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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여성축구단 선수들
은평구 여성축구단 선수들 ⓒ 홍용희

6대 0, 4대 0, 2대 0...'0패'의 추억

마포팀과 처음 경기를 한 건 2002년 가을이라고 합니다. 당시 우리 팀은 창단한 지 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신생팀이 강팀과 친선경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우리 팀의 코치와 마포팀 코치가 잘 아는 선후배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 대결에선 생각하기도 끔찍한 6대 0 대패였습니다. 엄청난 패배를 안겨준 마포팀은 그 후 우리 팀이 넘어야 할 목표가 됐습니다. 어떻게든 마포팀을 이겨보겠다는 의지를 모아 열심히 연습하고 1년 후 다시 맞붙었지만, 역시 4대 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역부족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마포팀과 경기를 한 지난해 가을, 말로만 들어왔던 마포팀의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난 언니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운동장에 나섰지만 번번이 마포팀의 수비수에게 막혀버렸습니다. 그리곤 날카로운 공격력과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마포팀에게 또다시 2대 0으로 졌습니다.

"만날 0패네. 이번엔 0패를 면하나 했는데…."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패하자 터져 나온 한숨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경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실점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막연히 이겨봐야겠다는 생각보단 훨씬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 목표는 1실점 이내로 수비하고 한 골을 꼭 넣어 비기는 것이었습니다.

올 초 기회가 왔습니다. 마포구청의 후원으로 마포, 은평, 서대문 세 팀이 친선경기를 망원유수지 운동장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목표대로 어떻게든 비겨보자고 악착같이 달라붙었습니다.

첫 골의 기쁨과 역전패의 아쉬움

오랫동안 목표를 삼고 준비해온 덕일까요? 왼쪽 날개 공격을 맡았던 우리팀 선수가 드디어 골을 넣은 것입니다. 그것도 선제골을요. 우리 선수들은 모두가 믿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매번 득점 없이 실점만 당하던 팀에게 먼저 골을 넣다니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우리 팀은 그만 방심을 하였고, 그 틈을 타 마포팀 주전공격수에게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만 끝났다면 비기기로 한 목표는 달성했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1분만 잘 버텼으면 그 기쁨을 맛보았을 텐데요.

경기종료 직전 마지막 총력을 다해 상대팀 공격수가 날린 슛을 수비수가 걷어냈지만 빗맞은 공은 우리 골문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그날도 2대 1로 지고 말았습니다.

"비긴 거나 다름없어. 다음엔 꼭 마포를 꺾을 수 있을 거야."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우리는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했습니다.

지난 15일 '2005전국 국민생활체육 대축전'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결의를 다진 은평 축구단.
지난 15일 '2005전국 국민생활체육 대축전'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결의를 다진 은평 축구단. ⓒ 김미옥
지난 15일 '2005전국 국민생활체육 대축전' 첫 경기에 아쉽게 지고 우리 팀의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입니다. 이대로 있다간 자칫 긴 슬럼프로 빠져들지도 몰랐습니다.

이러한 우리 팀의 분위기도 바꿔보고 또한 전국대회 준비하면서 나아진 경기력으로 마포팀과 경기를 한다면 좋은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문지기 언니가 23일 마포팀과 친선경기를 주선했습니다.

짜릿한 선제골! 느낌이 좋은데...

우리 팀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우세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미드필더부터 침착하게 공을 연결했고 우리 공격수들은 상대 문전까지 파고들어 슛을 날렸습니다. 양쪽 날개 공격도 쉽게 돌파가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날보다 마포팀의 수비가 허술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골문 앞 결정력 부족으로 전반 30분 내내 공격을 펼치고도 골을 넣지는 못했습니다.

수비에선 상대 주공격수를 개인방어하고 다른 공격수가 공을 잡으면 2~3명이 돌아가며 협력수비를 펼쳤습니다. 때론 너무 많은 수비수가 한쪽으로 치우쳐 위태롭게도 보였지만 전반 내내 잘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포팀은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후반에도 전반의 기세를 몰아 세차게 공격했습니다. 후반 10분경 상대 문지기가 차낸 공을 우리 미드필더가 중앙선 약간 못 미친 곳에서 따냈습니다. 머리로 강하게 오른쪽 앞쪽으로 밀어주었고 나는 빠르게 몰고 가 문지기와 일대 일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전반전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골을 놓쳤지만 이번엔 침착하게 문지기 오른쪽으로 차 넣었습니다. 골인! 느낌이 좋았습니다.

지난번 선제골을 넣고도 진 경험을 되살려 방심하지 않고 계속 공격의 고삐를 조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몇 분 뒤 후반에 교체된 왼쪽 날개 공격수가 두번째 골을 가볍게 넣었습니다. 선제골에 이어 두번째 골까지 내준 마포팀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젊은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지

하지만 풍부한 경험을 가진 팀답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열을 가다듬고 특유의 날카로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잘 막아내던 우리 수비가 강하게 공격하는 상대팀에게 밀리는가 싶더니 한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크게 튀어 오른 공이 문지기 키를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까딱하다간 동점을 허용할 지도 모릅니다.

"안 뛸 거야? 좀 더 뛰어!"

중앙선에 공을 갖다 놓고 옆에 있던 나에게 주장이 한마디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쳐서 잠깐 상대의 공격만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래도 젊은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지요.

"아니요. 바로 줘요."

중앙선에서 경기를 시작할 때는 보통 뒤에 있는 우리 선수에게 공을 내어 줍니다. 약속된 플레이를 조금 바꿔 뒤로 패스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는 내게 바로 달라는 소리였습니다. 곧바로 주장이 밀어준 공을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몰다가 뒤에서 달려 들어오던 우리 미드필더에게 연결했습니다. 우리 선수가 강한 탄력으로 찬 공이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이었습니다.

3대 1 승리! 마침내 연패를 안겨주던 마포구 여성축구단을 이겼습니다. 창단 3년만의 일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모두가 감격해 경기가 끝나고도 한동안 운동장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날 마포팀은 주전 선수가 몇 명 빠졌기에 최상의 멤버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코치도 함께 하지 못해서인지 특유의 날카로운 공격과 조직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승부입니다. 시합만 했다 하면 지던 팀에게 이겼다는 승리감은 보통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승리의 여운이 오래 갈 듯합니다.

이날 경기 결과로 마포팀만 만나면 주눅 들던 우리 팀도 이젠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국대회에 처음 출전해 패배한 후 사기가 꺾였던 우리 팀은 다시 예전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되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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