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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햇 감자가 나왔다. 달걀만 했다. 자주감자와 햐얀감자다.
햇 감자가 나왔다. 달걀만 했다. 자주감자와 햐얀감자다. ⓒ 전희식
오늘 감자 꽃을 날렸습니다.
나를 갈구는 재미로 사시는 아랫집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냈습니다.
겨우내 묵은 오줌을 고추밭에 퍼내는 나를
기어이 밭 가장자리로 불러내더니 말하십니다.

"감자 꽃 안 따고 어쩔 셈이여? 내가 작년에도 말 했짜녀?"
"할아버지 말씀 듣고 따려고 그랬죠 뭐."
"그래 그래. 지금 어서 따 줘. 잉?"
"예."

두 번째 리어카에 오줌통을 가득 싣고 가면서
낫을 한 자루 챙겨가서는 감자 꽃을 날렸습니다.
감자 꽃은 달밤에 보면 이쁘기가 처참합니다.
소복같이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흰 감자꽃잎은
서러운 사연을 품은 처녀귀신 같습니다.

감자꽃이 피었다.
감자꽃이 피었다. ⓒ 전희식
낫으로 휙휙 날리면서
동물병원에서 중성화수술을 받던 우리 진돌이 생각도 나고
조선시대 거세당하고 살아야 했던
내시 생각도 나고
아.
같은 신세인 내 '거시기' 생각도 났습니다.
감자 꽃에 씨가 맺히면 감자가 얼마나 부실해진다고
이렇게 모진 짓을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 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감자 한 포기는 꽃을 남겨 두었습니다.
까만 씨가 맺히도록 놔 둘 생각입니다.
모든 감자들이 두 눈을 치 뜨고
응원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너만 믿는다. 부디 부디 소 불알만한 감자를 주렁주렁 맺거라."

3월 6일이었다. 감자눈을 따서 아궁이 재를 꺼내 버무렸다.
3월 6일이었다. 감자눈을 따서 아궁이 재를 꺼내 버무렸다. ⓒ 전희식
이제 막 풀린 땅에 거름을 듬뿍 넣고 감자를 묻었다.
이제 막 풀린 땅에 거름을 듬뿍 넣고 감자를 묻었다. ⓒ 전희식
자주감자는 자주 꽃이 핍니다.
자주꽃이 피었으면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입니다.
그래도 파 봤습니다.
소 먹이고 풀 베던 코흘리개 시절에
감자서리 해 먹던 실력을 발휘해서
순이 제일 좋은 감자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자주감자 한 포기.
하얀감자 한 포기.

첫째 북주기를 하면서 풀을 잡았지만 금세 풀이 자라고 있다.
첫째 북주기를 하면서 풀을 잡았지만 금세 풀이 자라고 있다. ⓒ 전희식
두벌 북주기.
두벌 북주기. ⓒ 전희식
감자 둑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헤비작헤비작 파고 들어가서
흙을 사알살 긁어냈습니다.
새하얀 여자 엉덩이처럼 감자가 한 알
쏘옥 드러났습니다.
"아니 벌써?"
혹시나 했는데 달걀만한 감자알이 있었습니다.
영농일지를 보니 3월 6일 날 감자를 심었습니다.
석 달 열흘.
꼭 100일이면 감자를 캐는 법인데
벌써 그렇게 되어 갑니다.
캄캄한 땅 속에서 달력은 언제 보고
저렇게 여물었는지
어리둥절합니다.

세번째 풀매기. 더 이상 북주기는 안 하고 풀만 맸다.
세번째 풀매기. 더 이상 북주기는 안 하고 풀만 맸다. ⓒ 전희식
자잘한 감자덩이들은
다시 흙으로 감쪽같이 묻었습니다.
자주감자는 발그레한 새악시 얼굴로 나왔습니다.
자꾸 자꾸 감자알을 빼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집에 와서 왕소금을 뿌리고 삶았습니다.
나는 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지금 단식중이기 때문입니다.
첫 북주기
두벌 북주기
세벌 풀매기
고단했던 노동이 아득한 그리움이 되어
감자 찌는 냄새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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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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