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자작나무 숲 속의 그림 같은 미술관!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을까? 세계 어디에 자랑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지난 겨울에 잠시 들러본 미술관 '자작나무 숲'을,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에 다시 찾았다. 겨울에 봤을 때는 속살을 다 내보인 앙상한 자작나무로 좀 을씨년스러웠는데, 초여름에 찾은 이곳은 자작나무 녹음이 마냥 드리워 내 눈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보였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442번 지방도를 타고 횡성 쪽으로 달리면 최근 토지 세트장으로 유명해진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별칭 밤벼루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 건너편이 둑실마을로 미술관 '자작나무 숲' 안내 팻말이 막 익어가는 보리밭둑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
둑실마을을 지나면 갑자기 비포장 흙길이 나온다. 요즘 웬만한 산골마을에도 다 포장이 돼 있는데 웬일일까? 나중에야 그 의문이 풀렸는데 미술관 '자작나무 숲'측이 군에다가 요청을 해서 흙길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개발은 편리함과 부(富)를 가져다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오염시킨다. 자잘한 자갈이 깔린 흙길을 1km 남짓 지나자 하얀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오고 그 숲 사이로 그림 같은 미술관이 보였다.
깊은 산 속의 원추리 꽃처럼 미소로 반겨 맞는 미술관 주인 원종호(52·사진작가)씨와 악수만 나누고 나는 미술관 안팎의 조경과 언저리 풍경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 이 외진 강원도 산골에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을 줄이야.
사진 촬영을 끝낸 뒤 아담하고 산뜻한 미술관으로 들어가서 전시중인 '선' 화우회전을 둘러보고 나오자 원종호씨가 자작나무 숲 그늘 벤치로 안내했다. 미술관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범상을 뛰어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녹색 정원이었다.
자작나무와의 인연
- 언제 문을 여셨습니까?
"2004년 5월 29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꼭 1년이 지났군요."
- 흔히들 우리나라 시골은 '문화의 사각지대'라고들 하는데 이런 훌륭한 미술관을 여셨는데 운영이 됩니까?
"운영이 안 되지요. 먼 훗날을 내다보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만든 겁니다. 오래 전부터 조상에게 물려받은 이 땅을 잘 가꾸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운영이 될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미술관 언저리를 에워싼 자작나무 숲을 보자 필자가 1999년, 2004년 두 차례 백두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갓길의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그 때 받은 자작나무 숲에 대한 감동을 얘기하자 원종호씨도 1992년 백두산을 오르면서 백두산과 천지보다 자작나무에 더 반해서 사진을 엄청 찍었다고 하면서, 귀국한 다음 해부터 당신 산에다가 자작나무 묘목을 구해다 심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이만큼 자랐다. 아마도 그때부터 '자작나무 숲'미술관을 지을 꿈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그의 자작나무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서 당신 작품 세계에 가장 많이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전시회 안내 화보 4점 가운데 2점이 자작나무가 소재였다.
- 화가들에게 대관을 하고 있으며 입장료를 받는지요.
"물론 대관을 하고 있는데 여태까지는 초대전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받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미술관 입장료는 받지 않습니다. 이 시골에 대관료를 받는다면 어느 분이 올 것이며, 어느 미술 애호가들이 먼 길을 오겠습니까? 솔직히 그래서 운영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활발하게 대관이 이어지고 전시도 연중 내내 주욱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 이 넓은 미술관을 어떻게 관리하시는지요? 관리인이 있습니까?
"저 혼자하고 있어요.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기계(예초기나 톱)를 들고 온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 베고 풀 뽑고 쉴 틈 없이 일하지요. 지금으로서는 관리인을 둘 형편이 도저히 안 됩니다. 사실은 제가 이 마을 태생으로 한때 목장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풀 베는 일에는 누구 못지않게 능숙합니다. 아마 그래서 이 미술관을 이나마 운영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벌써 문 닫았을 겁니다."
미술관에 딸린 임야가 일만 평이 넘는다고 한다. 그걸 당신 혼자서 가꾼다는데 구석구석 오밀조밀하게 아주 잘 정돈이 되고, 여러 화초들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다투어 피어 있다. 잔디밭에는 잡초 하나 없다. 일백 평 남짓한 텃밭에도 필자는 쩔쩔 매고 있는데 혼자서 이 넓은 미술관을 관리하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렵지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타고나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만한 미술관을 운영하자면 대가를 치러야지요. 나중에 수입이 좀 생기면 관리인도 둘 생각입니다. 제가 하고 싶어했던 일이라서 팔자라고 여겨요."
그러면서 그는 젊은 날부터 산, 특히 치악산을 무척 좋아했다면서 산을 주제로 한 사진작품집을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는 상설 '치악관'도 세워서 지역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노래에다 가까운 곳의 멧새들의 지저귐까지 소나기처럼 귓전을 때렸다.
덧붙이는 글 | 미술관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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