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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장세린의 별명은 '놀아줘 대마왕'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맨 처음 하는 말도 '놀아줘'이고,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상태에서도 "놀아줘" 합니다.
자나 깨나 놀아달라고 하는 이 철없고(?) 귀여운 딸 아이 때문에 친척이나 옆집 언니, 오빠들은 한 번 놀아주고 난 뒤부터는 슬슬 딸아이를 피하는 눈치입니다. 쉴 틈 없이 놀아달라고 조르니 그 애들도 피곤할 만하겠죠.
아이들이야 노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니 어찌보면 모든 아이들의 별명이 '놀아줘 대마왕'일 지도 모르겠지만 제 딸은 좀 특별합니다. 어디 '놀아줘 대마왕'의 진수를 한 번 보시겠습니까.
참고로 제 별명도 있습니다. 저는 '놀아줘 대마왕'이 놀아달라고 하면 그 어떤 난관이 있어도 놀아주어야 하는, 우리 딸의 충실한 '대마왕 부하'입니다. 아내가 지어 준 별명입니다.
술 덜 깬 아빠 깨우며 "놀아줘"
언젠가 저녁에 회식이 있어 술을 과음한 적이 있는데, 새벽 5시 30분 정도 됐나? "아빠~"하면서 자고 있는 저를 부르는 겁니다.
"응! 왜?"
딸이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과음한 탓인지 속도 안 좋고 그래서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다. 술 드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술 덜 깬 아침, 얼마나 힘듭니까. 속도 울렁울렁, 머리도 띵~ 하니 기운도 하나 없고…. 죽겠더라구요. 그래서 딸 아이한테 더 자라고, 아직 새벽이니까 더 자라고 등을 토닥거려 주고서는 뒤돌아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작은 목소리로 "아빠, 아빠" 하면서 부르는 겁니다. 그냥 무시했죠. 속이 안 좋아 죽을 지경인데, 저러다 잠들겠지 하고 그냥 눈을 감았습니다. 아, 그런데 끈질기게 부르더군요. 순간 짜증이 나서 "왜, 왜 부르는데…" 하고 목소리 톤을 높였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놀랐는지 딸 아이는 아무소리 않고 베개를 끌어안고 누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큰 소리 친 것이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딸 아이 끌어안고 "왜 세린아. 아빠한테 할 말 있어?" 하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시무룩하게 누워있던 제 딸, 부드러워진 제 목소리에 뭔가 희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고개를 획 돌리더니, 웃으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빠 놀아줘!"
"뭐! 지금 몇 시인데 놀아. 새벽이야. 밖에 봐봐. 아직 햇님 안 나왔잖아. 얼른 자."
하지만 괜히 대마왕이겠습니까. 제가 말 붙이고 하니까 아빠가 이젠 잠을 다 잤다고 생각했는지 저를 붙잡고 흔들면서,
"아빠 놀아줘잉~ 아빠 놀아줘잉~"
"아빠 어제 술 먹고 와서 힘들어. 세린아 그냥 자자 응!"
딸한테 애원하다시피, 최대한 불쌍하게 말했지만 우리 딸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싫어. 아빠 놀아줘. 놀아줘."
다시 짜증이 나더군요. 저 그때 진짜 술 덜 깨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습니다.
"아빠 힘들다니까아~ 너 혼자 나가서 놀던가, 아님 자던가 맘대로 해."
제가 큰 소리를 치니까 우리 딸의 마지막 무기, 막 울더라구요. 처음에는 울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 뒀는데, 계속해서 우니까 왜 그렇게 불쌍해 보이고 마음이 아프던지. 결국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나가자 나가. 거실로 나가서 놀자. 됐냐!"
참내, 언제 울었냐는 듯이 좋다고 거실로 뛰어 나가더군요. 뭐 하고 논지 아세요. 블록 놀이 했습니다. 그 새벽에 일어나 1시간 넘게 블록으로 63빌딩도 만들고, 총 만들어 총 싸움 하고, 농장도 만들고, '위잉 위잉~' 비행기 놀이도 하고.
