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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장애자인 이영국씨가 새로 앞니를 해 넣고 나오자 달라진 표정에 어쩔줄 몰라 좋아하고 있다.
지제장애자인 이영국씨가 새로 앞니를 해 넣고 나오자 달라진 표정에 어쩔줄 몰라 좋아하고 있다. ⓒ 이국언

그동안 병원 접근마저 어려웠던 의료 사각지대의 장애인들이 오늘은 내집같이 편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병원 접근마저 어려웠던 의료 사각지대의 장애인들이 오늘은 내집같이 편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 이국언
29일 오전. 일요인데도 불구하고 3평 남짓 병원 현관이 사람들로 빽빽하다. 지체장애시설인 '보람의 집' 김진이(42) 간호사는 "오늘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날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이하 '건치 광주전남지부')가 의치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보철 진료를 펼치는 날.

지난 2000년 광주시 광산구에 소재한 지체장애인 시설 6곳을 시작으로 건치 광주전남지부는 그동안 시설 입소자들에 대한 구강검진과 치과진료 사업을 펼쳐왔다. 매주 목요일 오전 광산구 보건소 시설을 빌어, 소속 의사들이 번갈아 가며 진료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초창기엔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주민들도 목요일 오전이면 으레 장애인들을 위한 진료시간으로 널리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평일 자신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물리치고, 의사들은 5년여 동안 그렇게 의료소외층과 인연을 맺어왔다.

"외모에 관심 많지만, 웃는 것 꺼려"

"어금니가 없어 씹지를 못하다보니, 영양불균형으로 자연히 빈혈을 앓기도 합니다. 장애인들 또한 얼마나 외모에 관심이 많은 줄 아세요. 그런데 앞니가 썩어 까맣다 보니, 스스로 웃는 것을 꺼려합니다. 표정까지 더 어두워 보이는 것이죠."

보람의 집 김 간호사가 이날 대동하고 나선 시설 식구들은 모두 6명. 휠체어를 타야하는 식구까지 만만치 않는 길이었지만, 김 간호사의 입가엔 시종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들뜬 마음은 진료에 참여한 의사나 장애인들 모두 마찬가지. 그 동안 충치제거, 발치, 스케일링, 신경치료 등의 진료를 꾸준히 해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결국 씹는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그러자면 몇몇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이를 해 넣는 것이 가장 절실했던 것.

건치 광주전남지부는 29일, 광산구 지체장애인들에 그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았던 의치진료를 시행해 기쁨을 함께 나눴다.
건치 광주전남지부는 29일, 광산구 지체장애인들에 그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았던 의치진료를 시행해 기쁨을 함께 나눴다. ⓒ 이국언
그러나 적게는 수 십 만원에서 많게는 기백 만원까지 드는 비용이 가장 큰 문제. 시설 장애인들에게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 건치 광주전남지부가 그동안 숙원 사업으로 남았던 보철 진료를 올해 핵심 사업으로 결정한 것. 이날 대상자는 보람의 집 6명을 포함해 모두 12명. 비용으로 치자면 1천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된 지 2시간여가 지났을까. 조용하던 병원 로비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쏟아졌다. 첫 번째 환자가 드디어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선 것. 항상 웃는 낯이어서 일명 '살인 미소'로 통하는 이영국(27)씨가 그 환희의 주인공.

말 대신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 포즈로 환호에 답한 이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동안 응접실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까맣게 썩어 보기 싫던 앞니 2개가 어느새 말끔히 사라진 것. 자신도 이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살인 미소, 너 이제 장가가야겠다. 그래, 인물부터 달라 보여…."

박수와 웃음소리가 다시 병원 로비를 울리고 있었다.

진료를 마친 이영국씨가 기쁜 나머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진료를 마친 이영국씨가 기쁜 나머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 이국언

"가슴에 맺힌 무엇, 확 내려가는 기분"

▲ 항상 웃는 낯이어서 일명 '살인 미소'로 통하는 이영국씨의 모처럼 활짝 핀 웃음. 오늘 같은 기분을 알수 있을까.
ⓒ이국언

보람의 집 이오순(49)씨는 국물 이외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지체장애 이외에 빈혈로도 몇 년째 고생하고 있다.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조정민(47)씨는 병원을 이용하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병원은 보통 건물의 2∼3층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시설 한 관계자는 "병원 갔다가 치료도 못하고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자체를 환자들이 힘겨워 한데다, 의사소통이 안되다 보니 시간이 비장애인 보다 몇 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병원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한테 미안해 병원 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시트에 앉는 것도 무서워하던 식구들이 이제는 치과 갈 날만 기다린다"며 "바깥바람도 쐬고, 무엇보다 마음 편히 진료 받을 수 있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막내 이영국씨의 손을 꽉 쥔 보람의 집 김진이 간호사는 "인물이 이렇게 딴 판일 수 있느냐"며 "이제는 가슴에 맺힌 무엇이 확 내려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보건, 국가가 적극 나서야"
전국 실태조사 자료도 없어...전문병원 설립 강구해야

건치 광주전남지부는 진료사업과는 별도로 지난 2000년부터 2년에 한번 꼴로 장애인들에 대한 구강검진, 일종의 통계 조사 사업을 실시해 오고 있다. 2003년엔 특히 광주시 재가 장애인에 대한 구강 실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에 대해서는 60여 가정을 발품을 들여 방문검진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금호(33) 지역보건 사업팀장은 "장애인은 보건복지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특히 구강보건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못해 왔다"며 "국가의 제도적 조치가 뒤따르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건강사회를 위한 전국 치과의사회'가 지난 2001년 실시한 '전국 장애우 구강 보건 통계 조사사업'이 장애우와 관련한 최초의 전국 통계로 보고되고 있다. 그만큼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소홀했던 것.

정성국 원장(37)은 "장애인들에 대한 구강진료는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개입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민간단체의 봉사에 의지하는 방식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고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2000년 구강보건법 제정에 따라 노약자와 어린이에 대한 구강사업은 일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장애인들에게는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금호 지역보건 사업팀장은 장애인의 보건의료와 관련 의료보험 체계의 개편이나 전문병원 설립을 주장한다. 현재 비급여 항목으로 비용부담이 큰 보철진료의 경우 장애등급에 따라 일정부분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의료보험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 아울러 병원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의 특수성을 반영, 지역별 전문병원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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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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