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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선 의원이 2004년 4월 9일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이 20일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이호원 부장판사)는 이날 현대 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주선 전 의원은 지난 2000년 9월 현대그룹으로부터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대가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6월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2월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된 바 있다.

검찰사에 전무후무한 3번의 구속과 3번의 무죄판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소된 내용 중 나라종금 안상태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는 1심에서 무죄가 인정됐고 검찰도 항소를 포기해 현대그룹으로부터의 뇌물수수 혐의만을 가지고 판단했다"고 전제하고 "박 전 의원이 현대건설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직무와 대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같이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사실 이같은 재판결과는 지난 2월 대법원이 현대 비자금 수수혐의에 대해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기보다 단순 정치자금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하고 보석을 허가해 석방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로써 촉망받는 검찰 출신 법조인으로서 세 번이나 '친정'에 의해 구속된 그의 '오욕'(汚辱)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게다가 박 전 의원은 세 차례 모두 최종적으로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그 오욕을 '영예'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았다.

막강한 형벌권을 가진 대한민국 검찰이 대검 중수부까지 동원해 세 번이나 구속기소했는데도 세 번 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검찰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야말로 기네스북 감이다.

그런데 국가 형벌권을 집행하면서 특정 개인을 상대로 '3전 3패'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게 된 데는 추상(秋霜) 같아야 할 검찰권의 남용 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국회 일부에서는 더는 그와 같은 억울한 정치인이 나오지 않도록 '박주선 국정조사'를 통해 검찰의 직권남용 부문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현대 비자금 사건은 대북송금 특검 수사의 '파생사건'

'박주선 청문회'가 열릴 경우, 1차적인 조사대상은 '대북송금 특별검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박주선 현대 비자금 사건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에서 현대 계열사 압수수색 등으로 포착한 단서를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가 파헤친 '대북송금 파생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대북송금에서 파생한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박주선 전 의원은 물론,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등 김대중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박주선 전 의원과 박광태 시장은 이미 무죄가 확정되었고, 박지원 전 장관도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으로 사실상 무죄판결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억울한 옥살이 원인을 제공한 대북송금 특검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청문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박주선 청문회가 열릴 경우, 그 두 번째 조사 대상은 대검 중수부를 필두로 한 검찰 조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검찰은 이른바 '옷로비 사건'으로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중에 박주선 전 비서관은 물론 김태정 전 법무장관 등 관련자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결국 옷로비 사건은 여론에 떠밀린 검찰이 실체가 없는 사건에 매달려 정치적 희생양으로 박 전 비서관 등을 구속한 것임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검찰은 2004년 1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나라종금 사건으로 박씨를 두 번째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인정되었고 검찰도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졸속 기소'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박씨를 세 번째로 구속기소한 현대 비자금 사건의 자초지종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박주선이 김태정 검찰총장이라는 '이카루스'를 태양(권력)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무리하게 그를 두 번이나 더 구속기소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사법시험(16회) 수석합격으로 초임 검사 시절부터 검찰내 호남 인맥의 선두주자였던 박 전 비서관에 대한 영남 인맥 경쟁자들의 질시와 증오가 작동한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이 있다.

사실 검찰 일부에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김태정 검찰총장-박주선 법무비서관 라인이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훼손시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 인사상 불이익이나 홀대를 받았다고 여기는 영남 출신 엘리트 검사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퍼져 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는 권력과 검찰의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들어, 김대중 정부에서 검찰총장 및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태정씨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의 날개'에 비유한다. 즉, 김씨의 추락을 자유를 갈망해 비행에 성공하지만 태양(권력)에 너무 가까이 갔다가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녹아내려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김태정이라는 검찰 조직의 총수를 권력에 가까이 가도록 유인한 인사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나와 역사를 같이 쓸 인물"이라고 총애했던 박주선 법무비서관이었다는 것이다(김 전 총장과 박 전 비서관은 광주고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검찰 조직 일부에서는 박 전 비서관이 '미운 털'이 박힌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 국정조사가 열리면 노무현 정부 이후 박 전 비서관을 구속기소한 나라종금 및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한 안대희 전 중수부장(사시 17회)과 그 계선 상의 수사 관련자들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주선 청문회가 열릴 경우, 그 세 번째 대상은 청문회를 주도하는 정치권 그 자신과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이 될 것이다.

'박주선 청문회'는 검찰개혁의 시발점이자 동료로서 최소한의 예의

우선 정치권은 박 전 의원이 구속된 틈을 타서 '무주공산'이 된 지역구(전남 화순·보성)를 게리맨더링으로 공중분해시켜 버리는 몰염치를 저질렀다. 여야는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화순과 보성을 떼어다가 각각 나주와 고흥에 붙여버렸다. 결국 옥중에서 졸지에 지역구를 '탈취'당한 박 전 의원은 고흥·보성에서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했으나 분루를 삼켜야 했다.

또 그가 낙선한 데에는 정치권 외에도 17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총선시민연대 같은 시민단체들도 그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총선시민연대는 그가 옷로비 사건과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것을 낙천 대상자 선정의 핵심사유로 제시했으나 두 사건 모두 나중에 무죄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검찰의 주장과 시민단체의 낙천운동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파한 언론 또한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박주선 전 의원이 20일 언론에 배포한 '무죄판결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가장 공정하고 이성적이어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마저도 검찰의 억지 주장에 현혹되어 저의 호소를 외면했다"며 "도리어 사악한 정치검찰의 부도덕한 무법횡포를 비호하여 저를 '검찰살인(檢殺)'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다"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싶다.

박 전 의원은 이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갇혀 있던 '마녀사냥'의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마침내 광명의 세상에 다시 서게 되었다"면서 "저에 대한 이번 무죄판결이 우리사회에서 성역화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왜곡된' 사법권력이 진정으로 개혁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어쩌면 그의 지역구를 빼앗은 국회가 '박주선 청문회'(국정조사)를 여는 것은 구속에서부터 무죄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2년 2개월 동안 겪어야 했던 동료 의원의 시련과 고통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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