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동원
사회에 나와 직장이나 학교를 고리로 맺어진 인연 속에선 사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부모님 이름자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고향 친구라면 우리는 친구들을 그들의 아버님 이름으로 부르며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 친숙하며, 그들에 대한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을 갖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치 걸러의 그 죽음은 아득하게 멀리 보였는데 이제 고향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죽음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서울과 인천에 사는 친구들이 시간을 맞추어 함께 고향으로 내려갔다. 심한 빗줄기 때문에 꽃상여에 실어보내진 못했지만 봉투를 내밀고 황급히 돌아서는 도회지의 죽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맞상주 김영재.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함께 자란 말 그대로의 고향 친구이다. 강원도 영월의 문곡리에 새집을 짓고 부모님을 모시려 했으나 이번에 아버님을 먼저 떠나보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겐 복받은 일이다.

그가 없었다면 고향은 반쯤 비어 보였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죽음은 산자를 불러모은다. 그래서 상가집에는 떠나보내는 슬픔과 함께 오랫만에 보는 얼굴의 기쁨이 있다. 그곳은 슬픈 눈물의 장소가 아니라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중화되는 자리이다.

ⓒ 김동원
우리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서양의 인사가 시선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인사는 몸을 서로 부비는 뜨거운 포옹에 가깝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의 그러한 인사는 예외가 없다.

ⓒ 김동원
서양의 죽음이 검은색이라면 우리네 죽음은 순백의 흰색이다. 하관을 하기 전에 바닥에 까는 창호지의 빛깔만 보아도 그 점은 여실해 진다.

ⓒ 김동원
사는 곳에 따라 관을 그대로 묻는 경우도 보았지만 내가 태어난 곳에선 탈관을 하고 몸만 땅으로 내려보낸다.

ⓒ 김동원
현대 문명의 범람은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신을 묻고 난 뒤, 예전 같으면 사람 손을 빌렸을 과정을 지금은 포크레인이 대신한다. 때로 사람들은 기계 문명의 편안함이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 하는 이 현실 앞에서 죽음의 훼손을 보기도 하지만 버스에 실려 그곳까지 온 문명화된 죽음의 길을 생각하면 그리 백안시할 일은 아니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중화되듯이 이제 우리의 죽음이 마지막 가는 길에선 그 낯설음으로 인하여 비록 삐그덕 거리고 있긴 하지만 문명과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 김동원
회닫이의 시간이다. 기계의 시간에 이은 사람의 시간이다. 먼저 회닫이꾼들에게 술 한 잔과 안주 한 점을 돌린다.

ⓒ 김동원
첫켜의 회닫이는 동네 사람들이 맡았다. 어허, 달구호, 어허, 달구호. 한 사람이 소리를 이끌고, 회닫이꾼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땅을 다진다.

ⓒ 김동원
다섯번째의 마지막 켜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맡았다. 나의 친구들이다. 그러나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준씨가 이끌었다. 사진의 맨 왼쪽 사람이다. 그는 문곡리의 새마을 지도자이다.

우리는 고향을 떠났지만 그는 새롭게 우리의 고향을 찾아 그곳에 삶의 둥지를 틀고 우리 고향 사람이 되었다. 다섯 켜를 다지는 동안 보통은 중간에 누군가 한두 번 소리를 대신 이끌어주지만 이번에는 그가 내내 가락을 이끌었다. 그에게 무척 고마웠다.

ⓒ 김동원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가 하늘나라가 아니라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임을 회닫이만큼 여실히 일러주는 예가 또 있을까. 바로 옆의 산자락에선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르며 산을 타고 오른다. 몸을 땅에 주고, 이제 지상의 인연을 훌훌 털어버린 혼백이 가는 황홀한 하늘의 길 같았다.

ⓒ 김동원
마지막 작업은 사람과 기계가 함께 했다. 사람들이 다진 그 자리에 봉분이 솟고 내년이면 아마 잔디가 파랗게 덮혀있을 것이다. 땅으로 돌아간 자가 키우는 또다른 삶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