아침에 그렇게 놀고 있는 저를 보고 제 아내 "(코미디언 흉내내며) 대단해요!" 전 그게 무슨 뜻인 줄 압니다. '어디 또 그렇게 술 먹고 와보지 그러셔' 하는 고소하다는, 샘통이라는 뜻이었죠. 아무튼 술 덜 깨서 죽겠는데, 놀아주기까지 하려니까 정말 힘들대요. 저 그날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에 잠자고 있는 두 살짜리 동생 깨우며 "놀아줘"
지금 이야기는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와 저는 '어떻게 하나 더 두고 봐야지' 하는 생각에 웃지도 못하고, 나오는 웃음 참느라고 고생깨나 했습니다. 얼마나 웃음을 참았나, 나중에는 배가 땡기더라구요
그러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이었습니다. 제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 그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놀아달라는 소리를 많이 겪은 저인지라, 본능적으로 딸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딸의 기 싸움이 시작된 거죠. 저는 계속 눈을 감고 있고, 제 딸은 언제 눈을 뜨나 쳐다보고 있고. 그동안은 제가 많이 졌지만 오늘은 제가 이겼습니다.
다시 눕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살며시 눈을 뜨고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시 눕더라구요. 속으로 살짝 웃으면서 저도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딸이 벌떡 일어나더만 침대 밑으로 내려 가대요(저와 딸은 침대에서 자고, 제 아내와 둘째는 침대 밑에서 이불 깔고 잡니다). 아주 가끔씩 저 혼자 거실에 나가 놀 때도 있어 처음에는 그런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태민아 일어나. 놀아줘, 놀아줘!"
침대 머리에 난 구멍으로 몰래 보니까 아 글쎄, 자고 있는 두 살짜리 동생한테 놀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하더만, 지 동생이 안 일어나니까 아예 흔들어 깨우대요. "태민아 놀아줘" 하면서 말이죠. 아니, 놀아달라고 할 사람이 따로 있지, 두 살짜리 동생한테 놀아달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것도 새벽에 자는 동생 깨우면서. 아무튼 계속 깨우는데도, 둘째 놈도 저처럼 끈질기게 안 일어나대요. 드디어 우리 딸 화가 났나 봅니다.
"너, 안 일어나면 과자 안준다. 풍선도 안 주고."
"너, 안 일어나면 누나가 너랑 이제 안 놀아준다!"
그 말 들으면서 나오는 웃음 간신히 참았습니다. 다들 자고 있는 이 새벽에 저 혼자 일어나 그 어린 동생 깨우면서 놀아달라고 하는 딸 아이 행동이 하도 어이도 없고, 귀엽기도 하고.
결국, 누나의 성화에 못 이겨 둘째가 일어나더군요. "아앙~" 울면서 말이죠. 졸린데 자꾸 깨우니 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놀 수가 있겠습니까. 딸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지, 동생이 울어서 그런지 저도 같이 울더라구요. 그때서야 제가 일어나서 모르는 척 "장세린, 왜 그래?" 하고 물었더니 울먹이면서, 서럽게 우리 딸이 그러대요.
"태민이가 안 놀아줘."
아침밥을 먹으면서 자꾸만 새벽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장태민, 너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서 누나하고 놀아줘. 알았지. 그리고 니가 그냥 오빠해라 오빠!"
우리 딸 자기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삐쭉 내밀며 화난 표정을 짓대요. 으이그, 이제는 새벽에 자고 있는 두 살짜리 지 동생까지 깨우면서 놀아달라고 하는 우리딸, 이쯤 되면 우리 딸 '놀아줘 대마왕' 맞죠?
덧붙이는 글 | 때로는 '놀아줘 대마왕' 딸하고 노는 것이 조금 힘들고, 지치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이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하면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