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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달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1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이)대통령의 고뇌를 비난하는 것은 책임 있는 야당이 아니"라며 `무겁게 생각해보라`고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청춘남녀들의 '연정'(戀情)씨름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아무리 한쪽에서 마음이 굴뚝같아도, 상대가 전혀 마음이 없다고 하면 몇 번 구애를 하다가 포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싫다고 몇 번씩 거절해도 계속 치근덕거리면 그때부터는 모양이 추해지고, 잘못하면 '스토커' 소리 듣기 십상이다.

하물며 여야간의 '연정'(聯政)씨름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파간의 연정은 서로의 뜻이 맞을 때 하는 자발적 정치행위이다. 그 선택은 누가 누구에게 강제하고 압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고싶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싫다고 하면 그만이다.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연정하자고 달려들어 매달리면 그때부터 모양이 이상해진다.

더구나 상대가 연정을 안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비난까지 하고 나선다면, 그 때부터는 자기 생각만 앞서 분별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연정하자고 자기들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꺼내놓고는,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자기들끼리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집권세력을 향해 이런 이야기까지 늘어놓아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연정 '소동'을 지켜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이 나라 집권세력의 정치적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라는 탄식을 떨칠 수가 없다.

연정만이 살길?... 국민들을 더 덥게 만드는 무더운 여름의 3중주

작금의 연정론은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참모진- 열린우리당의 3중주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연정론을 꺼내들자 청와대 참모진들은 그 취지를 설명하는데 분주하고, 열린우리당은 연정론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는데 여념이 없다.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이 어떠한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들의 3중주는 더운 여름을 더 덥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지금 국민들이 왜 여야의 연정공방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가.

노 대통령의 연정론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미 수없이 지적한 바이다. 그러나 연정론 자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연정론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집권세력 전체의 모습이다. 민심은 노 대통령의 연정론에 등을 돌리고 있는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사람들은 '연정만이 살 길'임을 외치고 있는 장면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연정문제에 관한 청와대의 기류를 보면, 청와대는 이미 국민의 마음과 유리된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들만이 역사적 소임에 충실하고 있다는 독선, 노 대통령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여론도 좋아질 것이라는 착각, 이제까지 노 대통령이 추구해 온 일들이 결국에는 성사되곤 하지 않았느냐는 오만….

"내가 내걸고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내걸었던, 정책으로 추진했던 이상은 대체로 실현돼 가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믿어서인지, 청와대 참모들은 결국 노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평가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연정문제에 집착해도, 그것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면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며 만류해야 하는 것이 청와대 참모진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대통령의 연정론을 가리켜 '뜬금없다'며 냉소하고 있는데도,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것은 '노비어천가'류의 이야기들뿐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으로 촉발된 연정론 공방이, 먹고사는 문제에 지쳐있는 국민들을 얼마나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고 있는지를 청와대 사람들은 읽지 못하고 있다.

무너진 당정분리... 그때그때 다르다?

노 대통령 뜻에 따라 연정론을 추진하겠다며 이 방안 저 방안 꺼내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면 차라리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연 지금 한나라당과의 연정론이 옳다는 판단에서 저러는 것일까, 아니면 대통령이 깃발을 들었으니까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저러는 것일까. 당내에서의 적지 않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우격다짐 식으로 연정론을 계속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

정당이라는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곳은 민심이라는 물이다. 정당이 민심의 물에서 벗어날 때 그 생명은 끊기게 되어 있다. 설혹 대통령이 연정 제안을 내놓았다 해도, 민심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면 여당은 민심의 수용을 대통령에게 '건의'라도 해야 한다. 공개적인 건의가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것 같다면 막후에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꺼내니까 앞 뒤 가리지도 못하고 쫓아가고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면, 과반수에 가까운 의석이 정말 아까울 뿐이다. 청와대 밖에 여당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게 만드는 광경이다. 대통령이 한마디하면 내용불문하고 충성경쟁을 벌이는 '거수기 정당'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이번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여당불신 여론을 한층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이제 당정분리라는 말을 더 이상 꺼내는 것이 무색한 지경이 되었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민심이고 뭐고 연정의 깃발 아래로 따라 모이는 모습에서 무슨 당정분리를 말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해왔던 당정분리의 원칙도 이번 과정을 거치며 완벽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누가 억지로 하라고 요구했던 당정분리도 아니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그리고 열린우리당 스스로가 그렇게 업적으로 내세워왔던 당정분리였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당정분리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번 드러난 '일관성의 부재'를 보며 사람들은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말할 것이다.

대통령 연정론에 매달리는 참모와 열린우리당... 국민 참여 공간 없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참여정부를 음해하는 지나친 말인가.

실제로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대통령이 어떤 제안을 내놓으니까, 청와대 참모들은 그저 '고뇌에 찬 결단'을 찬미하고 있고, 여당은 대통령 말씀을 뒷받침하기에 정신이 없다. 모두가 '누가 뭐라 해도' 연정을 밀어붙일 태세이다. 권력의 자기최면 현상이다.

이런 식이면 이제 '참여정부'에 국민의 의사가 끼어들고 참여할 공간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모든 권력은 결국 이 같은 전철을 밟게되어 있는 것인가.

대통령 말 하나에,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정론에 매달리는 청와대 참모들과 열린우리당 모습을 보며, 이 정권의 앞날에 참담한 절망을 느낀다. '노풍'(盧風)에 환호했고 탄핵을 막는데 나섰던 수많은 국민들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그 때가 벌써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기자회견을 갖고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여권이 어떤 미련을 갖든 간에 그 입장이 변화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끝난 이야기이다. 그러면 대연정론은 여기서 접어라. 더 들먹이면 정말 추해지고 정치적 저의를 의심받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들만 옳다는 오만과 독선이 스스로를 망치고 나라를 망쳐왔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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