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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의 주체인 당(黨)·정(政)·청(靑)이 '3위일체'를 이뤄도 난맥상을 풀어가기가 어려운데 4·30 재보선 완패에서부터, 유전 개발사업 의혹 그리고 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에 이르기까지 당·정·청 3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네 탓이오'를 외치고 있다.

특히 이해찬 국무총리가 2일 한 조찬강연에서 "지금이 이른바 (대통령) 측근이나 사조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대통령 측근이나 사조직의 발호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자, 당내 서열 2인자인 염동연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총리가 경거망동하고,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들이받는 '넘버 투 전쟁'은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이처럼 당·정·청이 중구난방으로 '네탓이오'를 외치는 것은 현재의 위기의 본질에 대한 해석과 해법이 각기 다른 탓이다.

'당·정 분리 체제 수정론'과 '청와대 인적 쇄신론'

5월말 열린우리당 무주 워크숍에서부터 촉발된 당측의 위기의식의 본질은 이른바 '당·정 분리 체제 수정론'과 '청와대 인적 쇄신론'으로 요약된다.

당·정 분리체제 수정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표방한 당·정 분리 원칙의 방향은 맞지만, 현실에 맞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정 분리체제 수정론의 이면에는 당·청은 '분리'되어야 하지만 당·정은 더 긴밀히 '한몸'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당·정·청간 정책조율 시스템의 불협화음과 정부와 청와대의 정책결정 과정에 당의 정무적 판단이 제때 충실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보다 한발 더 나간 청와대 인적 쇄신론의 핵심은 청와대 참모들의 아마추어리즘과 이념과잉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온 만큼 이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공사가 유전 사업을 하고 도로공사가 행담도 사업을 하는 등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것 아니냐"며 "전문가에게 행정을 맡겨야 한다"(홍재형 의원)고 질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급기야는 정장선 의원이 4일 대통령 산하 위원회에 대해 "위원회가 정책을 만들면 부처가 실행한다는 이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에 근거한 정책추진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또 중도파인 안영근 의원도 한 방송에 출연해 "월권을 하거나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벗어난 사람에게 징계성 문책이 있어야 한다"며 "남은 (집권) 후반기를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대통령의 용단이 필요하다"고 노 대통령에게 인적쇄신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정부측의 인식은 당측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해찬 총리가 행담도 개발의혹에 대해 "동북아시대위원회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추천서를 써 준 것은 본분이 아니고 그래서 의혹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기회에 대통령 직속기구 활동에 대해서도 여당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는 당측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한 것이 그것이다.

당의 '인적 쇄신' 요구에 청와대는 '무대응이 상책'

이에 비해 청와대는 정찬용 전 인사수석과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등의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위원회를 앞세운 국정운영 시스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12개 국정과제위원회의 수장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청와대브리핑'에서 "만만한 게 위원회냐"며 "오히려 위원회가 희망"이라고 반발한 것이나, 김우식 비서실장이 청와대 직원 월례조회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모두 청와대 탓으로 돌리는 게 현실"이라고 개탄한 것도 그런 상황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23 대 0'으로 4·30 완패한 재보선 당시에도 당·정 분리 원칙을 들어 일절 반응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일관되게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공식창구인 김만수 대변인은 당쪽의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좀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청와대의 이런 무대응 기조에는 당·정 갈등 논란이 행담도 개발의혹 등 여권에 불리한 정국상황이 계속 전개되면서 언론의 보도메커니즘을 통해 부풀려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청와대가 입을 열면 열수록 언론보도를 통해 갈등이 증폭될 뿐이라는 판단에서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대응 기조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그런 요구가 여당 워크숍에서 몇몇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일 뿐이지 여당 지도부로부터 당의 공식 의견이 청와대에 전달되거나 논의된 바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도 "당정이 워크숍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면서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정이 나아가는 큰 방향과는 관계가 없으며 개인 생각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며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어찌 보면 당정 워크숍 때 쏟아진 의원들의 발언은 '불만 해소' 차원일 뿐 당의 공식 의견으로 전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당·청 갈등은 '젖 떼기'가 아직 안끝났기 때문?

