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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용 MBC 보도국 부국장. 지난 5월초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영입됐다.
ⓒ MBC 제공
"지금 생각해보면 ('X파일' 국면에서) 아무래도 MBC에 계속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번 보도에 대해 내부에서 분명히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부국장급 간부로서 나는 ('X파일' 보도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을 겁니다. 고민을 했겠죠. 차라리 삼성쪽에 와 있는 게 마음은 편해요."

이인용 삼성전자 홍보팀장(48세·전무)의 말이다. 지난 8일 삼성본관 인근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이 전무가 지난 6월 29일 삼성에 첫발을 내딘 후, 개별 언론사와 단독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얼굴 표정은 밝았다. 기업에 들어와 보니 역동성에 놀라고,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언론'이라는 '갑'의 위치에서 '홍보'라는 '을'의 위치로 바뀌면서 몇 달 동안 뇌 구조에 새로운 '칩(chip)'을 넣어야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근 X파일 사태를 바라보는 심경을 물었다.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언론과 기업, 사회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최근 X파일로 인해서 주변 분들이 많이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온다"고 소개하면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MBC에 계속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도국 책임 간부로서, 자신은 아무래도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을 것이고, 그만큼 고민과 갈등도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어서 그는 "차라리 삼성쪽에 와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며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갑에서 을로 바꾸는데 뇌구조에 새로운 칩을 넣어야 했다"

그는 20여 년이 넘는 언론인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가해자 의식에 시달려 왔다'고 토로했다. 이 전무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이번 MBC의 'X파일' 보도 역시 그에게는 '또 한 번의 가해'라는 부담이 컸던 것 같았다.

대신 삼성의 과거 불법정치자금 제공 등에 대해서도, "잘못했으면 매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지금 맞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공화국 논란이 커지고, 자신의 삼성행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알고 있다는 그였지만, 언론의 일방주의, 이념에 따른 '편 나누기식' 보도행태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KBS <추적60분>의 삼성공화국 보도 사례를 들면서) 목소리도 잠기고, 별로 안 좋았을 때의 자료 화면을 왜 썼는지...(웃음)"라며 "요즘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통념의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통념의 폭력'이라는 생각"

이 전무는 "'일반적으로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쓰고, 보도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한다"며 "언론이 진정한 프로페셔널을 기초로 한 저널리즘에 입각하지 않고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이념대결을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는 "저널리즘에 입각해 서 있지 않고, 무슨 '진영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이사로 있으면서 언론학자들과 6시간 넘게 벌였던 열띤 토론을 소개했다. 그는 "고려대에서 언론학자들과 6시간 넘게 언론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학자들에게 '왜 진보학자들은 <한겨레>의 문제에 침묵하는가, 왜 보수성향의 언론학자들은 <조선일보>의 문제에 눈을 감는가'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 달 여 동안의 회사 생활에 대한 질문에는 "재밌다"라는 표현을 썼다. 기업의 역동성을 매일 느끼고 있고, 자신의 부족한 것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얼마 전 간부회의에서 경험했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첫 간부회의 들어가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홍보팀장을 맡고 있으니까, 주요한 회의에 참석을 한다. 얼마 전 경영위원회를 들어가게 됐는데, 들어가기 전에 직원에게 들어가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물어봤다. '홍보쪽 안건이 없으니까, 들어가셔서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전달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회의에 들어갔더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영어 약어도 있고, 노트 필기할 시간도 없었다. 대외비라 문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트북 화면으로만 보고 그냥 넘어갔는데, 회의 끝나고 나와서, 직원들에게 '오늘 제가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이해하질 못해서, 여러분에게 전할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직원들이 웃더라."


그는 향후 홍보 방향에 대해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짤막한 한마디에는 국내 언론에서 탈피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전무는 "삼성전자의 매출 규모를 보면 해외가 86%, 국내가 14%"라면서 "당장 (언론 보도에 대한 사내의) 관심을 180도 바꾸자는 것은 아니지만, 6대 4나 7대 3 정도로 (언론 보도에 대한 관심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두고, '홍보인식의 구조조정'이라고 했다.

삼성맨으로 변신한 한 달 여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 좋다는 이인용 전무. 그는 향후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과 홍보 역량을 높여나갈 것이라는 포부도 함께 전했다. 삼성내 '홍보 구조조정'을 외치는 이 전무의 행보가 어떤 성과를 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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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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