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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미술교사 부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알몸 사진에 대해 대법원은 "보통 사람의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치면 음란물"이라는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판시를 위해 대법원은 '묘사가 상세하다', '필연성이 없다', '성적 수치심만 연상될 뿐이다'란 말로 미술교사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법이 문화예술에 대해 정말 비평가로서의 안목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법원도 여기에는 자신이 없는지 '보통사람들의 성적 수치심을 해치면'이란 말을 반복 사용한다.

대체 대법원이 말하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의 성적 수치심은 어느 정도인가? 작품을 만든 이의 주관적 태도와는 무관하게 적용되는 이 논리는 정말 변화무쌍하게 적용된다. 영화, TV와 같은 영상매체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다. 마광수, 장정일의 예를 봐서는 '문학'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다. 미술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같은 수준으로 '보통사람'들의 태도를 요구한다.

이렇게 법에서 말하는 '보통사람'의 시야에 끼워 맞춰진 '음란작품'의 범죄성립요건은 음란행위를 공연성이 있는 장소에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고의가 있냐는 것이라 한다. '주관적 구성요건'이란 말이 왠지 목구멍에 걸리는데 누드사진이나 영화, 연극에서의 러브신을 따져보아서, 음란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공연성이 있는 장소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 졌다고 해도 주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범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표현방식이기에 법으로서는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태도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입장에서는 법에서 말하는 보통사람의 기준이 어디 있냐는 것이 궁금하고 주관적이다 객관적이다 얘기할 판단가치는 어디에 두냐는 것도 시비 거리가 된다.

보통사람의 원형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작품의 근본은 주관적이고 고의적인 행위다. 아무 생각 없이 담벼락에 물을 뿌린 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없지만 형형색색의 페인트를 가져와 일부러 담벼락에 뿌리는 행위는 현대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를 보고 욕을 하며 웃는 이도 있고 기발한 발상이라며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보통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법원에서 '보통사람이란 다수결의 의견'이라고도 한 바 없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 노태우씨도 대통령 재직시절에 보통사람이라고 했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통으로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는 말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보통이상의 가치를 쫓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3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행동양식이 바로 접붙여 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보통사람이란 고정된 가치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야가 변하며 법적인 잣대로는 피상적으로만 보여지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문제점을 엘리트 과정을 밟아온 판사들이 있는 대법원이 모를 리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말 대법원이 바라는 것은 자명하다. 영상매체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포기해도 좀 더 보수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보통사람이라는 너울을 쓴 시각을 고수 하겠다는 태도다. '어떻게 교수가, 어떻게 선생이 저러는가 너희들이 특정 선을 넘어가면 우매한 대중들은 이를 따를지 몰라!' 하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건 누가 처벌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도 있지만 법이 문화예술의 잣대를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대중이 판단할 가치를 앗아가 버린다는데 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대중들은 이를 보지 말라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법의 잣대보다 더 엄하면 엄했지 너그럽지 않다. 재미있으면 열광하고 보기 싫으면 쓰레기라고 욕한다. 가치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이에게는 불멸의 스타가 어떤 이에게는 립싱크 금붕어로 비웃음을 산다. 이 모든 것을 법으로만 따질 수 있다는 말인가? 대법원은 성적인 가치로 주관성을 드러내려는 문화예술의 전달자들에게 좀 더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바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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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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