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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게까지 야근하고 돌아왔는데 아내에게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암'으로 진단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건강하게 직장을 다니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한 병환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아버지의 연세를 생각하고선 내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한국을 떠나올 때의 그 연세가 아닌데 내 머릿속에는 늘 50대 후반의 아버지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칠순을 넘으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다음날, 회사일과 관련된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해야하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울음이 났습니다. 아버지의 일생이 눈앞에 지나갔습니다. 가난하고 어렵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시골에서 홀홀단신 상경하여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겨우 가정을 이루시고 5남매를 두신 아버지.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님 덕분에 형제 네 명은 대학까지 진학했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자식 중에 누군가는 큰 성공을 하리라고 바라셨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성공하기는커녕 각자 살아가기에 바쁜 자식들이라 흔히 말하는 호강이라는 것을 누려보지 못하고 칠순이 넘도록 직장을 다니셔야만 했던 아버지. 자식으로서 제대로 살아왔는지 내 자신을 되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내 자신도 어느새 자식 둘을 두고 마흔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쁜 회사일로 아이들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내가 어렸을 때 언제나 말이 없이 무뚝뚝한 아버지가 손발을 어루만지며 사랑스런 눈길로 응시하던 아버지가 떠올라 어느새 나도 아이들의 손발을 어루만지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같이 공유했던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나눠준 사랑과 정은 누구 못지않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셨고 퇴근하면 시계처럼 귀가하셨습니다. 어쩌다 가끔씩 약주를 하셨지만 심하게 드신 적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은 성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이제 많이 아프시답니다.

내가 아버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남은 시간동안 조금이나마 더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이 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아들 녀석도 할아버지와 같이 하는 시간을 가져서 할아버지의 정과 사랑을 나눠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들이 녀석이 살아갈 인생에 있어 하나의 자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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