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월 1일부터 11일까지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조금 이른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4번 정도에 걸쳐 여행기로 써내려가 볼까 합니다...기자 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어느 카드 광고 카피처럼 마음 푹 놓아버리고 떠나버릴 수 있는 기회는 일년 중에도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여름휴가를 이용하거나 설이나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열흘씩이나 해외로 다녀온다는 게 직장인에게는 큰 결심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결심으로 떠나온 첫번째 기착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도 등재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입니다.

사실 앙코르 와트라는 이름이 대표가 되었지만 사실 그 지역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사원들에 모두 이름들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도 단연 아름다움이 손꼽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냥 앙코르 와트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합니다.

▲ 멀리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입니다. 이제부터 신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정상혁
▲ 한쪽 벽에 기대어 앙코르 와트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
ⓒ 정상혁
보통은 40달러 하는 3일짜리 관람권으로 많이들 보고 가는 편인데 일정이 허락하지 않아 저는 하루만에 돌아봐야 했습니다.

하루건 사흘이건 간에 이 넓은 지역의 모든 유적들을 제대로 돌아보기 힘들 것은 분명하거니와 그 유적들에 얽힌 사연까지 새기려면 몇 달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를 만큼 이곳은 정말 넓고도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보통 관람은 이른 아침에 시작되기 마련인데 조금이라도 서늘할 때 출발해야 덜 지치면서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년 동안 풍파를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수많은 돌조각들에게도 열대의 내리쬐는 태양은 뜨겁기만한데 뙤약볕 아래서 발품 팔아 돌아다니려면 어지간한 지구력이 없이는 너무나 힘든 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앙코르 와트와 주변 사원들은 캄보디아의 여러 왕들이 지은 것인데 그 기반에는 힌두교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있습니다. 힌두교의 신들 이야기인 이 두 서사시는 사원 곳곳에 돋을새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긴 회랑을 따라 벽면에 부조로 새겨진 라마야나의 전투 이야기는 라마야나를 직접 읽어보지 않아도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엿볼 수 있도록 여러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 회랑 벽의 좌우에 각각 대전투 장면이 자세히 묘사된 벽화가 있습니다. (벽화 중 일부)
ⓒ 정상혁
우리네 산사가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지어지는 것처럼 이곳의 모든 사원들도 힌두교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모든 사원의 중앙에는 가장 높은 탑이 세워져 있는데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메루산(또는 수미산)이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신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이곳 사원들은 한결같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는 계단을 이용하여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신에게 이르는 길은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계단의 폭은 좁고 길이는 높아 기듯이 계단 가까이로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 앙코르 와트 왼쪽 탑. 각 계단은 발 하나의 폭의 너비밖에 되지 않습니다.
ⓒ 정상혁
회랑의 바깥쪽 벽에도 빠짐없이 조각들이 등장하는데 우리 사찰의 관세음보살상 뺨칠 정도의 관능미로 표현된 여신들이 넘쳐나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보살상은 통통한 편인데 이곳은 관능미가 넘쳐 흐릅니다.
ⓒ 정상혁
▲ 다리를 틀고 손은 합장한 듯합니다. 수행자 일까요?
ⓒ 정상혁
그뿐입니까?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조각을 보고도 이게 쉬바인지 비쉬누인지 구별할 수 없어서일 뿐 사원 곳곳에는 신에 대한 경배와 헌신 그리고 그들의 대 전투 장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힌두교의 수행자의 모습이나 신들을 찬양하며 춤을 추는 압사라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등장하기도 합니다. 신들의 세계에도 보고 듣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이 마치 인간의 세계와 비슷하기도 한가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앙코르 와트의 바로 위쪽에 있는 앙코르 톰이라는 사원군의 일부인 바욘사원의 거대한 관세음보살 조각들이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관세음보살의 얼굴을 크게 조각하였는데 마치 십일면관음의 맨 아래쪽을 형상화해놓은 것 같기도 한 이 관세음보살 조각의 얼굴은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캄보디아의 여인네들처럼 두꺼운 입술과 얼굴생김새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 바욘 사원의 사면 관세음보살. 얼굴표정이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 정상혁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사원 중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따 프롬 사원으로 자연에 의해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를 보기 위해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는 사원이었습니다.

▲ 자리 잃은 돌조각은 사원의 입구 옆 빈터에서 구르고 있습니다.
ⓒ 정상혁
▲ 파 푸온 사원의 터줏대감 나무입니다. 멋들어지게 뻗은 뿌리가 사원의 문을 감싸버렸습니다.
ⓒ 정상혁
사원의 문까지 이르는 길만 온전할 뿐 사원의 문부터 커다란 강철 기둥으로 받쳐져 간신히 지탱만 하고 있고 여기저기가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사원 안에는 높이 몇 십 미터는 돼 보이는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줄기인지 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큰 뿌리들이 엄청난 힘으로 사원의 돌 틈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는 것이 장관 아닌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을 발길을 잡아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유산을 남기게 할 정도의 큰 권력을 가진 왕도 흩어져 흙이 돼버린 지 오래고 그나마 돌로 쌓아올린 사원은 한동안 그 때의 영화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하늘 끝까지 솟은 듯한 열대 거목의 강한 뿌리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내리고 마는가 봅니다.

왕을 위해 크메르 민족의 민중들과 장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곳을 이루었겠지만 이제는 이렇게 무너져 가는 이곳으로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객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 후손들의 삶에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불과 몇 시간만에 둘러보고 이곳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곳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그것도 숲의 중심이 아닌 언저리만 보고 온 듯해서 아쉽기 그지없지만 그 아쉬움을 단초로 삼아 나중에 다시 방문하면 더 깊고 자세한 부분까지 보고 왔으면 합니다.

▲ 거대한 나무가 육중한 돌담을 사정없이 짓누르도록 자랄 만큼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 정상혁

덧붙이는 글 | 그야말로 주마간산으로 돌아본 앙코르 와트였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없이 그저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적어봤습니다. 넉넉한 일정에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줄거리라도 읽어보고 간다면 100배는 즐겁게 돌아보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