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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판화를 작업하는 것처럼 땅에서도 정직한 작업을 한다. 판화를 파듯이 땅을 일구고 작품에 정신과 철학을 새기듯이 땅에도 자연에서 배운 참살이의 의미들을 새겨넣는 것이리라.
그는 판화를 작업하는 것처럼 땅에서도 정직한 작업을 한다. 판화를 파듯이 땅을 일구고 작품에 정신과 철학을 새기듯이 땅에도 자연에서 배운 참살이의 의미들을 새겨넣는 것이리라. ⓒ 권미강

판화라는 말이 우리에게 살갑도록 느껴지게 만든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판화가 이철수씨를 생각할 것이다. 그는 때론 떨어지는 나뭇잎을 통해 우리네 삶의 쓸쓸함을 이야기하고 때론 한공기의 밥을 통해 삶의 풍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귀에 대고 ‘삶이란 그런 거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그 삶의 초연함.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허기를 느끼지만 그 삶을 온전히 이끌어가야겠다’는 다짐과 희망을 안겨준다.

지난한 삶이 던져준 현실을 보는 눈

그는 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작가다. <응달에 피는 꽃>이란 작품집이 민중미술운동 사상 처음으로 판금당하기도 했다. 또 김지하 시인의 시집 <황토>표지를 저항의 몸짓으로 그려냈던 우리나라 민중미술가 1세대다.

그가 선배이자 스승이라고 말하는 오윤씨(86년 타계)를 만나면서 그는 민중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북치는 앉은뱅이’, ‘기민행렬’, ‘바람찬 날에 꽃이여’ 등은 80년대 대학교와 노동현장에서 걸개그림을 통해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시대 그의 판화작품은 오윤을 비롯한 신학철, 임옥상, 홍성담 등 민중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세상의 오류들을 당당하게 지적해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의 양심을 북돋아줬다.

작은 것 속에도 깊은 우주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작은 것 속에도 깊은 우주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 이철수씨 홈페이지
그가 민중작가로서 길을 걷게 된 것은 ‘삶을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으며 그 의지는 바로 가난에서 나왔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린 시절 이산가족이 되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돈도 없고 공부도 잘 못해 능력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헌책방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대표적 진보잡지인 <사상계>와 <창작과 비평> 등은 그가 민중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생을 바꾸어 놓은 첫 전시회

고등학교에서 미술반 활동을 한 것 외에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던 그가 심취했던 것은 오히려 문학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을 만큼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1986년 민중의 염원을 담은 동화 <큰 도둑 거문이>를 출간하기도 했으니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이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가 그림 쪽으로 눈을 돌린 건 어릴 적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에 대한 믿음과 ‘문학작품이 주는 감동이 그림에는 없는가’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는 작품으로 세상의 불의를 꾸짖는다. 촌철살인과 같은 작품들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받는다.
그는 작품으로 세상의 불의를 꾸짖는다. 촌철살인과 같은 작품들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받는다. ⓒ 이철수씨 홈페이지
그때가 군 제대 후인 20대 후반이었으니 시작이 꽤 늦은 셈이다. 독학으로 시작했지만 1981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개인전은 스승인 판화가 오윤을 만나게 해주었고 아내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됐으며(빈민운동가 허병섭 목사의 부탁으로 동월교회 벽화를 그리게 됐고 거기에서 빈민탁아소 활동을 하던 아내를 만나게 됐다) 민중미술가의 길을 걷게 해준 아주 특별한 전시였다.

그건 그가 가진 현실의 눈에 가장 알맞은 인연이었으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고마운 전시였다.

참살이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그는 지금 충북 제천 백운면 평동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산다. 물론 전업농부는 아니다. 본업인 판화도 하고 충북민예총 일도 보고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일상을 엽서로 전하기도 한다. 또 홈페이지의 회원이 된 이들에게 메일로 엽서를 보내기도 한다.

새싹이 돋았다는 얘기며 비가 온다는 얘기, 바람이 불고 새들이 재잘거린다는 얘기도 한다. 다 우리네 일상의 일이거늘 그것을 받는 사람들은 감동한다. 거기에는 사소하지만 그만의 빛나는 발견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엇이 담긴 그릇 하나 그려놓고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라고 써놓는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한 삶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그는 그의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들에게 매일의 일상을 이메일 엽서로 보내준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그의 엽서는 엄청난 삶의 에너지며 기쁨이다.
그는 그의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들에게 매일의 일상을 이메일 엽서로 보내준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그의 엽서는 엄청난 삶의 에너지며 기쁨이다. ⓒ 이철수씨 홈페이지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선(禪)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저 자연을 통해 얻은 것을 작품으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글과 그림으로 그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참살이’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펼치는 대중문화운동의 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따스한 대지의 숨결이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철수님의 홈페이지 주소입니다. www.mokpan.com
이 글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 문화사랑'5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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