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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17일째인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사진은 영종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 조합원.
파업 17일째인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사진은 영종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 조합원.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사 양측은 17일째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7월 30일 회사는 노조에 최종안을 제시했다. 논란이 됐던 비행시간에 대해 아시아나 항공은 연 비행시간을 960시간으로 줄이되 이동시간(데드헤딩)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해석을 놓고 노사는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노조는 이동시간을 비행시간에서 제외할 경우 실제 비행시간이 1100시간을 넘어 오히려 애초 안 보다 후퇴된 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이동시간은 비행일정상 연 100시간을 넘지 않기 때문에 연간 비행시간이 1060시간 내외가 된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최종안에서 반(半)전임자 수를 5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수용하고, 1일 5회 이착륙 패턴(5레그 비행)도 월간 2회로 제한하겠다고 노조 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회사는 운항자격심의위원회 및 징계위원회에 노조 대표 3명의 의결권을 부여해 달라는 내용은 인사·경영권 침해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년 58세 연장(현행 만55세)과 여성 조합원 임신에 대한 비행휴 2년 보장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결국 1일 회사의 최종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고했다.

4년 동안 지속된 뿌리 깊은 불신

"함께하면 언제나 승리다 "충북 보은 속리산 신정 유스타운 입구에 걸린 대자보.
"함께하면 언제나 승리다 "충북 보은 속리산 신정 유스타운 입구에 걸린 대자보. ⓒ 오마이뉴스 박수원
이학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대변인은 "회사가 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과 이미지 실추를 감수하면서도 조종사 수급을 위한 경비 연간 20억~30억원을 투자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면서, "회사가 사태를 악화시켜 긴급조정권 발동이나 항공운수업의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의도하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은 회사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기자가 만난 노조원 대부분은 "회사가 공군 출신 조종사들의 노조 탈퇴를 유도해서 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민주노조를 와해시켜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는 2000년 6월 출범했지만 복수노조 금지 조항으로 인해 2004년 11월까지 법외 노조로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 노조는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고 않고, 단체협상 체결 과정에서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2004년 단체협상이 2005년 여름으로 까지 이어진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가 오래 전부터 경고파업을 통해 파업을 예고했지만, 회사측은 이렇다할 대비책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노조에 대한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다. 조종사들이 겉으로는 '안전운항'을 요구하고 있지만, 고용안정과 함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종사들이 '대체 인력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캐빈승무원 교체권, 골프채 구비, 가족 항공권 요구 등 (노조에서 자진 철회한 내용) 무리한 주장을 계속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측에서는 쟁점 사항에 대해 입장을 내놓았는데, 노조는 양보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언론을 통해 의사 소통하는 노사

회사 "노조는 음주측정 거부나 영어 자격 시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게 과연 안전운항을 위한 주장이냐?"
노조 "음주측정이나 영어 자격 시험은 노사협상 과정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주변부 내용이다. 협의도 해보지 않고 언론을 통해 노조를 압박하는 게 과연 바람직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아시아나항공 노사의 입장 차는 첨예하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언론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 파업이 17일째로 접어 들고 있지만, 파업 대오는 400여명(노조 집계)이 유지되고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조종사들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파업임에 틀림없다. 속리산 신정 유스타운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조종사들은 "노조가 항복을 하고 물러서면 다 죽는다"면서 파업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350여명 조종자들의 자존심을 위해서 7000명 자존심을 버릴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첫 단체협상에서 노조에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계속 노조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상태다.

그 때문에 아시아나 항공은 1870억원이 넘는 손실을 감내해가면서, 8월 한 달간 관광 노선과 장거리 구간을 오가는 11개 노선 262편의 운항을 취소하는 전격적인 결정까지 내리기에 이르렀다.

회사는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지만, 노조쪽 요구 사항을 들어주었을 때 얼마나 비용이 소요되는지조차 계산해 두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단순히 돈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고 말해, 노사가 비용보다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사 양쪽이 힘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쉽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협상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 장외 대결을 통해 자존심만 세운다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의 실마리는 찾기 힘들다. 회사나 노조 모두 '한 쪽을 꺾어 주저 앉히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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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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