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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도난마 한국경제> 표지
ⓒ 부키
경제 영역에서 논쟁을 일으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경제학자 장하준이 국민대 경제학부 정승일 교수와 만났다. 이들이 만난 이유는 단 하나, 한국경제를 파헤치기 위해서다. 한국경제에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러니 경제를 파헤친다는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반갑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최근에 등장한 유명인사들의 경제관련 도서들은 무슨 이유인지 이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거창하게 포문을 열지만 한결같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조용하게 막을 내린다. 그것들에서는 속 시원한 이야기 한번 제대로 쏘아붙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장하준의 이름이 보이는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더욱 반갑다. 최소한 이 경제학자가 두루뭉술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건 그의 저작들을 본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장하준과 정승일, 그리고 월간 '말'의 전 편집장 이종태의 참여 아래 좌담 형식으로 구성된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과거를 평가하면서 오늘을 진단하고,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주요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다. 이야깃거리만 본다면 좌담은 무난하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동시에 팽팽한 활 사위 같은 긴장감을 줄 수 있는 것인데 장하준과 정승일은 둥글둥글한 것보다 '모'난 것을 택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처음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오늘날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386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개혁'은 단어 그 자체의 뉘앙스와 새로운 것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 때문에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단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당연히 경제 또한 그러한데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그 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개혁론자들이 개혁을 말하는 것은 옛날 모델이 종속적이고 내실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책은 오늘날의 개혁 강화가 종속 심화라는 '아이러니'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줄일 수 있으며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개혁을 하자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과거를 거부하는데서 오는 반사 심리의 하나가 아니냐고 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란 구체적으로 박정희 시대를 말하는데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를 냉혹하게 바라보자고 말을 한다. 먼저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박정희가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엮은 이종태의 말처럼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이고 발언자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다고 말을 한다.

"물론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꼭 박정희처럼 유신 독재를 감행해야 했는가 하는 것은 논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경제 발전이 좋으냐 나쁘냐'는 논쟁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제 발전이 이뤄 낸 성과를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제 발전이란 것은 단순히 잘 먹고, 좋은 옷 입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병을 앓지 않고, 오래 살고, 어린 자식을 잃지 않도록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경제 발전입니다." -본문, 장하준의 말 中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흔히 동일 주제에서 필연적으로 거론되는 '민주성'에 대한 문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들은 박정희가 반민주주의가 아니라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썼기에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즉 박정희 시대에 긍정하는 것은 '비자유주의적 측면'이지 '비민주주의적 측면'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 부분은 상당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상당한 논쟁거리들을 던져준다. 그것은 요즘 대중들에게 흔히 통용되는 경제 지식과는 약간 내용들을 말하고 있어서 그러할 텐데 특히 재벌에 대한 입장, 외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 자유주의와 국가의 역할에 거는 기대 등이 그러하다.

먼저 재벌 문제에 관해서는 '재벌 개혁'이 진정으로 '경제 민주화'인지를 묻고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재벌이 경제 성장을 위한 시스템이며 그것은 경제 민주화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 것임에도 최근의 분위기는 재벌을 해체하면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유럽의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재벌이 해체될 경우 오히려 노동자들이 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재벌 문제에 관한 것 또한 옛 것을 거부하는 흑백 논리와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재벌 개혁은 경제 민주화와 무관합니다. 물론 재벌이라는 시스템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와 연관되어 꺼림칙하긴 합니다만, 재벌 체제는 남들이 보기에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 성장이란 것이 과연 경제 민주화와 어긋나는 것일까요?" - 본문, 정승일의 말 中

위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논쟁을 야기할 만하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외환 위기가 그 동안 내실 없이 외형적으로만 몸통을 부풀리다가 기어코 터졌다고 알려진, 이른바 박정희 책임론이 아니라 금융 자본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국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일련의 논의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는데 그 목소리의 수위는 결코 낮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외형적 성장을 비판하면서 내실 있는 성장을 주장하는 분들은 시설 투자와 고용을 예전보다 줄여야 한다는 전제를 은연중 깔고 있는 셈이 됩니다. 이분들의 시각에서는 시설 투자가 줄고 고용이 주는 것이야말로 경제가 효율화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내실 있는 성장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잘 되어 가고 있는 거죠." - 본문, 정승일의 말 中

"정부가 경제 개입을 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란 걸 하려다 보니 투자 조정도 필요하고, 환경 규제도 해야 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라는 게 생긴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우파는 우파대로 시장주의를 맹종하니까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고, 개혁 세력은 '박정희의 국가주의' 운운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거예요." -본문, 장하준의 말 中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쾌도난마를 거쳐 후대를 위해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을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들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럼에도 엮은 이종태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 '노사정 플러스'를 기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지금 그렇게 느끼듯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쾌도난마 한국경제>가 앞장 썼다. 최근에 환영받는 주장들에 비하면 장하준이나 정승일이 하는 말들은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들은 논쟁을 만들고 그로 인한 발전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작정한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더욱 반갑다. 속 시원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놓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든 이런 말들은 환영받을 만하다. 길을 찾기 위해 떠들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말들, 그것들은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쾌도난마 한국경제>가 그렇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부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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