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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어머니의 손맛, 우리집 추어탕
ⓒ 한성수
지난 일요일, 시골집에 부산에서 오신 자형 두 분과 큰 형님, 작은 형님, 막내누나가 모였습니다. 우리는 돼지 삼겹살과 소주 몇 병을 준비해서 어머니와 숙모를 모시고, 가까운 개울을 찾았습니다. 고향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의 다리 밑에는 벌써 많은 차량들과 낯선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차량 오디오의 볼륨을 너무 크게 틀어놓아 연로하신 어머니와 숙모는 그들 곁에 자리 잡는 것을 거북해 하시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도로변 그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이야 없지만 그래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더위를 식혀 줍니다.

소주잔을 나누다가 나는 문득 큰형님에게 제안을 합니다.

"큰형님, 아랫배미 봇도랑에 가서 미꾸라지를 떠 보는 것은 어떨까요?"
"미꾸라지가 지금 있겠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가보자."

나는 장화를 신고 큰 형님은 소쿠리를 챙기고 자형은 미꾸라지를 담을 물통을 들었습니다. 형님은 수로에 맞게 소쿠리를 들이대고, 나는 찬찬히 밟아 내려갑니다. 그런데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동생, 한 마리도 없는데, 몇 번 만 더 떠보고 가자!"

형님은 다시 소쿠리를 수로에 맞추고 나는 다시 이쪽저쪽을 훑듯이 밟습니다. 드디어 미꾸라지 2마리가 들었습니다. 우리는 탄성을 지릅니다. 이제 미꾸라지는 소쿠리를 뜰 때 마다 한 두 마리씩 들어 있습니다.

내가 신은 찢어진 장화에 물이 많이 들어가서 무척 무겁습니다. 원래 땀이 많은 나는 그야말로 비 오듯 땀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형님의 손에 거머리가 붙어있습니다. 내가 급히 떼어내었는데도, 형님의 손에서는 피가 많이 납니다. 나도 발가락이 간지러워 장화를 벗으니 그 사이에서 역시 거머리가 피를 빨고 있습니다.

▲ 우리가 잡은 미꾸라지
ⓒ 한성수
우리는 30여 분 간 미꾸라지를 잡았는데, 양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웅덩이에 물을 퍼거나 수로에 통발을 놓아두면 쉽게 잡을 수 있던 그 흔하던 미꾸라지가, 이제 과다한 농약의 살포로 이렇게 개체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니 참 서글퍼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먹은 농산물의 잔류농약이 조금씩 체내에 쌓이다가 우리도 마침내 병들고 약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미꾸라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미꾸라지를 보시더니 "양이 적기는 하지만 물을 많이 부어 끓이면 오늘 모인식구는 충분히 먹겠다"며 웃으습니다. 어머니는 미꾸라지에다 소금을 뿌립니다. 그리고 파닥거리는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문지릅니다. 미꾸라지에서 해감(하얀 거품)이 나오고 미꾸라지의 색깔도 점차 옅어집니다.

"이렇게 싹싹 문질러야 뻘(개흙) 냄새가 안 난단다."

어머니는 솥에 물을 조금 넣고 불을 지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잠잠해진 미꾸라지를 씻어서는 달구어진 솥에다 넣고 몇 번을 휘젓습니다. 그리고 삶은 미꾸라지를 건져내어 소쿠리에 받혀서는 박 바가지의 뒷면으로 미꾸라지를 짓이깁니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 물로 헹구자, 마침내 미꾸라지의 뼈만 남았습니다. 이제 헹구어낸 물을 솥에 붓고 불을 땝니다.

어머니는 바쁘게 국거리를 준비합니다. 배추나 고사리를 넣어야하는데 없어서 난감해 하다가 호박잎으로 대신 합니다. 그리고 파 몇뿌리와 애기호박도 한 덩이 따서 씻어 두었습니다.

"재료가 없어서 맛이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다."

솥에 국거리를 넣고, 다시 센 불에 30여 분 끓이자 김이 솟아 나옵니다. 어머니는 국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나도 한 모금을 들이키니 시원한 맛이 혀끝으로 전해집니다.

"이제 되었다. 너는 텃밭에서 제피(산초)와 방아잎을 따오너라."

어머니는 방아 잎, 마늘과 풋고추를 다져놓고, 따온 제피(산초)열매의 껍질도 가는 천에다 넣고 잘게 빻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 추어탕의 국거리
ⓒ 한성수
어머니가 만든 경상도식 추어탕은 뻑뻑한 다른 지방의 추어탕보다 훨씬 맑은 맛이 납니다. 사람들의 기호야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길들여진 이 추어탕이 입에 꼭 맞습니다 특히 구순에 가까운 어머니의 큰 사랑이 더해져 있으니까요. 그자리에서 나는 추어탕을 세 그릇째 비워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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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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