내린 것도, 자신이 자살한 뒤 시체까지 완전히 소각시켜 없애라고 명령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끝나가는 전쟁의 마지막 며칠 동안 일어난 일에는, 패배를 더욱 키워 파국으로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절망의 에너지가 작동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벌써 1930년대 초에 다가오는 전쟁의 환상 속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만일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가 몰락하면서 세계의 절반을 우리와 함께 몰락으로 끌고 가리라."― 54쪽에서

철저한 과거 반성과 미래를 위한 역사 되짚기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과 일부 지식인들의 후안무치한 태도가 대서특필될 때마다 함께 거론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며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학살이라는 항목으로 20세기 세계사를 크게 장식한 나라. 일본과 달리 철저한 과거 반성을 실천하고 있지만 독일 역시 전쟁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인들에겐 건드리고 싶지 않은 상처인 것이다.

▲ 베를린에서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독일군 병사들
ⓒ 교양인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발행인을 역임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인 요아힘 페스트는 독일 역사가로서는 처음으로 히틀러 연구를 통해 서구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가 쓴 <히틀러 평전>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페스트는 평생 동안 히틀러와 나치를 연구해왔다. 종전 후 히틀러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보였던 독일 학계에선 이런 그를 두고 보수주의자라든가 심지어 나치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집념은 오히려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역사적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히틀러 최후의 14일>은 근래 진행한 책 중에서 드물게 재미있는 책이었다. 편집자로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1차 독자의 입장에서 그랬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쟁 묘사와, 패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타난 히틀러와 측근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원고를 처음 잡는 순간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묘사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분석까지 곁들여져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몰락>이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완벽한 몰락을 향해 치달았던 독재자와 측근들의 처참한 최후가 어떻게 그려졌을지 자못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승희 기자는 <히틀러 최후의 14일>의 편집자입니다.


히틀러 최후의 14일

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교양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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