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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가을
내원암 가을 ⓒ 송성영
나는 가끔씩 계룡산 북쪽 자락에 자리 잡은 갑사를 찾아 갑니다. 천년고찰 갑사는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 있습니다. 엎드리면 코 닿는 거리에 있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 찾아갑니다. 편의상 갑사에 간다고 했지만 사실 갑사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갑사에 딸린 작은 암자, 내원암에 갑니다.

내원암은 갑사에서 불과 이삼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원암을 잘 모릅니다. 갑사에 가도 내원암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원암에 가려면 갑사를 거쳐 가야 합니다.

내원암 가을 연못
내원암 가을 연못 ⓒ 송성영
갑사 가는 길은 참 많이도 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갑사를 즐겨 찾기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무지무지 하게 변했습니다. 새 건물도 많이 들어섰고 또 들어서고 있는 중입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엄청 나게 변했습니다.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전에 없던 일주문이 두 곳이나 들어서 있습니다. 새로 생긴 일주문을 거쳐 사찰로 들어서면 황소 두어 마리쯤의 소가죽이 들어갔음직한 엄청나게 큰북이 들어서 있습니다. 전에 없던 북입니다. 또한 내원암 오르는 길목에는 시민 선방 겸 전시실이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건물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행사도 많아졌습니다. 사시사철 수많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 사람들 역시 많이 찾아 옵니다. 이제 갑사는 더 이상 예전의 고즈넉한 맛을 지녔던 갑사가 아닙니다. 그 만큼 대중들에게 좀 더 바싹 다가서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좋은 시설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를 찾아 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죠. 그렇다면 절이 얼마든지 커져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는 죽겠다고,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합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통스러워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문제는 종교 건물들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세상이 맑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더욱더 큰 종교 건물들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세상이 맑아질 때까지 자꾸만 자꾸만 종교건물들이 새롭게 크게 들어서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현상을 보고 뭐라 하실까요?

내원암 겨울
내원암 겨울 ⓒ 송성영
나는 화려하게 변모하고 있는 갑사보다는 별 볼거리도 없이 그저 그렇게 들어서 있는 내원암을 더 즐겨 찾습니다. 갑사에는 여기저기에 수많은 문화재들이 들어서 있지만 내원암은 정해놓은 문화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원암이 갑사 내 산내 암자로 들어 선지는 아주 오래됐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이전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이런저런 문헌을 뒤져봐도 내원암에 관련된 사료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내원암에는 오래된 돌탑도 없습니다. 그 흔한 설화나 전설도 없습니다. 볼거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암자입니다.

별 볼거리가 없는 만큼 사람들의 발길 또한 뜸합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기에 조용합니다. 갑사 주변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 암자입니다. 갑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지만 거기서부터 불과 2백 미터 정도 불과한 거리에 자리한 내원암은 늘 한적합니다.

내원암 겨울 풍경
내원암 겨울 풍경 ⓒ 송성영
갑사에 가면 휙 둘러보고 차 시간에 맞춰 하산해야 할 것만 같지만 내원암은 별 생각 없이 눌러 앉아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있습니다. 내원암은 한가롭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암자이기 때문입니다. 할 일없이 발가락 후비고 있는 스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벨일 없으시쥬?"
"헤, 별일은, 왔슈?"


흘러내린 바지자락 추스르며 언제나 헤벌쭉 반기는 스님이 있습니다. 늙지 않은 석호스님은 보기에 따라 '빡빡머리 조폭스님'처럼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고개 쭉 빼들고 시비조로 말문을 여는 게 보통이니까요.

누구요! 어떻게 오셨슈! 뭐 하러 왔슈!"

윽박지르듯이 탁 쏴 붙이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끝에 철부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생글생글한 웃음을 흘리니까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이는 석호스님처럼 내원암 역시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내원암 밤 풍경
부처님 오신 날 내원암 밤 풍경 ⓒ 송성영
요 몇 년 사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갑사와는 달리 내원암은 '그냥 냅둬유'로 세월을 묵히고 있습니다. 암자 앞에 손바닥만한 연못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어쩌다 못 보던 물고기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할 뿐입니다.

색 바랜 단청무늬도 기와장도 그대로고 기왓장 틈에서 자라는 잡초도 그대로입니다. 어쩌다 금이 간 기왓장과 갈라진 틈새를 땜질한 흔적들이 있을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등산객은 물론이고 불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계면쩍게 들어서 있는 시주함은 누가 채울꼬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합니다. 어쩌다 오는 손들은 나처럼 시주함을 거들떠보지 않고 빈둥빈둥 놀러 오는 '나이롱 신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스님들은 이슬 먹고산다지만, 육신은 어떻게 먹고 사는가, 걱정 될 정도 입니다. 사실 별 걱정 없습니다. 스님이 별 걱정 없이 사니까요.

석호스님이야 이슬 먹고 사는 게 '업'이니까, 맛난 거 먹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번잡스럽지 않는 내원암이 좋습니다. 시주함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한결같이 반겨주는 스님이 있어 좋습니다. 심각하게 가부좌 틀고 앉아 지키지도 못할 법문 딸딸 외워주지 않는 스님이 있어 좋습니다. 친구처럼 도반처럼 때로는 선생처럼 다가오는 석호스님이 있어 그저 좋습니다.

석호스님과 '미제침략사'를 펴냈던 조성일씨
석호스님과 '미제침략사'를 펴냈던 조성일씨 ⓒ 송성영
내원암에게는 나 같은 떨거지 단골손님들이 주로 찾아오지만 간혹 목사님들도 오시고 신부님, 수녀님들도 오십니다. 국선도를 비롯한 이러저러한 수련단체에 관련된 다양한 수행자들도 찾아옵니다. 사회운동가들도 찾아오고 그냥 별 탈없이 세끼 밥 잘 넘기고 사는 사람들도 찾아옵니다.

