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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호에서 바라본 비양도
비양호에서 바라본 비양도 ⓒ 김강임
저 섬엔 누가 살고 있을까?

김밥 10줄, 삶은 달걀 20개, 밤식빵 1봉지, 수박 1통과 귤, 그리고 얼린 생수 3병과 커피. 5명이 먹을 점식 메뉴치고는 너무 호화스럽다. 이른 새벽 배낭 속에 주섬주섬 김밥을 챙겨 넣자니 꼭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다.

이번 주말기행은 '천년의 자연섬'으로 떠나기. 전날 꿈 속에서 본 그 섬은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무인도 같았다. 아니, 무인도가 아니라 유혹의 섬,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섬이라고나 할까.

"언제쯤 저 섬에 갈 수 있을까? 저 섬엔 누가 살고 있을까?" 서쪽의 해안도로를 타고 다니면서 협재해수욕장 건너편에 오롯이 떠 있는 섬을 보며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북제주군 한림읍 비양리 비양도.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면 금방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건만,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무기 같은 섬. 어떤 이는 비양도를 가리켜 '중국에서 날아온 섬'이라고도 불렀고, 어떤 이는 '1002년에 폭발한 화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설 속 대나무가 많은 '죽도', 한라산이 폭발할 때 산꼭대기의 한 조각이 날아왔다는 이야기. 그렇듯 그 섬에 대한 이야기는 분분하다. 그러니 '천년의 자연섬'이라 부르는 것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원 44명인 비양호가 비양항에 도착했다.
정원 44명인 비양호가 비양항에 도착했다. ⓒ 김강임
한림항에서 9시에 출발하는 비양호

한림항에서 우리를 태운 비양호는 정확히 오전 9시에 출항했다. 비양호는 우리 일행 5명까지 정원 44명을 꽉 채운 듯하다. 승객의 절반은 여행객, 그리고 절반은 제주시와 한림을 왕래하는 비양도 주민들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3.2km. 바다길 3km를 달리는 기분을 생각해 보았는가? 아뿔싸!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림항은 해무가 끼어 주변이 모두 회색빛이다. 그러니 비양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긴 틀렸다. 더욱이 쪽빛바다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비양도는 안개 속에 덮여 있다. 출항한지 15분쯤 지났을까? 비양항에 이르자 비양호는 색소폰 소리를 내며 뱃고동을 울린다.

비양봉에서 바라본 해안도로
비양봉에서 바라본 해안도로 ⓒ 김강임
풀 냄새, 바다냄새, 갯벌냄새

비양도 포구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포구에는 풀냄새와 바다 냄새가 그윽했다. 섬 속의 섬에서 풍겨 나오는 풀 냄새. 자연의 싱그러움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지 여행을 떠나 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양도에서 자연의 싱그러움을 맛볼 수 있음은 비양도 한가운데 드러누워 있는 비양봉과 염습지인 펄낭호, 그리고 야생화공원 등 온갖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포구 앞에 있는 비양도 이정표
포구 앞에 있는 비양도 이정표 ⓒ 김강임
포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길에 비양도 기행에 대한 이정표가 있다. 초행길인 사람들에게 이정표는 여행의 길라잡이다. 마을 안길 이정표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시작되는 해안도로는 3.5km. 이 해안도로는 여느 해안도로처럼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다.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그리 평평하지만은 않다. 자동차의 없는 섬이니 신호등이 있을까? 경적 소리가 날까? 발길 머문 곳에서 길을 멈추면 건널목이고 교차로이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한가로울까?

비양분교의 모습
비양분교의 모습 ⓒ 김강임
비양도 진료소, 비양도 마을회관, 어디에서나 있어야 할 공공기관이건만 섬에서 보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뭔가 특별함이 있을 것만 같은 섬에 대한 환상. 그 환상의 길을 따라 가니 비양분교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다. 아주 자그마한 축구골대, 그리고 2층 교실, 놀이터, 여느 학교나 다름이 없지만 이곳의 규모는 조금 작다는 것뿐이다. 운동장 한가운데 서있으니 바다가 보인다.

섬 따라 걷기

비양도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후 3시에 비양호가 출발할 예정이니 늑장을 부려도 좋을 테지만 왜 그리도 발걸음이 빨라지는 걸까?

섬 사람들이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본향당
섬 사람들이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본향당 ⓒ 김강임
"천천히 걸읍써게!"

일행 중 토박이 제주인이 한 명 끼었으니 그녀는 벌써 제주 사투리를 깔아 놓는다. 섬에서 듣는 제주 사투리가 이렇게 정겨울 수가!

돌담 모퉁이에 서 있는 사철나무 나무 한그루에는 오색의 천들이 얽혀있다. 이것이 바로 지전과 물전, 명실이란다. 이곳 사람들이 해마다 영등굿을 지낸다는 당, 지나가는 배도 제를 드리고 간다는, 그렇게 해야만 풍어와 무사, 그리고 제주 바다에 나간 어부와 해녀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비양도의 본향당. 천재지변과 인간의 한계를 모면하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 밴 곳이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 들려 두 손을 비벼댔다.

