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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무력을 통한 싸움 뿐만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싸움도 치열하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역전쟁으로, 이 때문에 우리 농민들의 시름은 끝 간 데 없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현상을 막기 위한 기후변화협약'도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여기에 더하여 또 하나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건 바로 '문화다양성협약'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유네스코(UNESCO) '문화다양성 협약'은, 신자유주의 통상정책에 의해 훼손될 위험에 놓여 있는 각국의 문화콘텐츠를 강제력을 지닌 국제협약으로 보호하자며 국제사회가 약속을 하는 것이다.

2004년 7월 15일 유네스코 이사회가 협약 초안을 발표하였으며, 각 회원국들은 2004년 11월 15일까지 자국의 입장과 수정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두 번의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협약은 오는 10월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이 싸움에서 쉽게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은 세계 나라들의 이 '문화다양성협약'을 맺기 위한 밀고 당기는 샅바 싸움에서 한쪽에서는 "문화상품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유경쟁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 한쪽에선 "문화상품은 한 지역, 민족, 나라의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외친다.

외교통상부와 국회 문화관광상임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국내 16개 문화단체로 구성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세문연)에 따르면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이 발표된 뒤 지금까지 두 차례 유네스코 회의를 진행한 결과 유럽연합과 세계 대다수의 나라들이 이 협약의 효력을 다른 국제협약보다 우위에 놓자는, 즉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반해서 미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 협약의 효력이 다른 국제협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즉 상징적인 의미에 그치게 하자는 의견을 내 양쪽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 중 24개국 정부인사로 구성된 이 협약 기초위원회의 아시아 참가국인 일본, 중국, 인도, 한국 4개국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한국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법적강제력을 두고 상반된 입장을 보면 대체로 전통문화가 별로인 쪽은 반대를, 전통문화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는 나라는 찬성을 하고 있다고 보면 무난하다. 자기 나라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내보이기에 당당한 나라들이야 당연히 법적강제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처지는 어떨까? 정치, 군사, 경제 어느 것이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문화만 놓고 본다면 그 어떤 나라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처지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어정쩡한 자세로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드러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현상을 막기 위한 기후변화협약이 미국의 반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두렵다고 강변하지만 실제론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일이든 설득력이 있다면 어느 누가 반대하여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만 옳은 일일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미국의 눈치를 보는 행위는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국방 분야에서는 아직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많은 대미수출을 해야 하는 무역부분에서도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에서만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정부는 미국만 만나면 꼬리를 내린다. 그건 스크린쿼터(자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 제도를 두고도 미국과의 싸움에서 정부가 저자세를 유지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다.

정부 관리들은 누구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이 무서워 또는 미국에 아부하기 위해 조국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문화다양성협약'에 법적강제력을 부여하자고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정부 관리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충복임을 보여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말로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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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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