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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산 잔디 깎기 기계가 두세 번도 채 못 쓰고 고장이 나버렸다. 미국 회사가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제품인데 품질이 형편없다. 내 어렸을 적에는 '미제는 똥도 좋다더냐?'는 말이 유행이었을 만큼 미제는 품질이 좋은 제품의 상징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고쳐 보려고 기계 공구 전문상가를 갔다. 보더니 시내 기계공구상 골목의 어느 집을 가란다. 차를 몰고 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런데 보자 말자 '여기서는 고칠 수도 없고 돈도 많이 드니까 산 데서 AS(애프터서비스)를 받으라'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고는 돌아서 버린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와 잔디 깎기 기계를 샀던 경매 사이트로 전화를 했더니 녹음기가 돌아간다. 그리고 회원님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란다. 눌렀더니 또 뭐는 몇 번, 뭐는 몇 번을 누르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그런데 다시 들어봐도 내가 물어보려는 것은 해당되는 번호가 없다. 가장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 번호를 눌렀더니 신호음이 간다. 그러나 음악만 나올 뿐 받지 않는다. 지금 걸려온 전화가 많아서 차례로 전화를 받으니까 기다리라는 멘트만 나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녹음기만 돌 뿐 전화 받는 사람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건다. 조금 전의 그 지루하고도 복잡한 절차를 또 다시 다 밟은 다음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녹음기 소리뿐이었다. 정말 화가 난다. 언제 통화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계음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이의 기분을 이들은 짐작이나 할까?

전에도 몇 번 전화한 적이 있는데 늘 이랬다. 아마 전화 거는 사람이 지쳐 떨어져서 전화하지 않게 하는 것인지…. 전에도 늘 이랬다. 15분쯤 기다렸을까? 부글부글 끓는다. 나중에는 '언제나 받는지 어디 한번 해보자' 오기로 기다린다.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하기가 힘드냐'고 짜증을 냈더니 또 '미안하다'는 말만 되돌아 왔다.

시간 낭비도 낭비지만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통화료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그 통화요금은 당연히 거는 사람 몫이다. 회사는 소비자들이 전화했을 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왜? 회사가 아쉬운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통화료를 회사가 부담을 한다면 지금처럼 소비자의 불만을 사가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주 나쁜 회사다.

고객 감동의 시대라는데 고객 감동은 고사하고 분노하지나 않게 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품질이나 서비스 개선 노력은 외면하면서 국민들의 얄팍한 애국심에나 기대는 회사들. 그런 회사들은 마땅히 망해야 한다.

사실 전화 받는 아가씨가 무슨 죄란 말인가? 그들도 참 힘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애꿎은 그녀에게 화풀이를 할 것인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전화 응대를 해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빨리 받지 않는다고 욕을 먹을 테고…. 그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결국 택배로 AS를 보내기로 했다. 동네 우체국에 전화를 했더니 택배를 한단다. 거기서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해서 보내려고 하니 박스 크기가 가장 큰 것의 가로 규격이 얼마나 되냐니까 80cm란다. 80cm면 들어갈 수 있다. 주차가 불편한 동네 우체국을 제쳐두고 이웃 동네 우체국으로 갔다. 고장난 잔디 깎기 기계를 들고 들어가 이걸 포장해 택배로 보내려고 한다고 했더니 이건 깨질 위험성이 있어서 우체국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단다. 이거 받을 때도 택배로 받은 것인데 우체국에서는 택배로 받지 않겠다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랴.

그럼 포장용 박스 가장 큰 것으로 달라고 했더니 꺼내다 준다. 넣어 보니까 적다. 그리고 보니까 80센티에 훨씬 못 미친다. 더 큰 것을 달랬더니 이게 제일 큰 것이란다. 아니 조금 전에 전화로 물어 봤을 때 80cm라고 하지 않았냐니까, 가로 세로 80cm를 말하는 것이란다. 가로 세로 높이가 80cm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멀리까지 차를 몰고 간 것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전화로 확인까지 하고 온 일이 이러니 화가 났다.

민간택배회사들이 취급하는 물건도 우체국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것은 자기들이 쉽고 편한 물건만 취급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면서 민간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하겠다는 것인지…. 가로 세로 80cm라는 말을 일반 소비자들이 어떻게 알아들을 것인가?

마케팅 지향적인 사고란 한마디로 소비자 지향의 사고다. 파는 내 입장이 아니라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 오후에 경험한 불편들을 경험하면서 어디서도 그러한 소비자 지향의 사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철저하게 회사, 또는 직원 중심의 사고요 언어요 판단이었다. 이런 회사나 기관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마땅하다. 제품을 대충 만들어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는 회사, 소비자의 불편을 강요하는 회사, 자기들 편할 대로 일하는 기관….

고치러 보낸 잔디 깎기 기계가 얼마나 잘 고쳐서 빨리 되돌아올지 두고 볼 일이다. 사실 지금은 AS도 늦다. AS란 이름 그대로 제품에 문제가 생기고 난 후에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지금은 AS의 시대가 아니라 BS, Before Service의 시대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개선하고 조치를 취해 소비자 불만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으면 신속하게 그리고 감동할만한 수준으로 처리해 줌으로써 문제 때문에 발생한 소비자의 불만을 제거해야만 한다. 문제를 곧 기회로 인식하고 처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전화를 하면 요즈음은 많은 회사들이 자동응답시스템이 돌아간다. 녹음된 목소리가 앵무새처럼 반복되면서 계속 전화기 버튼을 누르게 하는…. 비용절감에 아마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소비자 신뢰나 쌓여가는 소비자 불만이 그 아끼는 몇 푼의 돈 보다 훨씬 더 크다고 나는 믿고 있다. Penny wise and pound foolish.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라고 나는 믿는다. 소비자들은 기계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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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공은 광고크리에이티브(이론 & 실제)이구요 광고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나 여행 그리고 전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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