물론 도토리 줍는 할머니들도 오락가락하고 또 가끔씩은 집 나온 남편, 아내들도 찾아와 머물다 가기도 합니다. 그들 속에 큼직한 납덩어리 하나가 턱하니 들어앉아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할 일 없어 보입니다. 암자 주인의 기운에 물들어서 그런지 별 고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 또한 빈둥빈둥 놀다옵니다. 스님이 있으면 차 한 차를 얻어 마시고 없으면 법당 앞마루에 앉아 먼 산 바라보기를 합니다. 겨울에는 해바라기를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즐깁니다. 신도들은 물론이고 등산객조차 발길이 뜸한 곳이다 보니 눈치 살필 것도 없이 빈둥빈둥 마루장에 누워보기도 합니다. 어쩌다 마음 내키면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머리 조아리고 앉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법당 앞마루 신세를 집니다.

나는 백치처럼 단순해지고 싶을 때 내원암을 찾아 갑니다. 지난 10년 동안 내원암을 안방 드나들듯 하다가 작년 봄부터 디지털 카메라에 사계를 담았습니다. 내원암은 10년 전 그대로면서 또한 사시사철 변하고 있습니다. 내원암에는 그 흔한 전설이나 설화 하나 전해져 오는 것이 없지만 턱 밑에 들어선 작은 연못 주변에 나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봄이면 흰 목련의 큼직한 꽃잎들이 사정없이 피고 또 사정없이 툭툭 떨어집니다. 여름이면 청솔모의 습격을 용케 피한 호두가 뚝뚝 떨어지고, 가을이면 상수리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두 사람이 팔 벌리고 껴안아야 할 만큼 덩치 큰 상수리나무입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는 과일이며 밥이며 언제나 산짐승들의 먹을거리들이 놓여 있습니다.

내원암 봄 연못
내원암 봄 연못 ⓒ 송성영
겨울이 돌아오면 연못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홀라당 다 벗고 서 있습니다. 그 나무가 그 나무 같습니다. 다들 좋다 나쁘다 분별심 없는 늙은 스님 같습니다.

할머니 보살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석호스님은 입춘이다 뭐다 하는 날이 돌아오면 미리미리 신도들 오시라, 연하장을 날려야 하는데 까마귀 고기 먹은 거 모양 늘상 깜박합니다. 한 달 전쯤에 날려야 할 연하장을 사나흘 코앞에 앞두고 날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부처님 오신 날 만큼은 이사람 저사람 불러 모아 미리미리 연등을 만들어 달아맵니다. 스님 생일날은 까먹기 일쑤지만 부처님 생신만큼은 꼬박꼬박 챙깁니다.

내친 김에 내원암 주인장 석호스님 얘길 좀 더 해보겠습니다. 석호 스님 성품을 제대로 모르고 함께 나다니면 민망할 정도로 얼굴이 화끈 거릴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 스님이 시장 통에서 참외 하나를 냉큼 집어 들고는 바지춤에 쓱쓱 문대 와작와작 잘도 먹었더군요. 돈도 내지 않고요. 거기까지는 다 좋은데 옆댕이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참외를 집어 줍니다. 그거 역시 돈 한 푼 내지 않고 주인한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참외 하나 입에 물고 휭 하니 자리를 뜹니다.

"수고 하슈."

내원암의 여름
내원암의 여름 ⓒ 송성영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스님 참 싸가지 없다'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시장통 아줌마들도 돈 내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삿대질하며 따지고 들어야 할 시장통 아줌마들은 스님이 돈을 내거나 말거나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장에서 과일 장사하는 어지간한 아줌마들은 석호스님을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느 한 곳을 단골로 삼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여기서 다음번에는 저기서,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골고루 물건을 삽니다. 시장통 아줌마들이 돈 내라는 대로 따지지 않고 그대로 돈을 지불합니다. 물건 개수를 헤아리거나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스님이 좋습니다. 스님과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들과 놀 때처럼 잔머리 굴리지 않아도 됩니다. 계산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게 옳으니 그르니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렇다고 석호스님이 애들처럼 희희낙락 빈둥거리며 맥 손을 놓고 놀고먹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소년원에 가서 법문을 하거나 국선도를 가르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법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것입니다.

내가 석호 스님과 알고 지낸지 10여 년, 그동안 스님이 목탁치고 염불 외는 소리를 열 번도 채 못 들었습니다. 석호스님의 목탁 장단에 염불 소리는 장난꾸러기 스님의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구슬픕니다.

석호스님 역시 연말이나 '부처님 오신 날' 등, 절집 행사 때마다 사람들 틈에 앉아 이야기 나누듯이 법문을 하거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러 있지만 머릿속 복잡한 사람들과 빈둥빈둥 놀아주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게 스님의 주된 '업무'이자 생활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부처님 오신날 내원암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지난해 부처님 오신날 내원암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 송성영
내원암을 빈둥빈둥 놀려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나 봅니다. 이것저것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내원암을 빈둥빈둥 놀리는 석호스님이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빈둥거리며' 내원암을 지켜왔던 석호스님은 조만간 내원암을 비워줘야 한다고 합니다.

내원암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롭게 단장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빈둥빈둥 노는 내원암이 아닐 것입니다.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뭔가 좋은 것'을 머릿속에 심어주겠지요. 하지만 빈둥빈둥 놀아주면서 사람들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주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할까요?

덧붙이는 글 | 내원암이 예전모습 그대로 빈둥거리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사계를 담아 보았습니다. 빡빡한 세상에 뭔가 비어 있는 공간도 필요하질 않을까 싶어서요. 부처님 생각은 어떠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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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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