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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나절 꾸물꾸물하던 흐린 하늘은 오후로 접어들더니 화창한 봄 햇살에 무기력하게 밀려나고 시골마을(김포 대곶면)은 다시 봄의 향연에 화려한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시골마을은 조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집집마다 그 주인들은 논으로 밭으로 발걸음을 옮겨 부지런한 농부의 역할에 바쁜지라 봄 햇살에 보송보송 말라가는 빨래들만이 대문도 없는 농가들을 한가로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망연히 서보니 ‘지금 이 순간이 그지없이 평화롭다’는 찬사가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마도 그런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제겐 크나큰 축복인 것 같아 봄날 오후,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골마을의 모습에 취해서 봄 햇살에 얼굴이 그을리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정신 나간 사람마냥 넋을 놓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난데없는 요란한 음악소리가 나를 그리고 조용한 시골마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뭐야, 이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건가.”

우리 동네 이장님께서는 마을회관에서 동네사람들에게 방송을 하시기전에 꼭 신나는 트로트 서너 곡을 미리 틀어주시고 난 뒤 ‘아. 아. 이장입니다.’로 말씀을 시작하시기에 오늘도 그러려니 짐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란하게 시골동네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음악은 늘 듣던 트로트가 아니고 요즘 한창 유행하는 댄스곡, 그것도 고막을 찢어 놓을 것 같은 그런 노래들이었습니다.

‘뭐야, 이장님 취향이 변하셨나?’
뭔가 요상하기는 하였지만 도대체 저런 댄스곡 다음에 이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 지가 못내 궁금하여 두 귀를 마을회관을 향하여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귀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건지 그 음악은 마을회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동네 어귀 한 길가에서 들려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라 저는 그 음악소리가 나는 진원지를 향해 종종 걸음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진원지에 도착한 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습니다.

▲ '신바람 난 찝빵집'의 흥겨운 오픈 이벤트
ⓒ 김정혜
바로 얼마 전에 생긴 찐빵 집에서 오픈 이벤트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씬한 아가씨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혀 TV 쇼 프로그램에서나 본 것 같은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고 옆에선 우스꽝스런 웃음을 하고 있는 사람모양을 한 긴 풍선이 마치 두 팔이 몸뚱이와 따로 분리된 인조인간 마냥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두 팔이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있었습니다.

▲ 인조인간 마냥 팔이 제 멋대로 팔랑거리는 사람모양의 풍선
ⓒ 김정혜


거기에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명시설까지 잘 갖추어져 있었고, 찐빵 집 입구엔 별로 장식한 큰 문이 예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 오픈 이벤트를 더욱 화려하게 해준 색색의 조명들.
ⓒ 김정혜

▲ 색색의 별이 예쁜 찐빵집 앞에 세워진 문
ⓒ 김정혜
시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그것도 찐빵 집에서 벌이는 그 이벤트는 아주 특별하고도 이례적이었습니다.

보통 개업 집이라 하면 팥고물이 수북한 시루떡에 잘 생긴 돼지머리 얹어놓고, 돼지 코에 지폐 돌돌 말아서 꽂고 어쨌거나 큰 돈 벌게 해달라고 막걸리 철철 넘치게 부어놓고 공손히 큰 절하는 게 흔히들 볼 수 있는 개업 집 풍경이건만 시골마을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요란한 음악에 늘씬한 미녀들의 현란한 춤이 그 풍경을 대신하고 있으니, 무늬만 아지매인 저나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던 시골마을이나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며 어찌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한참을 넋을 놓고 늘씬한 아가씨들이 추는 현란한 춤에 깜빡 정신을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벤트에 정신을 놓은 건 비단 저 뿐이 아니었습니다.

▲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찐빵
ⓒ 김정혜


지나가는 차들은 그 이벤트를 보느라 어느새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빨리 가기를 재촉하는 경적한번 울려대지 않았고 도리어 재미있고 신나게들 구경하였고, 더러는 내려서 찐빵과 만두를 사가는 이들도 있었으며 밭으로 일을 하러 갔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삼삼오오 찐빵집 앞으로 모여 들더니
“아유 저 아가씨들 춥겠네. 비 온 뒤라 오늘은 바람도 찬데….”
“이런 거 공짜로 보면 안 되는 거야.”하시며 찐빵 집으로 들 들어가시더니
저마다 찐빵이며 만두들을 사서 들고들 나오시는데 시골인심의 후덕함을 보는 것 같아 참 흐뭇하였습니다.

▲ 다진 고기로 속이 꽉 찬 고기만두
ⓒ 김정혜
그 특별한 이벤트는 먼데 하늘 끝이 어둠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덕분에 온 시골동네도 저녁해거름까지 들썩거리고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서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그 모습이 알콩달콩 정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날이 그날 같은 이 시골마을에 그 특별한 이벤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 신선한 충격은 시골 아지매들로 하여금 저녁 밥 짓는 것도 까맣게 잊게 만들고 말았지만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춤으로 힘들고 바쁜 일상속의 고단한 시골 아지매들을 잠시잠깐이라도 탈출시켜 준 것 같았습니다.

시골 아지매들은 수다를 끝맺으며 저마다 집으로 들 향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구경 시켜준 찐빵집이 모쪼록 대박 나서 내년 개업 1주년 때도 좋은 구경 한 번 더 시켜 주었으면 좋겠다’하고 말입니다. 그런 시골 아지매들의 뒤로 어느새 어둠은 짙게 내려 앉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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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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