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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박정희 표지
만화 박정희 표지 ⓒ 시대의 창
'죄가 있으나 공이 있으니 봐주자'는 논리가 있다. 한마디로 잘못은 했지만 잘한 것이 있으니 없는 셈 하자는 말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논리가 꽤나 오랫동안 써먹히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맞는 논리인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재판이 열렸을 때 한국과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마루타부대로 잘 알려진 731부대의 지휘관, 속칭 '인간백정'으로 통하는 이시이 지로 중장이 무죄를 받은 것이다. 누구도 그가 무죄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승전국들은 그가 '충분한' 공이 있다는 이유로 죄를 없는 셈 했다.

그때 세계는 그것을 두고 무엇이라고 했던가. 아니, 세계까지 볼 것도 없이 한반도에서 마루타부대의 악명을 누누이 들었던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던가. 강자의 논리이자 야만인의 행태라고 했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것은 분명 야만인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행태였다.

그런데 야만인의 시대에 야만인의 논리는 흥미로운 속성을 갖고 있다. 실상 그 논리의 '우위'에 속하지 않고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음에도, 많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그 우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범재판에서 한국인들은 당시 우위에 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같은 논리라도 우위에 속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야만의 논리를 '합리적'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요즘 경제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런 논리가 자주 나오는 것도 그럴 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박정희가 그 대상의 선두주자다. 역사책 어디를 살펴봐도 박정희 만큼 야만의 논리가 통용되는 경우도 없다.

박정희가 누구인가. 한국에서 역사책을 한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주위 사람들과 현대사에 관해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 것이다. 박정희 만큼 한국 근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도 없다. 또한 박정희 만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역사 속의 인물도 찾기 힘들다.

사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박정희 스스로가 자신과 동일시했던 성웅 이순신처럼 그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불행하게도 국가의 지도자였던 그는 영웅과 기회주의자 사이에서 그 평가가 논쟁 중에 있다.

<만화 박정희>는 그러한 박정희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책이다.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살 수 있게 밑바탕을 만든 경제성장의 지도자'라는 평가와 '한국이 오늘날 이토록 황폐화된 땅덩어리가 되도록 만든 기회주의자이자 독재자'라는 평가의 부딪힘을 끝내려는 것이다. 동시에 박정희와 관련된 야만의 논리를 폭로하며 박정희를 바라보고 추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제대로 된 불꽃을 지피려는 책이기도 하다.

책은 '영웅'과 '기회주의자' 사이에서 박정희가 기회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제껏 등장했던, 뻔하고 뻔한 양비론의 가면을 걷어치우고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내민 것이다. <만화 박정희>의 발걸음은 상상 이상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아니라 시쳇말로 '맞아죽을' 각오하고 할 말 못할 말을 다하고 있다. '인권탄압'이나 '부정부패'라고 죄를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또한 개인의 야욕을 위해 나라의 많은 것들을 팔아버린 '독재자'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친일행각, 5. 16 군사정변, 김대중 암살 시도, 인혁당 사건, 굴욕적인 한일협정, 독재를 위한 유신 선포,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받은 돈의 상당수를 자신의 지갑으로 집어넣는 등의 온갖 부정부패는 그야말로 그가 보여준 행태들은 끝이 없다. 과연 누가 이런 그를 존경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소위 존경하는 인물 역대 랭킹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연코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크다. 그렇다. 박정희는 분명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것이 전체의 경제 성장이었을까. 기득권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경제 성장이었다. 반면에 민생 경제는 파탄 났다. 파탄 난 정도가 아니라 '쪽박'을 찼다. IMF가 발생한 원인이 박정희의 무리한 경제정책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으뜸으로 친다. 일본을 상대로 기가 막힌 액수로 임의대로 과거청산을 해버렸으며 친일행각으로 독립군들을 쫓아다녔음에도 '경제 성장'을 대며 말을 얼버무린다.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 다 그 덕분인데 오히려 왜 난리를 치냐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맞는 것일까. 설사 박정희가 진실로 기반을 탄탄하게 만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더라도 그 논리는 엄연한 야만의 논리다. <만화 박정희>는 그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박정희로 인해 목숨을 잃고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안타깝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야만의 논리인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서, 죄가 있는 만큼 공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덮어두려 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야만의 논리가 아닌가. 또한 참으로 무서운 속성이 아닌가. 전범재판의 이시이 지로 중장에 무죄를 선고했던 이들은 분명 희생된 이들은 안타깝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을 이야기하며 죄를 봐주자고 말했다. 아마 그 피해자가 아닌 국가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터이다. 안타까움을 토로하고는 덮어두려 했을 것이다. 단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의 박정희 문제처럼.

<만화 박정희 2권>에서 야당의원이 영등포 모 군부대에서 고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그 의원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내가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라고. 그 시대를 인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가. 독재자의 야심 때문에 죽어가고 핍박받던 그들에게 공과 죄를 운운하며 인간의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그 야만의 시대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무모함을 지닌 자는 없을 터이다.

<만화 박정희>는 야만의 논리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그 야만의 논리의 속성에 젖어버린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기 위한 책이다. 그리고 불꽃을 지피려고 한다. 찬물로 씻어내고 새로운 불꽃을 지피려고 한다. 야만의 시대를 끄고, 인간의 시대를 피우기 위한 불꽃이다. 그것을 어찌 꺼버릴 수 있을까.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마땅한 것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만화 박정희 1~2 세트 - 전2권 - 왜곡된 신화, 영웅인가 기회주의자인가

백무현 지음, 박순찬 그림, 민족문제연구소.뉴스툰 기획, 시대의창(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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