펄낭호의 산책로를 따라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듯
펄낭호의 산책로를 따라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듯 ⓒ 김강임
본향당을 지나 몇 걸음 옮기니 펄낭호의 산책로가 펼쳐졌다. 연못이랄까? '갯벌이 있는 물'이라고 하지만 염습지이다. 민물 게가 잽싸게 옆걸음질 친다.

매스컴의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지 펄낭호 주변은 산책로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산책로에서는 비양도의 오름 비양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풀냄새, 갯내음 그리고 바다냄새가 섬에 온 손님들을 감싸 않는다. 아늑하면서도 여유로운 산책길에서 주저앉았다. 멀리 보이는 정자. 그리고 돌탑, 펄낭못에서 자생하는 온갖 식물들. 그저 자연섬의 신비로움 그 자체다.

펄낭호 옆에는 야생화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엉겅퀴, 들민들레, 산개나리, 달개비, 섬 밖에서 본 들꽃과 다름이 없는데도 신비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긂주림에 남편을 기다렸다는 '애기업은 돌'
긂주림에 남편을 기다렸다는 '애기업은 돌' ⓒ 김강임
'봄날'의 수석거리 그리고 망부석

수석거리 옆을 지날 때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각기 형상이 다른 돌의 모양. 유심히 바라보니 삶의 모습부터 동물의 모양, 모두가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가 매스컴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봄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돌 공원의 의미는 새롭다.

갯바위 끝에 우두커니 서이 있는 등대, 그리고 기생화산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모두가 아늑하고 고요한 섬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혜이다.

비양봉을 옆에 두고 꼬불꼬불 이어진 수석거리 끝에 동쪽을 바라보는 망부석이 바다를 지킨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애기 업은 돌'이라 부른다. 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지만, '애기 업은 돌'은 애가 없는 사람이 치성을 드리면 이루어지며 이 돌을 처음 보는 사람은 절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의 망부석이다. 망부석 앞에서 뒤로는 애기 업고 뱃속 아기를 간직한 채 남편을 기다리다 굶주린 전설 속 해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해무가 쉽게 벗어지지 않으니 한림항도 한라산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좋은 날 왔으면 섬 주변의 풍광과 한라산과 제주시, 한림항의 모습을 한눈에 담아 갈 수 있을 텐데 그 아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만 갔다.

철새들의 휴식처 '큰가지' 해식구
철새들의 휴식처 '큰가지' 해식구 ⓒ 김강임
'철새들의 휴식처' 해식구는 또 하나의 섬

철새들이 쉬어가는 '큰가지' 해식구 앞에서 우리는 휴식을 취했다. 단숨에 섬 주위를 다 돌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섬 풍경들의 저마다의 의미를 되새기며 걷다 보니 이마엔 구슬땀이 흐른다. 어느 스님이 말씀하신 '땀의 싱그러움'을 느껴보는 순간이다.

해식구 앞에는 어느 강태공이 바다 길을 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낚시어선과 '큰가지' 옆 작은 가지의 분석구도 바다위에 오롯이 떠 있다. 물때 왔더라면 저곳을 걸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섬 탐방의 아쉬움은 끝이 없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것은 관광객들이 내다버린 바다 쓰레기가 해안도로 주변에 뒹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순수성을 잃어가게 만드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비양항 방파제는 강태공의 나라
비양항 방파제는 강태공의 나라 ⓒ 김강임
1시간 30분 만에 섬 주위를 다 돌아볼 수 있었다. 해무 낀 날이어서 멀리 제주도의 풍경을 한눈에 담아올 수는 없었지만 섬 주의를 따라 살아가는 온갖 천연의 자원들, 그리고 기생화산의 단면, 정말이지 비양도의 껍데기를 하나하나 벗기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껍데기를 벗기는 것처럼 홀가분함으로 신비의 탑을 쌓았다.

그리고 마을포구에 다다를 무렵, 비양도 아낙을 만났다.

"어디서 옵디까? 쉬엉갑써게!"

그 아낙의 한마디 인사에 우리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마을의 고목나무 아래 점심상을 차렸다. 점심상을 차리자 고목나무 아래에는 비양도를 지키는 마을 아낙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비양도 가는 길

제주시- 서부 일주도로(12번 도로)- 한림항- 비양호( 15분소요. 요금: 왕복 3000원).

배편은 하루 2편. 한림항: 오전 9시, 오후 3시. 비양항 : 오전 9시 15분, 3시 15분이며, 여름 휴가철 관광객이 많으면 비양호가 수시로 드나든다. 또한 민박을 할 수 있다.

비양도를 들어가는 관광객들에게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섬을 훼손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며 바닷가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비양도의 섬 주위는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면 일주를 할 수 있으며, 비양도에서 자전거 대여를 할 수 있어 자전거를 타고 섬 주위를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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