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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妓祠 <편집자주>
말목장터 봉기 현장을 지켜보았던 감나무는 지난 2003년 태풍에 뿌리 채 뽑혀 그 자리를 떠났고(황토재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 로비에 보존 처리되어 서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새로 심은 감나무 하나가 서 있다.

유홍준의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그 감나무 옆에는 동학농민전쟁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정자, 그것도 삼강오륜을 의미하는 삼오정이 있다 했으나 그 비판 때문에 허물어 버린 것인지 지금은 없었다. 그 감나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말목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따로 하나 서 있기는 했지만 사진에서 본 그 정자는 아니었다.

그 감나무 앞에 서 있는 내 눈에 어지럽게 걸려 있는 플래카드가 아우성치며 들어왔다. 현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이평면 사무소 마당에 세 개나 걸려있어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민들의 아우성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이 보였다. 나라 밖 사정으로 농민들이 휘둘리고 있는 현실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 면사무소 마당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또 다른 아우성을 담은 플래카드 하나가 걸려 있었다. 녹두장군 피체유지비와 관련해 바로 옆의 순창군수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그것이다. 이웃사촌이라더니 여기서는 이웃은 원수인가? 농민군들에게 순창인이 어디 있고 정읍인이 어디 있었다고?

어찌된 사연인지 그 싸움을 잠간만 생중계해 보자. 쪼가 사투리가 껄적찌근 하더라도 갱상도 출신인 통역사라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보더라고. '녹두장군 전봉준이 순창 쌍치 피노마을에서 현상금에 눈이 먼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요로코롬만 알려져 있으니 속사정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 시러배 아들놈 김경천이 우리 순창 사람인 줄 알게 아니건능가? 하지만 우리 순창 피노마을 사람들은 녹두장군을 숨겨주었단 말이시.

너거들도 잘 알다시피 김경천은 지금의 정읍 땅 고부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정읍 사람이라고 쓰는 게 당연한 거지. 무에가 문제란 말시? 그라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디 정읍시 이평면에 세워진 녹두장군의 허묘에는 '순창 피노에 거하는 김경천'으로 쓰여있으니 이거야 말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게 아닌가 말이여.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릴랑 그만두고 싸게싸게 자네들이나 고치랑깨.

오매 무식한 잡것들. 갑오농민정쟁 당시에는 고부군, 태인군, 정읍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거 정도는 너거들도 잘 알것제? 그라고 그 썩을 넘의 김경천은 고부군 달천 출신잉께 '고부 달천 출신'이라고 써야지 왜 멀쩡한 정읍을 들먹인단 말시."

역사적 인물, '우리고장 사람'이라고 우길 필요 있을까

우리 조상 발해를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얏다고 '중국인' 요로코롬 쓰면 말이 되것능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싹 까 뭉개불고 '정읍인' 그것도 강조 표시까정 해가면서 정읍인 요로코롬 써불면 우리 정읍사람 무자게 섭하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정읍이 민족적 영웅을 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영웅을 팔아먹는 싸가지 없는 잡것들이 사는 고장으로 보일게 아닌가 말이여. 그라니 좋게 말할 때 얼릉 고부군 달천 사람으로 고치쇼 잉~."

원래 부엌에 가서 들으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서 들으면 시어미 말이 옳다지만 듣고 보니 순창 사람 말도 옳고 정읍 사람 말도 옳네. 순창과 정읍 나란히 피체비와 허묘비에 '고부 달천 출신'으로 고치면 되겠구먼. 녹두장군이 꿈꾸던 대동세상은 이웃사촌끼리 쌈박질하는 세상은 절대 아닐텡께.

역사적 인물이나 소설 속 주인공을 놓고 서로 '우리고장 사람'이라고 연고를 주장하며 대립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잘난 내 고장 출신 인사를 드러내고 모시겠다는 데야 시비 걸 일이 아니지마는 그게 지나쳐 지역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더 심하면 역사 왜곡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북 익산시와 충남 부여군은 백제 무왕의 어릴적 이름인 '서동'을 놓고 치열한 소유권 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익산시는 서동 선발전, 서동왕자-선화공주 혼례식, 무왕 즉위식 등의 행사를 중심으로 20여 년간 '마한민속예술제'를 치르고 있다. 이에 맞서 부여군은 2003년부터 궁남지 연꽃축제를 열고 서동을 주제로 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익산시는 서동이 익산 출신의 왕족인데다 한때 익산으로 천도하려고 했다며 작년부터는 축제 명칭을 아예 '서동축제'로 바꾸었다. 이에 부여군은 뒷날 무왕이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긴 점 등을 들어 서동요의 상징물 설치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하며 맞서고 있다.

충북도와 대전시는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다. 충북도와 충북도교육청이 단재교육원을 설립하고 8년 전 단재문화예술제전 개최에 이어 단재교육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자 대전시는 선생의 출생지가 대전 대덕이라며 왜 충북에서 이 같은 행사를 추진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충북도는 선생이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3세부터 18세까지 자랐음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치졸한 싸움을 벌이는 지자체들은 먼저 알아야 한다. 그 역사적 인물은 자기들 고장만의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 고장의 위인으로 좁혀놓는 순간, 그의 위대성은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한제국의 단재고 백제의 무왕이어야지 대전만의 단재요 장수만의 논개여야 되겠는가?

진주시-장수군 '논개' 대타협, 함께 호국정신 기리기로

이런 점에서 진주와 장수 간의 논개를 둘러싼 대타협은 매우 모범적이다. 수 년 동안 논개를 품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경남 진주시(숨진 곳)와 전북 장수군(태어난 곳)은 최근 접점을 찾았다. 한겨레신문 기사(2004. 4. 5)에 따르면 장수군 관계자는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양 자치단체가 함께 논개의 호국 정신을 기리는 쪽으로 묵시적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논개는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한때 장수 현감이었던 최경희의 후실이 되었으며 진주성 함락 후 승전축하연에 (기생으로 가장해?) 참석, 왜장을 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로 알려져 있다. 논개가 기생이냐 아니냐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촉석루 경내 서편에 그녀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의기사(義妓祠)인 걸 보면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기생인 모양이다.

곳곳에서 심심찮게 이런 지역이기주의 내지는 소아적 소유주의에 빠진 공무원들의 시각을 만난다. 지자체들이 발행하는 관광지도 같은 것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지역 경계선을 넘고 나면 백지다. 언뜻 본 지도는 마치 섬 같다. 김제에서 정읍으로 정읍에서 부안으로 부안에서 고창으로, 여행객의 여정은 강물처럼 이어지건만 관광객의 그런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관광안내도는 토막토막 부러져 있다. 길도 끊어지고 유적지도 끊어지고, 우리가 왜 마누라 고쟁이 판 돈 같은 돈으로 남의 지역 홍보까지 해주어야 하는가? 아마 그런 생각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담양 시가문화권 유적지에도 재 너머 물염정은 안나오지만 계산풍류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독수정은 나온다.

충무공 유적들은 남해안 전역에 널려 있고 차밭이나 차와 관련한 유적들은 경상남도 하동에서 보성, 영암, 해남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두루 걸쳐 있지마는 모두 자기 지역의 차와 유적만 이야기한다. 전체를 아우르는 일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중앙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잔소리의 핵심은 조금만 더 넓게 보자. 인근 지역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관용적이자는 말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애인은 외눈박이 사랑이 좋지마는 역사는 두눈박이 사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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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공은 광고크리에이티브(이론 & 실제)이구요 광고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나 여행 그리고 전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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