청와대 일부에서는 오히려 당·정관계를 갈등양상으로 보는 시각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 상황은 당정분리란 새로운 시스템 아래에서 당이 자생력을 갖춰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희상 의장이 청와대 비서실장 때부터 자주 피력해온 '젖 떼기(이유기)가 아직 안끝났다'는 논리의 연장선이다.

즉, 여당 내부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사안에 청와대가 끼어들어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보다 시간과 여유를 갖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에서는 당·정분리 원칙의 변경에 대해 일절 검토하거나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이 김만수 대변인의 공식 멘트이다.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서는 '뜨악'해 하면서도 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청와대 정무파트의 한 비서관은 대뜸 "뻔히 아시는 분이 뭘 그런 것을 물어보냐"며 "정책적인 것을 가지고 물으면 몰라도 (당·청간에) 싸움 붙이려고 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이 비서관은 "당·청이 서로 잘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당에서 잘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청와대 일부 수석은 '당 우선 쇄신론'을 제기했다. "청와대에 인적 쇄신을 요구하기 전에 당이 먼저 쇄신해, 국민정당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 급하다"면서 "집권당으로서, 정책정당으로서 대안을 가지고 당이 먼저 할 일을 한 뒤, 정부나 청와대의 인적구성을 상의하겠다고 하는 것이 선후에 맞다"고 충고했다.

그런 가운데 윤태영 대통령 제1부속실장은 5일 청와대홈페이지에 긴급 기고한 '국정일기'를 통해 최근의 정국 상황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심경의 일단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당쪽의 문제제기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지 않는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의중을 윤태영 부속실장이 '대필'하는 형식을 통해 이른바 '노심'을 전한 것이다.

윤 실장은 이 글에서 "바야흐로 도덕성만이 대통령 권력의 기반이 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라며 "이것은 어떤 힘으로도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현재의 위기는 당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젖떼기'론과 일맥상통한다.

윤태영 부속실장이 '국정일기' 통해서 전한 대통령의 의중

윤 실장은 당·청 관계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당도 지배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당직임명권도, 공천권도, 계보를 꾸릴만한 돈도, 계보로 불릴 만한 의원들의 집합도 없다"면서 "이렇듯 대통령은 권력 유지에 사용되던, 그러나 변화된 대통령직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권력들을 모두 손에서 놓았다"고 노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

그러면서 윤 실장은 "어쩌면 공직 인사권만이 대통령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권한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집권여당이 이런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고 '대통령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권한'인 공직 인사권마저 흔들면 어떡하냐는 불만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겉으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당의 요구를 검토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지난 2일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을 국가정보원장으로 내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주망을 고비로 후보군을 3배수로 늘리고 인사시기도 1주일 가량 늦추면서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또 청와대에서는 당정 분리체제 수정론을 일부 받아들여 김병준 정책실장, 이강철 시민사회수석, 문재인 민정수석, 조기숙 홍보수석 등이 참여하는 비공식 '정무회의'를 가동해, 당·정협의의 방식과 내용을 보완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일부에서는 당·청간의 불신과 의사소통의 부재가 문제의 발단이라는 자성론도 일고 있다.

청와대 정무파트의 한 비서관은 "청와대와 당 사이에 공식적인 채널이 없다보니,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당이 답답해 하고,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솔직히 청와대와 정부에는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108 번뇌'라는 불신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드러내 놓고 얘기은 안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일부 '함량미달'의 의원들에 대해 "누구 때문에 '배지'를 달았는데 청와대와 정부를 비판하고 발목을 잡느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도 "솔직히 당내에는 노 대통령에게 아무리 얘기해 봤자 고집 센 노 대통령이 당의 의견을 안듣는다는 선입견이 만연해 있다"면서 "이처럼 의사소통의 부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온 방관론이 위기를 키웠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것이 당·청 관계의 신뢰 복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태영 실장은 "대통령은 요즘 부쩍 '통합의 위기'를 말한다"고 전제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는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다"면서 최근 정국상황에 대해 언급한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이렇게 전했다.

"정치는 물과 같다. 일직선으로 가는 강을 아직 못 보았다. 갈지자로 바다를 향해 간다. 정치는 강의 흐름과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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